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야지, 라마단인데...

라마단의 빛과 그림자(2)-그림자 편

등록 2002.11.29 20:15수정 2002.11.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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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라마단이란 금식만이 아니라,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삼가며, 좋고 고운 것만을 가려보며 지내야 한다. 그러므로 싸움도, 나쁜 짓을 해서도 안되고, 지난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씻어내야 한다.

세상일이, 특히 종교에서 그 원래의 순수한 의도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백인백색이란 말처럼 온갖 해석 및 입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약한 인간의 심성은 신앙이 주는 의미보다는 현실이 주는 의미에 치우치곤 한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선다. 무슬림들의 종교의식인 라마단은 무슬림들의 노력과 행위만으로 성취되기 어렵다. 이슬람이란 종교는 애당초 신정의 일치 및 사회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종교였다는 어느 무슬림 지식인의 말처럼 라마단 또한 사회 전체가 여기에 이목을 집중할 수 밖에 없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라마단은 무슬림만의 행사가 아니라, 인니 사회 전체를 이렇게 저렇게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카르타 및 인도네시아 내 여러지역에서는 주지사령 등 다양한 령을 통해서 라마단 기간 중 유흥업소 일시 폐쇄를 실시했다. 해당 분야 종업원들이나 각계 각층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인니 이슬람이 강성 쪽으로 기울어가는 분위기와 더불어 결국 시행은 강행되었다.

금지된 곳은 나이트클럽, 가라오케, 도박장 등 외관상 당연히 금지되어야 할 것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영업정도가 무난한 것들도 함께 영향을 받았다. 술을 마실 수 있거나 가무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다들 영업 제한이나 자진 삼가를 해야만 한 것이다. 이러한 금지조처의 근간을 이루는 생각은 이러한 유희의 추구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경건함을 유지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 동안의 무슬림의 종교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술을 입에 대서는 안되는‘하람-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금지된 것’한 것으로 생각하고, 하람한 것을 접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입게 되거나 더러운 것을 대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들에게는 다른 종교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침과 어긋나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쁜 해악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무슬림들의 경우에는 주변에서 어떻든 자신의 신앙생활을 잘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해석은 제각각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FPI(Front Pembela Islam-이슬람 보호단)이라는 단체는 이슬람 유해 시설을 공격하는 활동들을 확대해 오며 몸집을 키워왔다. 제한 조처는 이들의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급적 무슬림들을 자극할 것들을 제한하고 대립과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실제로 최근 1-2년은 연말 연초의 축제 분위기인 시즌과 라마단이라는 경건한 시즌이 겹쳐 종교간 충돌이나, 파괴와 폭발 사고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쪽은 경건하고 매사에 삼가며 지내야 할 시간이고, 다른 한쪽은 즐거워하며 축하와 향연을 베풀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무슬림이 아니거나, 이러한 이슬람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다같이 이 분위기에 동참할 수 밖에 없다. 괜한 시비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라마단에는 심각한 위해 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마단때에는 싸워서도 안된다고 한다. 때로는 명백히 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참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라마단에는 이런 여가활동이나 시설들마다 제약이 오는 게 아니다. 관공서를 비롯해 일반 기업 등 모든 곳에서 라마단 특별 업무 시간 단축이 벌어지곤 한다. 평소와 같이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다. 심지어 업무 시간이 절반으로 뚝 줄어드는 곳도 있다.

게다가 이둘 피트리 전후로는 명절을 쇠러 간 사람들이 심지어 2주 정도는 자리를 비우고, 이것이 워낙 만연된 분위기라 정부 차원에서 홍보도 하고 엄중 경고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종교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해도, 헌법으로 신앙에 대한 충실을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런 외관적인 종교적 제한조처들만이 라마단 기간을 지내기 어려운 시간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오히려 부정부패의 규모나 액수, 그리고 각종 범죄 발생 빈도가 치솟는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오히려 남을 돕고 덕을 베풀어야 할 상황에 왠 부정부패의 상승에다 범죄의 증가냐는 반문이 잇따르지만, 결국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라 별반 다를 게 없다. 라마단 기간에 이런 경향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우리의 명절 때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라마단을 거친 후 맞게 되는 이둘 피트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라마단을 잘 끝낸 기쁨으로 일년에 한번 맞는 명절을 가지게 된다. 이둘 피트리의 의미는 가톨릭에서 고백성사 후 죄를 벗고 새로워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고통을 이겨내고 모든 허물과 잘못에 용서를 받는 기쁨의 시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새옷을 입고 일가친척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나누며 축제를 벌이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래서 이둘 피트리 때가 되면 우리의 명절 대이동과 같은 대이동이 이곳에서도 벌어지는 진풍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명절에는 돈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라마단 기간에는 굶다 보니 힘도 없고, 일을 하는 여건도 더 나빠진다. 절반 이상의 사회활동이 마비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절은 지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 명절에 쓸 돈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뒷돈을 받는 곳에서는 으레 더 많은 사례금이 주어질 것을 기대한다. 때가 때인 만큼 좀 더 성의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안 받을 만한 경우에서도 돈을 요구하거나 선의를 기대한다. 주머니를 평소보다 좀 더 털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눈치다. 어디서나 선물이나 웃돈을 기대한다.

이런 꺼리가 없는 서민이나 빈민들은 나쁜 마음을 품는 경우가 많아진다. 종교적 가르침이야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실제로 명절은 각종 경비며 그럴싸한 옷과 먹거리 등 가정에 많은 돈이 필요한 때이다.

평소에야 없는 대로 그냥 하루 벌어먹거나 버틸 수 있었지만, 라마단이 되면 이둘 피트리 전에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식사를 굶는 라마단은 사람의 감정을 격하게 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이곳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유로 좀 더 이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범죄의 경우에는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도 많이‘작업’에 나선다는 점에서 그 상태가 심각하다.

실제로 라마단의 경건한 의미와는 달리 각종 쇼핑몰이나 주택단지, 아파트 등에서는 라마단 기간이 되면 긴장과 경계의 상태로 돌입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계가 많은 사는 지역에서는 그 빈도가 훨씬 심해진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 하듯 도둑들이 날뛴다.

한 달동안 하루 절반 이상의 시간을 굶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신실한 마음으로 실천하면 좋겠지만, 인니의 무슬림 상당수는 태어날 때부터 환경적으로 이슬람을 당연히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 중에는 주변의 눈치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금식에 동참하거나 하지만, 실제로는 견디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라마단 때 무슬림들이 신경이 더 날카로워지고 행동을 거칠게 하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니면 내 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들도 함부로 운전을 하거나 조심성이 사라지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금식을 마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의 행동이 훨씬 거칠어지고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한시라도 빨리 금식을 깨고 싶기 때문이다.

원래의 뜻은 좋지만,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선택권이나 자유까지 침해하는 모습들은 솔직히 인정해 주기 어려운 모습이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모든 고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감내하라는 것도 다수가 휘두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니 내 다른 종교인들과 외국인들은 감히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쉬쉬하며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을 진심으로 실천하지 못할 바에야, (남에게 덕을 베풀고 도움을 주고 이해와 배려를 하고 싸움질을 하지 않는 것) 외면적인 ‘굶기’의 실천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라마단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우리 지금 힘드니까, 니들이 알아서 우리를 배려해 줘. 알았어?’라는 식이라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금식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보다는 라마단에 담겨 있는 뜻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이슬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수니까, 우리가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다수 무슬림들의 주문은 그래서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 다수성을 강조한다면, 그들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미국인이“나 친구들 많고, 동조자 많고, 우리가 주류야. 우리 힘세니까 나머지 너희들이 알아서 우리에게 맞춰”라고 하는 식의 태도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온건한 무슬림이든, 강성의 무슬림이든 인도네시아 인 절대 다수니까 이슬람 전통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사는 동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스스로 각성하고 삼가 조심하는 것이 중요한 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제도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살려주지 못하면 비웃음만 사게 될 뿐이다.

각종 핑계를 대가며 낮에도 식당을 메우는 사람들, 덕을 베풀기는커녕 돈을 더 얻어내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 라마단의 경건함을 마친 후 맞이하는 이둘 피트리의 의미는 없고 그저 명절을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적 상황에 몰려 각종 도둑질을 일삼는 좀도둑들이 줄어들지 않는 한 라마단은 일년 중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될 비상기간이라는 그림자를 항상 더불어 가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창 밖에서 금식을 열기 전 준비로 코란을 외는 방송이 한 회교사원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갑자기 이 순간 자비를 베풀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과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예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식들은 그 종교의 신념을 잘 실천하고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정신이 사라지고 없는 외부적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이 하나의 훌륭한 종교로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다면, 자신들의 경건한 실천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것도 사람사는 동네에 있는 한 종교일 뿐이지, 그저 문화적 관습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라마단에 무슬림들은 스스로 한번 이 라마단이 진정 용서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으로 채워졌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결국 진정 훌륭한 종교를 만드는 것은 경전도 의식도 아닌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발현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동시 송고됩니다.


기사를 쓰고나서-
이런 기사를 의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라마단이 되고 얼마 후 저는 한 차례의 도둑을 맞았으며, 지난 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몰한 강도의 위협과 그 긴장을 목격하고야 말았습니다. 혹자는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것이 아닌가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지난 해에도 몇차례의 좀도둑질을 당하고 침입미수사건이 있었던 데 이어, 올해도 일년 내내 조용하다가 라마단이 되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다행히 제가 빨리 외부로 달아나 신고를 해서 잡힌 강도의 경우는 이둘 피트리가 다가오는데 돈이 한푼도 없었다며 자신은 꼭 돈이 있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경찰서에서 풀려났습니다. 초행범이고 제가 봐도 우발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 범인은 그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짓더군요. 여기저기서 굶다보니 충동적으로 사건을 벌였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라마단에는 뭔가 다른 사람에게 가혹한 일을 하려는 걸 피하는 게 무슬림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정심을 이용해 강도는 저희 집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잡히고 난 후에도 코란을 외며 한껏 자신의 가여움을 강조하며 방면을 애원하더군요. 진실을 말하면 경찰에게 선처를 주선하겠다며, 각서를 요구하자 그는 경찰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각서는 쓸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들어오자 다시 그는 꾸란을 외는 등 온갖 연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한심함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그의 인간적 위기모면을 위해 암송되고 있는 꾸란에 대한 가련함(?)을 느꼈습니다. 위기에 몰리면 꾸란을 적당히 외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태가 이미 일반적인 수준까지 알려져 있으니, 그런 사람이 한 두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FPI 는 자의적으로 유흥업소를 부수고 다닐 게 아니라 이슬람을 엉터리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교육을 먼저 시키는 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대략 1년 반을 살았던 집의 계약기간을 5개월이나 남겨두고 짐을 싸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나오면 전화도 없고 여러 가지 불편함이 많은 곳으로 옮겨가야 해서 제가 하고 있는 여러 일들에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물론 인터넷 쓰기도 거의 불가능하지요,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는 ‘dendam hati’ 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집은 각종 도둑들의 만만한 표적이 되었으며, 집 안 곳곳에 쇠창살을 올리고 문마다 열쇠를 채우지 않은 관계로, 외국인이라 반드시 수중에 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과 경찰서에 집어넣은 범인이 자신을 유치장에 갇히게 했다는 보복을 하러 올까봐서 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우스워 보일 지 몰라도, 인니에서는 실제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며, 아주 위협적인 상황입니다. 자의적인 보복 행위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치안 능력도 되지 않으며,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를 한 자에게 자의적으로 복수에 나서는 것은 인도네시아 문화 속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해고된 기사가 차를 훔쳐가기도 하고, 일하던 식모가 도둑질에 연루되거나 우리의 상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물론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는 것처럼 외국인들이 현지인에게 잘못하는 것도 많을 것이고 몰이해도 많을 것입니다. 아주 좋고 괜찮은 현지인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형태와 각종 문화적 상이점으로 인해 교민들이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곡해나 오해의 여지도 있기 때문에 교민생활의 고충 면은 잘 다루지 않으려 했지만, 이곳 사정을 잘 모르고 환상을 가지는 한국인들도 많고, 각종 경각심을 촉구하기 위해 다음에는 교민 생활 관련 주의 사항을 기사로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사건 이후 바로 다음날 남부 자카르타의 부촌 지역의 하숙집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비싼 집세에 관해 후배와 얘기하면서 집세의 절반은 안전비용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습니다. 교외의 저렴하고 일반 인니인들이 사는 지역에 머무른 것은 경제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가능한 현지인들의 생활에 접근해 있고 싶다는 바램도 있었는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도 들더군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술력이 떨어지는 인니에서 집은 심심하면 새고, 수도물은 안나와서 갯물이 섞인 우물물을 퍼올려 비누거품도 안 나는 물을 쓰며 지내고, 심심하면 고장나는 모터 때문에 한강이 된 바닥을 수시로 닦으며 지낼 때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제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와 저희집 식모 아이 울음소리까지 들어가며 겨우 탈출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사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이사를 하는 수 밖에 없었지요.

제가 이런 제 개인사를 쓰는 것은 기사란 이름으로 올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치안 상태의 부재와 힘겨운 교민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곡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기사 속에서는 일상 대화에 등장하는 수준까지는 내용을 담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렇게 환상적인 낙원도 만만한 곳도 아닙니다.

예전에 동 티모르 군대 파병 결정때 인니 한국 교민들이 조선일보에 낸 광고를 보고 오버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았다는데, 저는 이곳 사정을 아는 사람으로서 오버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98년 사태 당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은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인니인들의 습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8년 사태가 나기 전에 30년 넘는 수하르토의 독재를 참아온 인니인들이 그렇게 들고 일어날 줄은 몰랐었죠. 혼란을 조장한 세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혼란 조장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는 인니인들의 습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별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인니입니다.

원래 이 기사는 저번 주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저희집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서 이번주에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미리 미리 기사를 올려 라마단 기간 동안에 좀 더 빨리 이해와 주의를 도왔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상 라마단이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기사를 올리게 되었네요.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넷을 쓰기에 열악한 환경 중에 있어서, 이번 기사들에 좀 더 오자가 많고 문장 구성력이 떨어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니 교민들 여러분 라마단 무사히 넘기시고, 모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동시 송고됩니다.


기사를 쓰고나서-
이런 기사를 의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라마단이 되고 얼마 후 저는 한 차례의 도둑을 맞았으며, 지난 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몰한 강도의 위협과 그 긴장을 목격하고야 말았습니다. 혹자는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것이 아닌가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지난 해에도 몇차례의 좀도둑질을 당하고 침입미수사건이 있었던 데 이어, 올해도 일년 내내 조용하다가 라마단이 되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다행히 제가 빨리 외부로 달아나 신고를 해서 잡힌 강도의 경우는 이둘 피트리가 다가오는데 돈이 한푼도 없었다며 자신은 꼭 돈이 있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경찰서에서 풀려났습니다. 초행범이고 제가 봐도 우발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 범인은 그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짓더군요. 여기저기서 굶다보니 충동적으로 사건을 벌였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라마단에는 뭔가 다른 사람에게 가혹한 일을 하려는 걸 피하는 게 무슬림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정심을 이용해 강도는 저희 집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잡히고 난 후에도 코란을 외며 한껏 자신의 가여움을 강조하며 방면을 애원하더군요. 진실을 말하면 경찰에게 선처를 주선하겠다며, 각서를 요구하자 그는 경찰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각서는 쓸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들어오자 다시 그는 꾸란을 외는 등 온갖 연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한심함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그의 인간적 위기모면을 위해 암송되고 있는 꾸란에 대한 가련함(?)을 느꼈습니다. 위기에 몰리면 꾸란을 적당히 외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태가 이미 일반적인 수준까지 알려져 있으니, 그런 사람이 한 두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FPI 는 자의적으로 유흥업소를 부수고 다닐 게 아니라 이슬람을 엉터리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교육을 먼저 시키는 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대략 1년 반을 살았던 집의 계약기간을 5개월이나 남겨두고 짐을 싸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나오면 전화도 없고 여러 가지 불편함이 많은 곳으로 옮겨가야 해서 제가 하고 있는 여러 일들에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물론 인터넷 쓰기도 거의 불가능하지요,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는 ‘dendam hati’ 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집은 각종 도둑들의 만만한 표적이 되었으며, 집 안 곳곳에 쇠창살을 올리고 문마다 열쇠를 채우지 않은 관계로, 외국인이라 반드시 수중에 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과 경찰서에 집어넣은 범인이 자신을 유치장에 갇히게 했다는 보복을 하러 올까봐서 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우스워 보일 지 몰라도, 인니에서는 실제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며, 아주 위협적인 상황입니다. 자의적인 보복 행위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치안 능력도 되지 않으며,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위를 한 자에게 자의적으로 복수에 나서는 것은 인도네시아 문화 속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해고된 기사가 차를 훔쳐가기도 하고, 일하던 식모가 도둑질에 연루되거나 우리의 상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물론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는 것처럼 외국인들이 현지인에게 잘못하는 것도 많을 것이고 몰이해도 많을 것입니다. 아주 좋고 괜찮은 현지인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형태와 각종 문화적 상이점으로 인해 교민들이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곡해나 오해의 여지도 있기 때문에 교민생활의 고충 면은 잘 다루지 않으려 했지만, 이곳 사정을 잘 모르고 환상을 가지는 한국인들도 많고, 각종 경각심을 촉구하기 위해 다음에는 교민 생활 관련 주의 사항을 기사로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사건 이후 바로 다음날 남부 자카르타의 부촌 지역의 하숙집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비싼 집세에 관해 후배와 얘기하면서 집세의 절반은 안전비용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습니다. 교외의 저렴하고 일반 인니인들이 사는 지역에 머무른 것은 경제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가능한 현지인들의 생활에 접근해 있고 싶다는 바램도 있었는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도 들더군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술력이 떨어지는 인니에서 집은 심심하면 새고, 수도물은 안나와서 갯물이 섞인 우물물을 퍼올려 비누거품도 안 나는 물을 쓰며 지내고, 심심하면 고장나는 모터 때문에 한강이 된 바닥을 수시로 닦으며 지낼 때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제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와 저희집 식모 아이 울음소리까지 들어가며 겨우 탈출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사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이사를 하는 수 밖에 없었지요.

제가 이런 제 개인사를 쓰는 것은 기사란 이름으로 올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치안 상태의 부재와 힘겨운 교민생활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곡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기사 속에서는 일상 대화에 등장하는 수준까지는 내용을 담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렇게 환상적인 낙원도 만만한 곳도 아닙니다.

예전에 동 티모르 군대 파병 결정때 인니 한국 교민들이 조선일보에 낸 광고를 보고 오버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았다는데, 저는 이곳 사정을 아는 사람으로서 오버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98년 사태 당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은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인니인들의 습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8년 사태가 나기 전에 30년 넘는 수하르토의 독재를 참아온 인니인들이 그렇게 들고 일어날 줄은 몰랐었죠. 혼란을 조장한 세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혼란 조장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는 인니인들의 습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별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인니입니다.

원래 이 기사는 저번 주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저희집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서 이번주에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미리 미리 기사를 올려 라마단 기간 동안에 좀 더 빨리 이해와 주의를 도왔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상 라마단이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기사를 올리게 되었네요.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넷을 쓰기에 열악한 환경 중에 있어서, 이번 기사들에 좀 더 오자가 많고 문장 구성력이 떨어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니 교민들 여러분 라마단 무사히 넘기시고, 모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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