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기 위한 고민을 하자는 거죠”

문화테러단 '잡(雜)' 편집장 최철웅씨

등록 2002.11.20 16:16수정 2002.11.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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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테러단·잡(雜). 이름 한번 기똥차게 잘 지었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쯤 문화인이고 싶은 욕망을 찌르고 있기도 하고, ‘테러’라며 비주류이고픈 내면에 깊숙이 다가가 있으며, 잡스럽다는 선정적 뉘앙스까지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벼운 호기심에 ‘잡(雜)’에 실린 글을 읽다보면 심기가 여간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글이 가지는 신랄함의 수위가 편안하게 글을 ‘감상’하는 것을 때려치우고 ‘어떻게 그런 말까지 할 수 있냐’며 꼭 한마디 대거리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000년 발행 초기, 고려대 문화 비판을 목적으로 하면서 성역인 연고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교수를 실명 거론하면서까지 비판하고, 고대신문을 비판하기까지 한호 한호 발행될 때마다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켜 오기도 했었다.

이후 지난 9월 ‘잡(www.shockingkorea.net)’은 9호를 발행하면서 고대를 넘어 대학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제기를 감행했다. 그러고 보니 편집장 얀웬리(본명 최철웅)씨는 중앙대 학생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고려대에서 출발한 이 '자극적' 매체에 어쩌다 연고도 없던 얀웬리가 편집장까지 맡고 있는 것일까.


“원래는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에서 활동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교지들은 대개 '빡세게' 세미나하고 이론적으로 파고들면서 굉장히 어려운 말들을 풀어냈는데 글을 쓰면서도 이것이 과연 내 글이 맞긴 한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그러다 잡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막 쓰더라구요.(웃음)”

그가 ‘막 쓴다’라고 표현한 잡의 매력은 바로 글의 솔직함이다. 당위적으로 맞는 말이기는 한데 제 머릿 속에서 충분히 소화한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글 보다는, 논리적인 면에서 좀 난점이 있더라도 일단 화두를 던지고 소통하자고 도발하는 자세가 오히려 더 ‘글 맛’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잡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얀웬리와 같은 독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솔직히 ‘까발리고’ 또 잘못 생각했던 것이 있으면 승복하는 활발한 토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들과 함께 ‘놀면서’ 게시판에 머물다보니 결국 편집장까지 맡게 된 것이라고.

교지라는 동종업계에 있었던 그가 굳이 ‘잡’을 택하면서까지 풀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소통의 욕구다.

“대학생들 대부분이 소통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주체로 거듭나고 있지 못하고 있어요. 정말 자기생각 가지고 살아가는 건지, 자기만의 가치를 갖고 있는 건지 솔직히 회의적이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논술 쓰듯이 제시된 전형 중에 하나 골라서 자기 의견이라고 내놓는 것 같아요. 이런 상태에서 담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소 직접적이어야 될 필요도 있지 않겠어요?”

이러한 ‘잡’의 ‘공격적 글쓰기’를 다시 ‘공격’하는 수위 또한 만만치는 않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는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라는 식의 우월적인 글쓰기라는 주장이다.

“우월적인 글쓰기가 아주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잡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함께 토론을 하면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상대에게조차 비판의 날을 겨누면서 인격을 걸고 넘어지는 방식은 저도 싫어해요. 비판의 대상을 수단화시키는 거잖아요. 글쓰기도 정치적으로 해야지요.”

권위를 벗어던진 글쓰기

글쓰기 형식에서 독특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잡’ 자체의 정체성은 매우 모호한 의미로 다가온다. 도대체 ‘잡’을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다니나.

“일단, 언어적 실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잡은 언론이라고 생각해요. 언론은 언론이지만, 잡스럽죠.(웃음) 대안언론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언론지라면 권위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수준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형식의 자유로움, 비판의 강도 높음, 수위의 제한 없음은 학내 언론지가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제약을 두지 않고 쓰는 듯한 잡의 글은 자칫 ‘글’이 가져야 할 책임성을 되묻게 하기도 한다. 민감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던진 질문에 얀웬리는 의외의 초연함을 보인다.

“잡의 글에는 책임감을 부여할 만한 권위 자체가 없어요. 그냥 ‘잡(雜)놈’ 몇몇이 모여 수군거리나 보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이죠.”

언뜻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들린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라… 그러나 그가 경계하고 혐오하는 글쓰기 역시 ‘자기만족’적인 글쓰기였다. 글은 읽히지 않으면 환경오염일 뿐이라며 ‘어떻게 하면 잘 읽히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글에 대한 책임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앞으로의 그의 계획 또한 ‘잡’ 만큼 대단친 않지만 야심찬 무엇이었다. 앞으로도 ‘잡’ 게시판에서 솔직한, 권위를 벗어버린 글로써 ‘살아있는’ 담론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 1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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