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 여중생의 죽음에 분노...

<이진호의 세상읽기 1>

등록 2002.11.27 14:43수정 2002.12.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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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중생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아마 정부는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대형사고들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차가운 땅에 묻힌 미선이와 효순이를 되살린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도
말 잘하는 정치권도 언론도 아니었다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비참하게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되살린 것은
바로 이 땅의 청소년들이었다
3시간이나 걸려서 시위장에 왔다는 아이
말은 더듬어도 가슴의 울분을 토하던 아이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직접 해결하겠다고
차가운 광장에 모여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고 외쳤던
이 땅의 청소년들이었다

어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분노하였다
담너머로 시위장면을 지켜보며 웃던 미군들보다도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던
이 땅의 경찰이 더욱 분노하게 하였고
미군만의 법정에서 무죄를 받고 웃는 미군병사보다도
법정은 국제적 관례에 따랐고 공정했다고 대변하는
이 땅의 정부가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죽음이 어디 있느냐고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어떤 답도 할 수가 없었다


반미주의자가 아니어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소파행정은 불평등하지 않다는
어느 장관의 말을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소파개정과 함께 미군병사들을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에 대한
죄가를 치르게 하여야 한다
미국에서 이런 사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도록 만들어야 한다

두 여중생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미선이와 효순이가 장갑차에 처참하게 깔려 죽은 자리에서
그래 너희들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두 여중생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본국으로 이송되는 가해 미군병사들을 따라
이 땅에서 영원히 떠나야 한다
이 땅은 분명 살기 좋은 나라이다
무고한 어린 학생 둘을 죽여놓고도 무죄를 받고 웃으며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이고
한국인은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살 수 있는 나라
평화적인 시위라도 벌어지면 경찰이 앞을 막고
알아서 미군을 지켜주고 알아서 국민을 혼내주는
살기 좋은 미군의 나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보다
미군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일이 우선인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일보다
미군의 범죄와 기지를 지키는 일이 우선인가?
죽은 학생들은 불쌍하지만
법정은 국제적 관례에 따라 공정했고
미군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이 땅의 장관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 했다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 같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더 더욱 입이 열이라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어린 아이들의 말처럼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보상비 몇 푼을 받고 없던 일로 하자는 말인가?
장갑차 바퀴라도 법정에 세워 죄를 물어야한다는 말인가?
이제 정부가 나서 대답할 때이다
말 많은 정치권이 나서 대답할 때이다
침묵하는 언론이 나서 대답할 때이다
내일의 희망이라는 이 땅의 많은 아이들이
정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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