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가 이기는 시대로...

아름다운 승복이 새정치의 밑거름이다

등록 2002.11.25 11:36수정 2002.11.25 15:07
0
원고료로 응원
25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우리는 한국정치에서 새로운 장이 열림을 보았다. 박빙의 지지도를 가진 두 후보가 여론조사라는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범여권의 단일후보를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기네스 북에 오르거나 통계학 책에 세계적으로 진귀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통계학상 오차범위내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번에 그것으로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 것은 사실 절대로 다시 있어서는 안될 해프닝이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에 가까운 국민들이 단일화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주었다.

먼저 아름다운 승복의 모습을 모인 정몽준 후보에게 다시 한번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사실 스포츠의 세계건 정치의 세계건 패자가 승자의 손을 들어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사실이 그동안 한국정치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금단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다.

25일 정 후보의 통큰 자세와 의연한 모습은 한국정치를 단숨에 ‘정글의 정치’에서 ‘규칙의 정치’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정치권에서 뿌리가 깊지 않은 정 후보는 이번 쾌거를 출발점으로 아버지의 후광을 벗고 자생적인 지도자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앞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될 지는 향후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조건과 자원을 탕진해버린 이인제 의원은 반면의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정 후보의 지지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노-정 연대를 반대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번 단일화 과정에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 후보의 파인플레이로 말미암아 두 후보 모두 진정한 승자로 부각되고 있다. 허탈감에 빠져 있을 국민통합 지지자들은 국민들이 절대 정 후보를 잊지 않을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또 기쁨을 느낄 노 후보 지지자들도 지금 유권자통합이라는 새 길의 도입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인위적으로 두 후보가 단일후보에 합의했다고 해서 곧장 단일후보의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불과 25일. 두 지도자는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협력의 틀과 내용을 합의해 내야 한다.

이제 선거구도는 간명해 졌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바라는 대로 선거쟁점이 뚜렷해졌다. 세대교체와 노인정치. 3김청산과 시대교체. 부패정권 연장과 새세대 정치. 이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과 노-정 연합세력사이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노동당과 기타 군소 후보들은 이런 구도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1인1표제 선거에서의 불가피한 핸디캡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공은 노 후보에게로 넘어갔다. 노 후보는 지난 봄 60%에 달했던 지지도가 17%까지 추락해서 전전긍긍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은 기뻐하기보다 그동안의 과정에서 배운 교훈을 통해 성숙한 후보임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냉정하게 얘기한다면, 노 후보 입장에서는 지난 4월 자신의 지지세력을 망실했다가 이제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제2이 노풍을 점화시킬 절호의 기회가 다시 왔다. 그럼 이 중요한 시점에 노 후보가 유념해야 할 대목은 무엇인가?

첫째로 가장 중요한 일은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크게 보아 노 후보의 부덕의 소치였다는 점을 진솔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유권자통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당내외에서 게임의 룰을 파괴하고 자신을 흔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돌린다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둘째, 그를 위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사퇴한 정 후보와 아름다운 팀웍을 선보이는 일이다. 사실 정 후보 지지자들은 비한나라당이면서도 노 후보에게 불만을 느끼고 이탈한 세력으로 보면 된다. 두 지도자가 정말 화학적 팀웍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정 후보 지지자의 다수가 방관하거나 한나라당으로 돌아갈 개연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대선 승리시 공통정책의 내용과 협력의 틀, 향후 정치진로 등에 관한 소상한 내용이 후속협상을 통해 발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노 후보측으로서는 유권자통합이라는 과제를 위해 자신의 정책노선에 대해 전면적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에서는 보혁구도를 기본 컨셉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보도가 있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 의해 노 후보가 지나치게 과격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도 있고 해서 본인으로서는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다양한 층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예선에서는 당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갔다가 본선에서는 중도표에 역점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그런 점에서 정 후보는 노 후보에게는 둘도 없는 러닝메이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질의 노동자당 대표 룰라도 부통령후보로 재벌출신을 임명하여 비토세력을 정면 돌파했다고 한다. 재벌출신과 서민대표의 연대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이인제 의원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치는 원칙과 소신이란 브랜드로 통했다. 그러나 현실이 원칙과 소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노무현 정치를 깊숙이 들여야 보면 항상 주어진 시대적 조건 속에서 가장 실용주의적 선택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민주당에서 가장 개혁적이면서도 계급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 있다.

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치, 개혁적 보수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기대한다. 덧붙여 미국에 대한 노 후보의 정책과 발언 역시 좀더 정교해 졌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최근 여중생 압사 책임자의 무죄평결로 국내에서 반미감정의 고조는 물론이고 소파를 재개정 해야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이런 바램을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각도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의 인식과 발언은 매우 사려 깊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임명한 신의주 특구 장관 양빈을 국내법을 근거로 체포해버린 중국의 조치를 보면서 그 속에 담긴 강대국의 자기 이익수호에 대한 냉엄한 현실을 목도한 바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조절해 나갈 능력을 차기 대통령은 갖추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변강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민족이익의 실현이라는 자주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은 백번 맞지만 원칙 못지 않게 그것을 실현시켜 낼 수 있는 고도의 스킬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노무현 대통령이냐, 이회창 대통령이냐 뿐이다. 이제 12월 19일 기다려진다. 우리 국민이 누구를 선택할 지. 우리 역사가 어떤 방향을 나갈 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