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된 미국 언론의 대선 간섭

노무현 후보에 대한 파이낸셜 타임즈의 비딱한 시각

등록 2002.11.29 03:12수정 2002.11.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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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생명의 공정 보도이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진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주된 생명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언론은 이러한 공정 보도의 원칙을 외면하기도 하며 때로는 왜곡된 보도를 통해서 반사적 부가 이익을 얻고자 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일탈된 언론 행태는 독자와 다른 언론에 의해 준엄한 심판을 받을 때만 비로소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서구 언론, 특히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선도 국가의 언론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보도와 보도에 담긴 가치를 정당화화며 이제까지 우월적 지위를 누려왔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바가 없다. 그들에 눈에 비친 것만이 진실이라는 식의 일관된 왜곡성은 여전하다. 이제는 다른 시각, 다른 세계, 다른 언론에 대해 이해하고 관용하는 태도를 보여줄 만도 하건만 그들의 태도는 변화된 것이 전혀 없다.

서구 언론의 이러한 일관된(?) 태도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는 소위 제3세계 국가의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간섭은 종종 도를 지나쳐서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는 특정 세력을 지원하거나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거나 무관한 세력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 또한 이들의 특징이다.

미국 시간 기준 11월 28일 새벽 4시 기사로 올라온 파이낸셜타임즈의 미국판 기사는 이러한 노골적 편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의 어느 커피숍 입구에 "미국인 출입금지(Americans not welcome)"라고 쓰여진 푯말이 걸려 있는 것을 소재로 하여 시작하는 이 기사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감정의 확산을 다루고 있다.

이 기사는 여중생 사망 사건과 재판, 그리고 미국 당국자들의 사과와 같은 사건의 간략한 개요만을 다루면서, 미국 대통령 부시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미군 기지 주변에서 격렬한 시위가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도하면서 이러한 '반미'가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보도가 여중생 사망 사건 재판의 부당성이나 소파(SOFA)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사건을 보도한 LA TIMES나 뉴욕 타임즈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사가 여중생 사건에 대한 왜곡 보도를 넘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더 심각한 편향성을 보이며 끝을 맺는다는 데 있다.


최근에 확산되고 있는 반미가 위험 수준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기사를 마감하면서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자는 은근슬쩍 대통령 선거 관련 내용을 삽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인 노무현은 야당 후보와는 상반되게 북한측에 대해서 동정적(sympathetic)이며, 미국에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을 떠벌리고 자랑한다고(boasts of never having visited the US) 한다(그러나 이러한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후보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떠벌리고 자랑한 적이 없으며, 미국 방문은 필요한 시기가 오면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 가운데 하나인 (한미양국의 군사동맹이) "중단(terminal)"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기사를 마치고 있다.

이 기사는 반미감정을 고조시키고 있는 여중생 사건을 다루면서 한국인들이 왜 이 문제에 분노하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점이나, 소파 개정과 같은 한국민들의 합리적인 대안요구를 게재하지 않은 점도 문제지만, 은근슬쩍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관련 내용으로 삽입하여 마치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한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도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이 기사는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편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한 미국 대사인 허바드씨는 여러 차례 기자 회견을 통해서 "미국은 (두 명의 유력 후보 가운데)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긴밀히 협력할 것이며, 대북 관계는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조율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미 밝힌 바가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관여할 의사도 없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미국 특정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특정 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듯한 인상이다. 일부 지역의 군소 언론들은 최근의 반미 감정의 고조를 일부 후보들이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마치 반미를 위해 이용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이러한 미국과 영국 언론들의 편향된 보도에 대해서 독자들과 한국 언론들의 보다 성숙하고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구를 찍을 것인가는 투표하는 개개인의 자유지만 왜곡된 정보가 입력된 가치관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선과 관련한 국내외 보도에 보다 현명한 판단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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