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김진우씨.조창선
실업한파 속에서도 자신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기약 없는 방랑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소위 '방랑구직자'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 실직자들이 그들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보니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손에 꼽힐 정도. 주위를 둘러보아도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요즘 현실에 어쩌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장애인들은 올해 더없이 춥고 힘겨운 겨울을 나야할지도 모른다. 열악한 취업한파에 내몰린 이들이 이제 설 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일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 헤매야 하는 장애인들의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을 입증하듯, 서울 구이동에 사는 김진우(28)씨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며 직장을 옮겨다녀야만 했던 그간의 방랑구직자 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래도 그나마 김씨가 이곳 저곳 직장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직업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약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도 일자리 마련을 위해 자신의 작은 승용차에 의지해 발품을 팔러 나갈 수 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다른 대부분의 장애인들에 비해 그나마 좋은(?)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들에게 있어 "이동의 자유는"상대적인 개념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김씨 역시 장애인 취업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를 "이동의 자유의 부재"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그나마 최근 정부가 지하철과 휠체어 리프트 엘리베이터 설치 시설 확충을 촉구하고 있어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충족시켜줄 만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이나 기타 선진국과는 달리 장애인이 버스를 타거나, 일반인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 발생한 발산역 장애인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는 장애인들의 "이동의 자유"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고 소홀했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땅에서 소외받고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불합리한 통념 속에서 미리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서울시가 '장애인 이동불편 해소'를 위해 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에 도입될 저상버스나 장애인 콜택시 도입 사업이 집행되기도 전에 예산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조차 흘러나와 또다시 이동 약자들을 섭섭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동권을 보장하며, 이들의 재활을 위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할 의무가 있는 만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확충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김씨와 같은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지 않도록 눈길을 돌려야 할 때다.
기업으로부터 내몰리는 장애인 구직자
사실, 적지 않은 장애인 실직자들은 컴퓨터관련 분야를 비롯해 한정된 몇 몇 직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동의 자유의 부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와 자판기에 의지해 프로그래밍이나 웹디자인, 일반사무 업무 등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실업 한파에 그나마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직자로 전락해 일자리를 찾고 있는 장애인들도 우리 주위에는 적지 않다. 비록 지친 육신이지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피곤한 육신에 활력을 줄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설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이 되고 있다.
고리키는 "인간은 일을 하는 동물이며, 일할수록 끝없는 힘이 솟아나기 때문에 인간이 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을 해주는 것은 장애인 실업대책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김씨의 경우에도 직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어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24살이라는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김씨가 그동안 겪었던 직장생활에 대한 파란만장한 직업 경험담 속에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 가혹할 뿐 아니라 불합리하기까지 하다.
단순히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동에 있어 불편한 것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거나, 요즘같이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때에 장애인 취업은 오죽하겠냐"며 현실 앞에 비겁한 모습으로 함구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이동의 자유와, 일할 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실업대책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쟁취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고용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며 살아왔던 김씨의 가슴저린 직장생활의 경험 속에서는 기업주의 양심을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직장에 출근해 휠체어에 앉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세면이나 식사할 때는 물론 이동간에도 친구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채용하려 꺼려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우리 사회의 장애에 대한 편견과 비틀거리는 기업윤리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동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힘이 들텐데 피곤한 기색 없이 항상 밝은 얼굴로 도와준 덕분에 항상 힘이 됐다"며, 당시의 고마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고용주와 장애인 구직자의 상반된 모습이란 말인가?
아는 사람을 통해 일자리 소개받는 것이 고작
무엇보다 김씨는 장애인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과 그들도 자신이 가진 능력과 기술에 대해 적절한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 자체가 미흡한 점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라고는 아는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는 일이 전부이거나 친척들이 하는 일을 돕는 일 이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장애인들이 이곳 저곳 일자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여건들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떠돌이 일자리를 찾는 일들을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경력을 쌓는데도 남들보다 어려움이 많은 것이 문제다.
실업지원 정책의 부재와 편견
실업 상태에서는 누구나 생계 유지를 위한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김진우씨의 경우에도 금은세공 조각일에서부터, 운전직, 공공근로 등 다양한 직업경험을 겪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에 장애인으로서 실직상태의 공허함을 뼈저리게 경험하는 동시에 나름대로 수많은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김씨는 지금 또 다시 다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김씨와 같은 일부 장애인들은 분명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속에서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장애인들이 그에 합당한 능력을 인정받고 일반인들과 같이 사회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정책의 부재와 장애인에 대한 기업인들의 정체된 인식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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