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학생회를 위해 뛰는 사람들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자성적 노력 필요

등록 2002.11.12 13:34수정 2002.11.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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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의 '학생사회'가 많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학생사회 건설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매년 11월마다 다가오는 총학생회/단과대 학생회 선거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3년만에 접한 학생회 선거는 다수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했지만 당선을 위해 뛰는 선거본부(이하 선본)들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a 총학생회 선거의 다양한 모습들

총학생회 선거의 다양한 모습들 ⓒ 외대학보사

11월 12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 11월 20일과 21일 진행되는 총학생회/총여학생회 선거에 입후보한 선본들의 첫번째 합동유세가 있는 날이었다. 연세대학교에는 총학생회에 4팀의 선본, 총여학생회에 1팀의 선본이 각각 등록된 상태인데, 합동유세를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해당 선본의 운동원들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합동유세 때 일반 유권자들 대신 후보의 선거운동원들만 모이는 광경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학생사회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관심이 갈수록 적어져가는 이때에, 추운 날씨 속에 앉아 있는 운동원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행동은 탈정치화의 속성이 더욱 깊이 배어들고 있는 대학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각기 다른 선본에서 뛰고 있는 두 명의 학생을 만나보았다.

박진우(기계전자공학부, 4학년)씨는 "이럴 때일수록 실력있는 총학생회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학생들은 갈수록 탈정치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교육권,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학교당국을 대상으로 투쟁해야 할 당위성은 여전하다"며, "학우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그것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겨낼 수 있는 실력있는 총학생회의 건설"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선되기 전에는 '선심공약'을 내놓고, 당선되고 나서는 해당 정파의 '정치투쟁'에만 전념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학생회는 정치조직이다. 학내투쟁과 대외투쟁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총학생회가 학외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합목적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하며 그것과의 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학내 문제만을 중심으로 투쟁하겠다고 약속했던 일부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실제로 학내 문제에 대한 학교 당국과의 대립에 있어서는 무기력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현 총학생회에 대한 박씨의 비판 의식은 자못 강렬해 보였다. "학점취소제나 강의동영상제같은 핵심적인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으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강력히 해나가야 하고, 만약 이루지 못했다면 그에 걸맞는 책임있는 대답을 학우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선거운동 기간 동안 계속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리를 옮겨 다른 선본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이진영(경제학과, 3학년)씨를 만났다. 실질적인 '여당' 선본의 운동원인 이씨는 현재의 총학생회에 대해 일고 있는 문제제기들에 대해, "교육투쟁은 상반기에만 '반짝'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쟁해 나가야 하며 02년도 총학생회는 등록금 인하는 물론이고 학점취소제 등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해왔다. 등록금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평하며, 02년에 이루지 못한 문제들도 앞으로의 장기적인 교육투쟁을 통해 성과를 이뤄낼 것이다"라고 답했다.


동일하게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서 학생사회 건설을 위한 운동이 갖는 유의미성에 대해 물었다. 이씨는 "총학생회는 정치조직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문화적 욕구나 일상성에 대해서도 반응해야 한다. 대학사회가 위기라고는 하지만 예산자치제 등을 실시해 보면 여전히 다양한 학내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또 활동성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희망을 걸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진행해 온 정기 문화제 및 학내 단체 지원을 계속해서 살려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총학생회의 역할론에 대해 많은 담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총학생회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라는 것이며, 그들의 대표자를 뽑는 자리에 대해 쏟아지는 학생들의 무관심은 총학생회가 그동안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내지 못해왔음을 입증함과 다를 바 없다. 합동유세가 벌어지는 그 자리에도, 바로 광장 앞에 위치한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앰프를 통해 전해지는 음악과 유세 소리에 짜증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잔치'가 되어야 할 총학생회 선거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담고 있는 고민은 기실 학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진행해 나가야 할 고민이며, 총학생회는 결코 일반 학생들을 '대행하여' 투쟁해 주는 기구가 아니다. 기층의 다양한 운동성을 담은 목소리들이 정치화할 수 있도록 돕고 조율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선본들의 자성적인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기 이전에, 학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견과 불만사항에 대해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수렴된 의견은 총학생회의 사업 집행에 십분 반영되어야 하며, 그것에 대한 평가는 총학생회가 아닌 일반 학생들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 학생들로 구성된 "총학생회 사업 평가를 위한 감사기구" 등의 설립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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