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흥분시킨 후보 단일화 바람

미주동포사회에도 부는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대한 기대

등록 2002.11.19 07:42수정 2002.11.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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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국일보에 실린 단일화 합의 축하 전면광고 - 정몽준 미주후원회와 노무현 뉴욕후원회 공동명의로 돼 있다.
뉴욕한국일보에 실린 단일화 합의 축하 전면광고 - 정몽준 미주후원회와 노무현 뉴욕후원회 공동명의로 돼 있다.장크리스토퍼
'사실 이번 대선은 민족운명의 중대한 전환점이기 때문에 해외동포도 방관자적 입장에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란 논리를 대면서 전면광고를 낸 광고주측은, '후보단일화 합의를 축하합니다'란 제목으로 이곳 뉴욕 한국일보에 전면광고를 실었습니다.

정몽준 미주후원회와 노무현 뉴욕후원회 이름으로 노무현 후보부부와 정몽준 후보부부 사진을 나란히 실어놓고, 세계는 젊어지고 있고, 대한민국도 젊어지고 있다고 선언한 이 광고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고 CEO대통령과 COO(Chief Operating Office) 국무총리의 출현이 절실하다고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고국한국에서 들어온 소식은 여론집약방식의 구체적 내용이 미디어에 노출됐다는 이유로 국민통합21측 협상단이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결국 합의내용이 백지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선거관리위원회는 단일화 관련 토론회의 TV중계 역시 1회로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사회에 살아온 지 오랜 재미동포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대통령선거가 무슨 어린애 장난인가 하는 푸념을 하게 됩니다.

선거법이 중요하다한들 헌법적인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압도하는 것일까요? 기형적인 법률의 숲에 살고 있는 고국의 정치환경이 정말 이해 안 갑니다.

더군다나 타정당들끼리 제휴해서 공동후보를 낸다거나 단일화 노력을 하는 것은 선거운동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지, 이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궤변을 농하는 거대야당의 태도는 야비한 느낌마저 준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입니다.

이곳 미국에서도 월 초에 중간선거가 있었습니다. 뉴욕주지사 선거에는 현직 주지사인 패태키 공화당후보와 칼 맥컬 민주당후보, 그리고 돈많은 부자 갈리싸노가 제3의 후보로 출마했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던 민주당은 선거막판에 접어들면서, 틈만 나면 갈리싸노의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당신만 사퇴하면 그 표가 칼 맥컬한테 올 거고 승산이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빨리 사퇴해라. 되지도 않을 걸 민주당만 물맥일 일 있냐?' 입달린 민주당원들과 민주당 당직자들은 직접, 혹은 간접, 혹은 기자회견에서 죽어라고 갈리싸노의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패태키 후보진영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걸 걸고 넘어져서 시비 걸지 않았습니다. 걱정이야 왜 안 됐겠습니까? 뉴욕이 민주당 아성인데... 간혹 기자들이 패태키 진영 사람들한테 걱정 안되냐? 이러고 물으면, 고작 한다는 대답이 "갈리싸노가 사퇴한다고 그표가 다 맥컬한테만 가겠냐? 우리한테도 오는 거지," 정도였지, 그걸 갖고 험악하게 굴지도 않았고 행패는 더군다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집요하게 사퇴종용을 받아오던 갈리싸노, 선거 전 주일 금요일, 선거를 닷새 앞두고서는, "낼 모레 일요일날 저녁때 기자회견에서 밝히겠다," 이런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뉴욕타임즈, 뉴스데이, 뉴욕포스트, 데일리뉴스 할 것 없이 죄 나서서, 드디어 갈리싸노가 일요일날 저녁 때 사퇴선언을 한다고 예상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모두 일요일을 기다렸지요.

그런데 왠걸? 정작 갈리싸노 후보는 일요일날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사퇴 안합니다"라고 의표를 찌르고는 선거운동을 계속한 겁니다.

웃기는 것은 그 다음날 아침 이곳 뉴욕 한국어 라디오방송 아침 뉴스에 메트로소식을 전하는 기자 얘기가 갈리싸노가 사퇴를 했다는 겁니다. 아마 짐작컨대, 사퇴가 거의 확실했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놓은 원고를 읽었겠지만 '트루먼 낙선'식 오보가 된 셈이지요.

결국 패태키의 재선으로 막을 내렸습니다마는, 강자면 강자다운 의연함이 있어야지, 아니 상대당들이 단일화하겠다는데, 그 대응논리라는 게 고작, 공정성 시비입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솔직한 감상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오늘 후보단일화 합의를 축하하는 뉴욕광고에, "세계는 젊어지고 있다. 보라! 50대가 이끄는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일본을!" 이렇게 돼있는데, 50대건 젊은 피건, 어쨌든 단일화가 됐을 때 얘기 아니겠습니까? 없는 돈에 전면광고까지 내가면서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는 데, 무슨 핵개발 비밀도 아니겠고 기왕에 알려질 일, 순서가 조금 바뀌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는 신실함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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