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사조직을 아느냐?"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6>

등록 2002.11.22 11:55수정 2002.11.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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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제법 있다. 요사이도 중·고등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있는데 입학 때 한 번 맞추면 3년은 입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10대 시기에 청소년들이 대개 키가 10cm에서 20cm가 크기도 하고, 몸무게도 한참 늘어서 체격이 부쩍 달라진다.

이러니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가 ‘교복 크기를 어디에 맞추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지금 크기로 맞추면 1년도 못 가서 손발이 쑥 나와서 교복이 쓸모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크게 맞추면 당장 아이가 어벙하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도 대개는 그동안 경험에 비추어서 옷 크기를 조금 여유 있는 것으로 고른다. 더군다나 30-40년 전에는 옷감 질이 안 좋아서 한 번 빨면 확 줄어드니까 처음에 아주 큰 옷을 사서 손, 발 부분을 접어 넣고 꿰어 입기도 했다. 그래야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폭을 따라 갈 수 있었다. 옷이 몸을 위해서 있다.

즉 사정이야 어떠하든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옷을 맞추어야 한다. 그 반대로 옷 크기에 따라 성장하고 있는 자녀의 손과 발, 몸을 '잘라 버리는 일’은 세상 어떤 사람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요사이 풍요로워진 사회에서는 자녀들 옷이야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치와 선거 문제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정치와 주변 상황이 발전하면 법과 제도는 이를 반영하는 쪽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집행되어야 한다. 정치 관련법과 제도의 목적은 원래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정치 발전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다. 그래서 선거 시기에 이와 관련된 법을 적용할 때는 비유로 말하자면 옷에다가 몸을 맞추기 위해 손, 발을 잘라 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일 16대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 활동을 불법으로 벌여 왔다는 이유로 ‘하나로산악회’, ‘노사모’, ‘청운산악회’ 등 10개 조직을 사조직으로 규정하고 폐쇄와 활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선거를 치르면서 금전 살포, 지역감정, 흑색선전 등 여러 병폐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00산악회’로 대표되어 온 사조직들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중앙일보>는 ‘후보 사조직 폐쇄 잘 했다’, <동아일보>는 ‘사조직은 선거 후에도 문제다’, <조선일보>는 ‘私組織(사조직)보다 선거법이 먼저다’라는 제목으로 각각 20일자에 사설을 실었다. 사조직 활동을 법에 따라 막겠다는 선관위의 선언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사조직들의 해악은 <동아일보> 20일 사설이 지적하듯이 ‘비선조직’으로 ‘관리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필연적으로 검은 돈’과 관련을 맺게 마련이다. 또 ‘선거 후 논공행상’으로 ‘인사의 공정성’까지 문제가 된다. 또 유권자를 금전, 지연, 학연 등을 바탕으로 해서 한 표를 찍게 유도하여 유권자들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기보다는 선거 공작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관위의 이번 발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 발전과 시대 변화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음이 분명히 나타난다. <조선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선거 문화의 변화’가 생기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사조직들은 특히 팬클럽 방식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의 투명성에서 기존의 사조직들과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 발전과 공정한 선거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자금을 투명하게 조성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관위 조치에 적극 반발하고 있는 ‘노사모’의 활동이나 또 여러 후보자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운동’은 시대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정치 현상이다.

<중앙일보>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제일 강경하다. 선관위의 조처에 대해 ‘잘한 일’이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고, ‘너무나 당연한’ 조처라고 하는 후한 표현을 하며 ‘돈 선거의 주범이 조직 선거였고’, ‘오래 전부터 일방적인 선전, 선동 내지 비판, 언론에 대한 무차별 폭언 등 공명선거를 위협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돈 선거’를 가져오는 조직이라는 표현을 보면 국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소액 정치 자금운동을 벌이는 ‘노사모’를 지칭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 다음 문장에 나오는 ‘공명선거’를 위협한 조직은 어느 조직을 지적하는 것인지 문맥상으로는 분간할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된 중앙일보 사설은 나머지 글에서도 정치 개혁이나 국민의 참여를 통한 민주화, 정보화라는 시대 변화라는 관점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폭넓게 사태를 파악하고 신문사의 입장을 밝히는 사설로서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아일보>도 선관위의 명령을 ‘당연한 조치’로 전제하고, 앞에 기술한 사조직의 병폐를 열거하고 ‘사조직이 우리 정치를 망치는 만병(萬病)의 근원’ 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조직 병폐와는 정반대 주장인 ‘자발적 단체’, ‘회원 회비로 운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노사모’는 무조건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앞 뒤 문단이 서로 모순된 논리를 사설로 싣고 있는 동아일보가 무엇인가 정치적인 예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조선일보 사설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비해서 폭넓게 문제를 섭렵하고 있다. 정치, 사회 현실 변화를 인정하고 이를 선거법이 수용을 해야 하는데, 이를 못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었지만 ‘어쨌든’ 법은 법이니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 결론과 입장이 옳으냐 여부와 관계없이 앞의 두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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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수도교회목사 ⓒ 희망네트워크

이번 선거에서는 중앙일보 사설의 지적처럼 '사술을 통한 여론 조작이나 상대에 대한 비방, 흑색선전 등 선거를 추잡하게 만드는 행위’가 완전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모든 언론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언론들이 사설로 회사의 주장을 밝힐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가지고 있는 예단과 감정, 자신의 주장에다 맞추기 위해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왜곡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옷에다가 몸을 맞추기 위해 자라나고 있는 손, 발을 잘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엄청난 잘못을 범하는 셈이 된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권오성 목사를 비롯해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김택수 변호사,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권오성 목사를 비롯해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김택수 변호사,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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