방울이가 사냥한 토종닭 요리

등록 2002.11.09 09:40수정 2002.11.0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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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었던 애완동물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종(種)을 꼽으라면 아마 닭이 될 것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우리 가족도 개와 가장 많이 사귀었었고, 또 서너 번은 고양이도 길렀었다. 그 외에도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한 이십여 년 사택 생활을 한 덕분에 넓은 마당에 염소도 한 번 기른 적이 있고, 토끼와 오리도 길러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횟수로만 따진다면 닭도 한 열 번은 될 것인데, 그것은 거의 국민학교 정문 앞에 자리를 깔고 있던 병아리 장수 덕분이었다.

한 마리에 오십 원 하던, 그 꽃같이 예쁜 노란 병아리. 그 동그란 솜털뭉치가 제 딴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마치 예쁜 공이 굴러다니는 듯 했고, 들어올려 눈을 마주치면 깜박깜박 눈꺼풀을 움직이며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이는 것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이면 백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한데도 그것 하나를 깨질세라 가슴에 품고 집으로 간다. 그러면 '삑삑' 하는 울음소리만큼 발걸음이 경쾌해지고, 귀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손톱 만한 볼에다가 열댓 번은 입을 맞춰가며 걷는다.

그러다가 멀리 집 대문이 보이면, 그제서야 귓전에 엄마의 잔소리가 떠오르고, 발걸음은 늘어지기 시작하다 결국 동네를 두어 바퀴나 돌고서야 병아리는 한껏 허리뒤쪽으로 돌린 채 눈길은 한껏 돌아간 머리부터 미적미적 집안으로 들여놓는다. 그러면 엄마도 또 이걸 사오면 어쩌느냐고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도, 이내 병아리를 받아 안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리고 조그만 종이상자를 하나 비워 병아리집을 짓고, 물이라도 먹이면서 '이렇게 날개도 안 돋은 건 살리기가 힘들어. 다시는 이런 거 사오지 마라'고 한숨쉬듯 타이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데려온 불청객이 받아들여지는 기쁨 때문인지, 나는 엄마의 그 말씀이 병아리의 운명에 대한 묵직한 진단이고 예언이라는 사실을 까무룩 외면한 채 그저 싱글거리기 시작한다.

대개 그렇게 맞이한 병아리는 사나흘을 넘기지 못했다. 하루 이틀 그 이쁜 몸짓과 눈짓과 소리로 한껏 정을 묻어놓고는, 꼭 사흘쯤 지나 밤사이 조용히 눈을 감곤 했다. 혹은 이른 아침에야 아침인사를 하느라고 안아 올려보았을 때, 비칠비칠 졸린 눈을 이기지 못하는 듯 하다가 콧물까지 흘리면 어머니는 '안되겠다' 하시고는 또 발개진 눈으로 '것 봐라, 다시는 이런 것 사오지 말랬잖아'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 병아리를 묻는 일은, 내 어릴 적 겪어온 모든 일상 중에 가장 장엄하고 비장한 의식들이었다. 뽀삐나, 삐약이나, 혹은 빠삐용 따위, 대개 경음을 곁들여 지었던 그 이름을 새기며 '언제까지 기억할게' 하는 마음 속 다짐들은 그대로 숙연한 조문이고 추도사였다.

그런데 내 손으로 묻었던 그 무수한 햇병아리들보다도, '아, 우리가 닭과는 참 인연이 없구나'하고 생각하게 했던 것은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기억되는 그 때 길렀던 열 마리의 토종닭들이었다.

경기도 일산의 산 속 사택에는 옛날 농기구 보관창고 따위로 쓰던, 조그만 부속 건물이 하나 비어있었다. 그 안에는 동그란 장대 하나가 가로질러 걸려 있었고, 대충 치운 다음에 철망으로 앞을 막아 놓으면 닭 몇 마리 기르기 딱 좋게 생겼었다. 게다가 산을 등진 마당 풀밭에는 항상 여러 가지 곤충들이 놀고 있었고, 또 집을 둘러 철망이 담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토종닭 몇 마리 풀어 기르면 사료 챙겨 먹일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찾다 보면 해결책은 쉽게 나오기 마련인지라, 마침 읍내 아는 집에서 토종닭 한 열 마리를 구해줘서, 우리는 병아리가 아닌 큰 닭을 처음으로 기르게 되었다.

과연 토종닭이란 양계장에 바글바글한 여느 집 닭들과는 달랐다. 마당에 풀어놓으면 저희들끼리 알아서 먹이도 해결하고, 알도 잘 낳고, 그냥 두면 저희들끼리 품어서 병아리도 깔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특히 멋있는 것은 얼마나 기운이 팔팔한지, 장난삼아 잡으려고 쫓아 가면 한 길이 넘게 날아서 도망을 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르던 발발이 개 '방울이'가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설사 끈이 풀린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날아다니는 걸 어떻게 해치겠나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닭과 개의 공존을 시도했다. 물론 개줄은 더 단단히 묶었고, 밤이면 닭은 농기구창고로 몰아넣고 모래 거르는 철망으로 앞을 막아 세웠다. 철망이 입구를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지만, 사람 키만큼 높았기 때문에, 방울이가 뛰어넘어 들어갈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게 며칠 지났고, 그 동안 닭들은 꽤 이쁜 짓들을 했다. 최소한 이름을 부를 때 달려오는 맛은 있어야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마치 야생동물처럼 마당을 휘젓고 다니며 곤충들을 제압하는 날렵한 몸짓은 그냥 지켜보기에도 신기했다. 게다가 밤이면, 꼭 옛날 동화책 속에서 본대로 가로질러 놓인 몽둥이를 홰 삼아 올라앉아서 자고있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며칠간 우리 식구들의 관심을 빼앗긴 방울이의 분노도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고, 방울이에 대한 우리 가족들의 경계심은 너무 흐뜨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난 어느 밤, 닭 한 마리가 무슨 변덕이 났는지 철조망 위를 훌쩍 날아 마당으로 나왔고, 마침 개줄을 푼 방울이에게 간단히 물려 희생되어버렸다. 다음날 채 숨도 끊어지지 않은 그 닭은 마당 한 구석에 처박힌 채 발견되었고, 나머지 아홉 마리는 제 자리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다. 방울이의 범행은 정말 식욕과는 별 상관없는 단순한 살해욕구 때문이었는지, 불쌍한 닭의 몸에는 별로 잘려나간 곳도 없었다. 그 날, 우리 식탁에는 닭국이 올랐고, 방울이는 도망가고 싶을 만큼 매를 맞았다.

사실 방울이는 처음부터 묶어 기르던 놈이 아니었다. 집 마당은 물론이고 학교 운동장으로 뒷산으로 훨훨 달리며 제멋대로 족제비도 물어 죽이고, 까치와 공중전도 벌이던 반 야생의 맹수였다. 그래서 밤중에 한참을 낑낑대면 안쓰러워 가족중 누군가 나와 줄을 풀어주기도 했고, 또 좀 어설프게 묶은 날이면 줄을 풀든, 끊든, 아니면 끈이 묶인 대못을 뽑든 간에 수단을 써서 저 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가 그 놈의 주인인 것은 분명했지만, 또 그놈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방울이가 그 닭들을 노리고 있는 한 어차피 예견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바로 며칠 뒤 두 번째 닭이 희생됐다. 이번에는 담장 뒤쪽이었고, 역시 채 죽지 못한 채 반 쯤 흙에 묻혀 있었다. 아버지는 또 그것의 목을 마저 비틀고 털을 뽑아 그 저녁 식탁에 올렸다.

그렇게 몇 마리를 잡은 뒤에, 이젠 마당에 풀어놓기는 포기하고 닭장에 내내 가두어 두려고도 했었지만,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닭들이 다른 집 닭처럼 고이 앉아 사료나 쪼는 종자들이었다면 오히려 그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토종닭들은 날개로 뻗쳐오르는 제 혈기를 이기지 못해 철망을 사뿐 사뿐 날아 넘어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세어 볼 때마다 닭들은 머릿수가 하나씩 비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방울이는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고, 식탁에는 닭국, 닭죽, 백숙 등등 닭요리가 올라왔다.

정말 관심을 빼앗긴 시샘이었는지, 아니면 좀 묵혀두었다가 먹으려던 것을 가로채인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저 사냥꾼의 근성을 이기지 못해 재미로 잡아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방울이는 결국 닭고기는 한 점도 얻어먹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분명히 털 속 어딘가에는 멍이 남았으리라 생각될 만큼 매만 맞고야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예닐곱 번 계획에 없던 닭요리를 먹고서야 별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닭 기르기를 포기하고 남은 두어 마리를 치워버렸다.

그 무렵 이삼일 건너 한 번씩 상에 올라왔던 토종닭 요리들. 어머니로서도 무슨 흥이 나서 만든 것들도 아닐 테니, 특별히 기억나는 맛은 없다. 다만 사냥개도 아닌, 발바리 애완견이 목을 물어 잡은 닭고기 그릇, 그것도 제법 휙휙 날아다니던 놈들이 재료가 된 그 음식은 뭔가 야생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는 느낌만은 또렷하다.

요즘에도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도저히 다른 만만한 먹을거리를 만나지 못할 때, '에라, 돈 한 번 쓰지 뭐'하고 받게되는 토종닭 요리. 그것을 받을 때마다 그 실한 종아리와 억센 날갯죽지가 자꾸만 눈과, 입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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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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