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기행> 표지
작고 하찮은 포구들의 불빛, 곽재구의 <포구기행>
단풍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몇 토막)
시인이 포구에 가서 바라본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오래 생각하며 무엇을 주워왔을까. 요즈음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강의하고 있는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열림원, 9500원)이 나왔다. 이번에 펴낸 <포구기행>은 곽재구 시인의 두 번째 기행산문집.
하지만 시인이 처음 펴낸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과는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 1993년에 펴낸 <내가...>는 시인이 예술가들의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간 일종의 문인 탐방기이다.
하지만 이번에 펴낸 <포구기행>은 우리나라 안의 작은 포구 마을, 하찮아보이고 보잘 것 없을 것 같은 그런 포구에서 따개비처럼 살아가는 어민들의 꿈과 한을 시적인 문체로 잔잔하게 더듬고 있는 기행문집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반도 곳곳에 포구가 없는 곳은 없다. 어떤 곳은 그 포구가 자라서 큰 항구가 되어 부두까지 끼고 살지만, 우리나라 곳곳의 갯마을에 흩어져 있는 대부분의 포구는 항구가 아니다. 그저 작은 통통배 몇 척과 나룻배 열서너 척이 만선의 꿈을 나부끼면서 매여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본다. 지금도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낡고 일부가 찢겨져나간 그 깃발 속에 숨겨진 어부들의 소박한 마음을. 그리고 지지리도 못났지만 멍게처럼 꽉찬 어부들의 그 꿈을...
죽은 불가사리처럼 모든 꿈이 사라진 것만 같은 한적한 바닷가의 그 포구. 방게처럼 작고 해파리처럼 하찮아 보이는 그 포구에서 시인은 잃어버린 시간의 껍데기를 줍기도 하고, 갈매기처럼 끼룩대며 어부들의 소박한 꿈을 들추어낸다.
이 책은 '섬에서 보낸 엽서'로 시작되어 '바다와의 만남'으로 끝난다. 제1부는 '겨울꽃 지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화진 가는 길' '소라고둥 곁에서 시를 쓰다-선유도 기행' '진도 인지리에서 남동리 포구로 가는 길' 등이, 제2부는 '순천만에서'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등이, 제3부는 '남제주군 대정읍 사계포' '우도로 가는 길' 등이 작은 어선에 줄줄이 매달린 집어등처럼 불빛을 깜빡거리고 있다.
파도의 축제가 눈부신 화진, 멸치털이와 멸치구이의 맛이 환상적이었던 정자항, 선유도, 동화와 지세포, 어청도, 삼천포, 구만리, 인지리, 남동리, 순천만, 화포, 거차, 향일암, 회진, 왕포, 구시포, 사계포, 우도, 조천, 지심도, 춘장대, 장항, 상족포구, 어란포구...
"문득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불빛 하나가 보입니다... 작은 배 위에 한 노인이 등불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가 내게 삿대를 내밉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배 위에 오릅니다. 세월이 가고 다시 세월이 오고, 그 속에서 밥을 먹고 시를 쓰고 파도소리를 듣고, 그러다가 그 길목 어디에서 우연히 시의 신을 만나 함께 배 위에 오를 수 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김삿갓 뺨치는 방랑시인 이용한의 <이색마을 이색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