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기행, 외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정

[서평]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읽고

등록 2007.01.03 14:10수정 2007.01.0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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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더 지난 시간을 기억합니다.

"진성아, 이것 받아."
"수녀님. 이게 뭐에요?"
"새해 선물."



a <곽재구의 포구기행> 표지

<곽재구의 포구기행> 표지 ⓒ 열림원

13년 전, 새해 첫날. 수녀님은 성당에서 복사(미사 때 신부님 돕는 일)를 서던 제게 수고한다며 작은 선물을 주셨지요. 어린 마음에 깜짝 놀라 포장지를 뜯었고, 그 속에는 두툼한 책 한 권이 들어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받은 책 선물이라 정말 기뻤지요. 이제 나도 책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설렘이 저를 행복하게 했었습니다. 처음 받은 책 선물은 <아기 참새 찌꾸>라는 제목의 동화책이었어요. 도시에 살던 참새가 초원을 향해 떠나는 줄거리, 집에 가서 며칠을 꼬박 책 읽기에 보냈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화를 지어내는 사람이 누군지, 책을 주섬주섬 살펴보니 글쓴이 곽재구라고 적혀 있습니다.

동화작가, 그리고 산문가에다가 대학교수였던 사람, 곽재구라는 작가의 이름은 어린 제 가슴에 특별하게 기억되었지요. 저도 어른이 되서 저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조금 우습지만 저에게 그는 닮고 싶은 꿈이었죠.

네 이름은 찌꾸다. 우리 집안 최고 명에의 상징이지. 넌 훌륭한 야생 참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 가라. 첫 비행 때처럼, 두려움 없이. - <아기 참새 찌꾸> 중에서


그 꿈을 잊지 않아서일까요? 며칠 전 읽은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제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줍니다. <포구기행>은 우리나라의 포구를 돌며 적은 산문집입니다. 가본 적 없는 포구를 향해 떠나는 저자의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합니다. 그 순수는 다가오는 미래를 받아들이는 자유의 마음일 것입니다.

군산 여색선 터미널에서 배 시간을 본다. 아침 8시30분에 어청도행, 9시에 선유도행의 배가 한 차례씩 있다. 어느 쪽으로 들어설까? 길 위에서 알지 못할 방향 때문에 시간을 쓰는 것은 바보스런 일이다. -p30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마음 따라 기행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여정 속에서 보이는 것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값진 사연과 색채를 띠고 있는 포구의 모습입니다.

@BRI@저자는 구룡 포구, 왕포 포구, 금강 포구 등 우리 포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이 긴 여정에서 저자가 근원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포구의 '외로움'입니다. 모든 포구는 깊은 노을만큼이나 쓸쓸하고 애련했지만 그것은 소외나 방치의 외로움은 아니었습니다. 포구의 외로움은 어쩌면 사랑의 순간보다 더욱 존귀한 인생의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길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p19

포구의 삶은 작고 느리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부터 갈매기, 그리고 생동거리는 멸치 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문득 저도 생각해 봅니다. 낯선, 하지만 정겨운 우리 포구를 여행하며 우연히 동행자를 만나고 또 찾아온 포구사람들에게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그 행복을 찾아 떠난 저자의 포구 여행에 부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포구에 스치는 푸른바다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바닷가의 포구와 함께 하는 자신을 떠올려 봅니다. 그 상상은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곽재구의 포구 기행>은 그 아름다운 기행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의 맑은 언어는 어린 시절 제게 꿈을 준 것처럼, 이번에도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감동을 전할 것이라 믿습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 꿈꾸는 삶의 풍경이 열리는 곳

곽재구 글,
해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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