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야구방망이'는 우리 손으로

[이코노피플 - 6] 공금석 ㈜승진산업-맥스 사장

등록 2002.11.09 23:21수정 2002.11.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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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금석 (주)승진산업 - 맥스 대표
공금석 (주)승진산업 - 맥스 대표오마이뉴스 유창재
최근 프로야구에 대한 열기가 한국시리즈로 달아올랐다. 정규리그 4위팀인 LG가 현대(3위)와 기아(2위)를 꺾고 한국시리즈(KS)에 진출했으며, KS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올해로 8번째 도전하는 삼성(1위)과의 승부를 펼쳤다.

팽팽한 투수전도 관중의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야구를 즐기는 재미는 뭐니뭐니 해도 투수의 공을 공략해 더 멀리, 정확히 쳐내기 위한 타자들의 '방망이 싸움'에 있다. 야구방망이의 길이는 33.5인치, 무게는 870그램. 방망이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타자가 친 야구공이 1미터 차이로 담장을 넘어갈지, 야수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 아웃을 당할지가 결정된다. 야구방망이에 따라 승부의 승패가 결정되는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은 주로 '미즈노' '사사키' '슬러거' '루이빌' 등 외국산 방망이를 사용해왔다. 타자들이 그동안 외국산 제품을 주로 사용했던 것은 '좋은 타구를 뿜어대기 위해 품질 좋은 배트를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2000년부터 두산의 선수들이 국내 토종 야구방망이 '맥스(Max)'를 사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국산 야구방망이는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한 '사건'을 계기로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결과 이번 2002년 프로야구 정규시리즈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도 선수들의 50% 이상이 국내 토종 야구방망이 '맥스'를 사용했다. 토종야구방망이 돌풍을 몰고 온 '맥스' 제조업체인 ㈜승진산업 공금석(41) 사장을 지난 7일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한밭경기장 옆에 위치한 맥스 2호점에서 만났다.

- 야구방망이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 야구를 좋아했다. 12년 전부터 전통 목공예를 비롯해 생활용 목공예품을 생산하는 가업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3년 전 친구인 전대영 청주기계공고 감독에게 '국산 야구방망이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평소 좋아했던 야구의 국산화를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나무로 된 제품을 만드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야구에 대한 기술적인 도움은 전 감독으로부터 받았다. 그 후 많은 선수들이 관심을 보여줘 '맥스'가 만들어졌고 성장하게 됐다."

- 국내 야구배트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프로야구팀 8개 구단, 대학 28개 학교 등에서 소비하는 야구배트 시장은 연간 매출 30억 정도다. '맥스'가 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 '미즈노'나 '사사키' 등 외국 브랜드 위주였지만 지난 99년 6월 '맥스'가 출시되자 서서히 달라졌다. 불과 3년 사이에 시장 점유율은 70% 수준에 올랐고, 국산이 8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점차 사회인 체육에서도 나무방망이를 사용해 소비가 증가되고 있다."

- 야구방망이 시장에서의 외국 제품과 경쟁하는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시장규모가 작다. 한국프로야구가 20년이란 역사를 쌓아오면서도 야구용품에 대한 '국산화'를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미국이나 일본의 거대 브랜드들이 이미 국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왔으며, 지금도 힘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맥스'도 국제공인 야구배트로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품질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대한야구협회에서 말한 대로 2달 전에 등록했다. 그러나 게임시작 10일 전에 '안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5개월 전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과 '국제공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일본의 제품은 유명메이커란 이유로 '국제공인' 인증절차 없이 통과됐고, 맥스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긍하기 힘들었지만 '야구협회의 어려운 사정에 그랬거니'고 내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우리의 방망이를 들려주고 싶다."


- 시장에 '맥스'를 처음 내놓았을 때 선수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처음에는 선수들이 국산 방망이를 보면 발로 차버린다고 할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품질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 앞서 사용해보지 않은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맥스는 좋은 재료의 나무로 우리 선수들의 손에 맞게 밸런스를 맞춰 주는 '맞춤방망이'를 생산하고 있다.
맥스는 좋은 재료의 나무로 우리 선수들의 손에 맞게 밸런스를 맞춰 주는 '맞춤방망이'를 생산하고 있다.오마아뉴스 유창재
- 왜 '맥스'가 선수들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됐다고 생각하나.
"지난 2001년 두산선수들이 '맥스'를 사용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때 정수근, 홍성흔 선수 등 두산 선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품질 좋은 나무를 재료로 사용해 우리 선수들의 손에 맞게 밸런스를 맞춰 줬다. 선수 개개인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망이가 있다. 현재 200여명의 선수들에게 '맞춤방망이'를 제공하고 있다. 배트에 각 선수들의 이름과 등번호가 적혀서 제작될 정도다. 개인에 잘 맞는 우수한 제품이란 평가가 선수들 사이에서 내려진 것 같다."


- '맥스'는 어떻게 제작되는가.
"야구배트는 세계적으로 물푸레나무를 주된 재료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 메이저리그를 보다보니 배리 본즈 선수가 사용하는 배트의 재질이 '단풍나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때부터 '맥스'는 야구배트를 단풍나무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일이 손으로 깎았다. 이후 자동화 기계를 개발해 기계화했다. 특히 개개인에게 맞는 민감한 부분은 수작업을 하고 있다. 0.5㎜의 얇고 두꺼움의 차이가 탄력을 결정한다. '맥스'만이 가진 노하우로 선별해낸다."

- 야구방망이의 개당 가격은 얼마인가.
"맥스의 가격은 4만5000원에서 10만원 선이다. 외국산 야구배트에 비하면 상당히 싼 가격이다. '맥스'가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는 외국산 방망이의 가격은 2∼30만원 대였으며, 그 이상 것도 있다. 독점으로 형성된 가격이다. 하지만 맥스가 시장에 나가자 외국산 배트의 가격은 최근 15만원까지 떨어졌다."

- 하루 생산하는 방망이 수와 소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하루에 100자루 정도 제작한다. 원목 1000자루 분을 다듬으면 경기용 배트로 쓸 수 있는 것은 40%에 불과하고, 그 중 탄력이 뛰어난 특제품은 겨우 10여자루 정도다. 방망이의 '밸런스'를 중점에 두고 만들기 때문에 많은 양을 제작하지 않고 소비되는 분량만큼 만든다. 월 평균 판매액은 7∼8000만원(스폰하는 방망이 포함)이다. 100개 중 30개는 프로선수들에게 판매되고, 20개 정도는 대학, 나머지는 구단에서 팬들에게 선물하는 사인배트로 제작한다."

- 혹시 야구방망이 생산을 중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처음 '맥스'를 만들고자 했을 때 아무런 자료가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웠다. 단지 나무에 대한 지식만으로 부딪혔다. 기술을 비교하는데도 어려웠다. 선수들에게 팽배했던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는 것이 큰 고비였다. 또 처음에는 적자로 운영됐다. 목공예상자를 팔아 벌어들인 수익금을 방망이 제조하는데 사용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난달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이젠 외국업체로부터 압력(?)이 들어올 정도다. 대형 외국 메이저 야구용품 업체에서 자신의 브랜드로 야구방망이를 생산해서 시장 내놓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어렵게 만든 우리의 브랜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야구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야구방망이 만들어요."

'단풍나무'를 재료로 맥스에서 만들어내는 토종방망이들.
'단풍나무'를 재료로 맥스에서 만들어내는 토종방망이들.오마이뉴스 유창재
공금석 사장은 외국산 방망이와 자신이 만든 '맥스' 방망이의 품질 비교 실험으로 각각 상표를 지운 다음 선수들에게 사용토록 해봤다. 선수들은 별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며, '맥스'가 국산인 것을 알자 놀라기까지 했다고 한다.

처음 '맥스'를 내놓았을 때 친분을 맺은 선수는 두산의 정수근, 홍성흔 선수 등. 이들 이외에도 김동주, 심재학(이상 두산), 박한이, 강동우(이상 삼성), 김재현, 유지현, 박용택(이상 LG), 박재홍, 심정수(이상 현대) 선수 등 많은 선수들이 '맥스'를 애용하며 공 사장과 친분을 쌓고 있다.

특히 올시즌 타격 및 홈런 순위 20위에 드는 선수들 가운데 '맥스'를 사용한 선수들이 16명에 이른다. 그중 대표적인 선수가 타격 1위의 장성호(기아), 홈런 2위의 심정수 선수.

- 나무에 대한 사랑을 야구사랑으로 발전시켰는데,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평소 '이건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렸다. 얼마나 노력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가능은 없다'는 말이 맞다. 지금도 나보다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배운다. 개개인은 기술로 평가하는 것이다. 우선 '내가 사장이니까'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 회사는 하나의 '팀'이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 하나만큼은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다. 우리 맥스야구팀은 직장인 야구팀 가운데 최고다. 기본적인 철학은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에 어떠한지?
"맥스를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어서 세계시장에 도전할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 불고 있는 야구 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시장의 나무 야구방망이 저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고등학교 선수들도 나무배트를 사용해야 한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던 고교선수들이 프로로 진출하면서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하차 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그리고 작은 규모로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우리 상품을 이용해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공금석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승진산업은 목공예 상자를 큰 회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으로 3대째 목공예의 가업을 잇고 있다. '맥스'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입찰에 참여할 때 선납금을 지불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신뢰도가 높아져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일요일이면 '승진산업' 직장야구팀 2루수로 활약하는 공 사장의 야구사랑은 각별하다.
일요일이면 '승진산업' 직장야구팀 2루수로 활약하는 공 사장의 야구사랑은 각별하다.오마이뉴스 유창재
강원도 홍천부터 시작한 할아버지의 전통 목공예 기술이 공 사장 손에서 '야구사랑'으로 꽃피웠다. 또한 아들 공인식(20)군도 "전통 목공예의 명맥을 이으면서 우리가 만든 국산 브랜드를 지키고 싶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 대학에서 목공예를 전공하고 있다.

공 사장은 12년 전부터 일요일이면 '직장인야구팀' 2루수로 뛰고 있다. 그는 승진산업의 대표지만 야구팀 '승진산업'에서는 2루수로 활약한다. 사원들로 구성된 '승진산업' 직장야구팀의 감독 겸 투수는 길배진(전 한화 투수), 중견수는 노정근(전 해태)씨 등이 있다. 야구선수 출신의 사원들과 사장이 한 팀을 이루고 경기를 하고, 직장에서는 토종 야구방망이의 보급을 위해 뛰고 있다.

이러한 공금석 사장의 야구사랑은 '방망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맥스'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전대영 감독의 청주기술공고 선수 2명을 후원하고 있다. 또 대전에 없는 '대학야구팀'을 내년 창단 예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야구가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야구전용 훈련장' 2곳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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