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광화문 촛불시위에 다녀와서

등록 2002.12.01 16:47수정 2002.12.0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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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는 친구를 만난다고 말씀드리며 집을 나섰다.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역은 일찍 귀가하는 사람들과 주말을 즐기러 시내로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방 속에 챙겨온 양초 와 종이컵을 확인하고 조금은 불안했다.


인터넷 까페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기는 했지만 과연 몇 명이나 올지.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댓글을 달아놓지 않았었다.

토요일 오후 종각 앞은 여느 때처럼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행히도 동호회 사람들의 참여가 높았다. 가지고 나간 초가 부족하였다. 처음 본 얼굴끼리 약간의 어색함도 있었지만 무엇인가 행동을 같이 한다는 것에 쉽게 연대감이 생겼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다는 집회 시간에 늦어 서둘렀다. 제일은행을 건너 청진동쯤에 다 달았을 때 멀리 교보문고 앞에 촛불들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모일까 내심 걱정하던 발걸음들이 빨라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김용운
경찰은 행여 저지선이 밀려날까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광화문으로 가는 종로거리에는 이동파출소들이 줄지어 있었고 전경들의 표정에는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그들은 경찰로서 임무를 다할 뿐이었다. 미국병사가 전차로 여중생을 깔아뭉개도 무죄가 되는 대한민국. 그 나라 경찰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시위대의 미국대사관 접근을 차단하는 것. 미 대사관을 지키기 위해 경찰들은 두꺼운 전투복 사이로 땀을 흘렸다. 뜨겁지 않은 땀이었다.

서둘러 촛불을 켜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몇 번 참가해보지 않는 시위였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 시위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고 11월의 주말 광화문 복판에 서있는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였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였다김용운
교복차림의 중고생, 머리를 삭발한 대학생, 넥타이를 둘러맨 회사원,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들, 뱃살 나온 중년의 아저씨들, 힙합차림의 젊은 사람들까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이 결코 거저 주워진 것이 아님을 시위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없었기에 하나로 통일된 대오의 모습은 없었다.


시위에 상관없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밀려난 차선으로는 노선버스들이 천천히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전경들만이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짠 스크럼은 종종 위태로웠다. 차들이 지나는 차선이 차츰 줄어들었다.

지난 월드컵 기간 중,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던 언론사 대형 뉴스 전광판에서 실시간으로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그 언론사 앞에 모여있는 수 천명의 사람들에 대한 뉴스는 없었다. 그들은 먼 곳의 뉴스만을 전 할 뿐이었다. 언론사 외벽 높은 곳에 걸려있는 대형 현판의 네온사인은 휘황한 불빛을 내고 있었다. 그 불빛의 공허함과 차가움이 싫었다.


김용운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과 그 것을 가로막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현명하게 행동했다. 핏발선 구호들보다는 평화행진 보장과 소파협정의 개선을 촉구하는 구호에 가장 많은 힘이 실렸다. 전경들과의 몸싸움이 과격해질 조짐이 보이면 서로 서로 자제를 호소했다. 우려했던 불상사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월드컵 당시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던 높은 시민의식은 이날도 다름없었다. 다만 그 시민들이 지금 무엇에 분노하여 모여있는지 애써 외면하는 언론들의 모습만 변해있었을 뿐.

저녁 먹지 않고 모인 것을 핑계로 여덟시 반쯤 집회에 참석했던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빠져 나왔다. 광화문을 경계로 종로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인도는 젊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고 생기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시내는 항상 그랬다.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 술집에 들어갔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술집 안에 있었다. 동호회 사람들 역시 시위에 대해 간단한 소감을 피력하고 이내 일상의 우리들 이야기로 돌아갔다.

우리는 분노했었고 슬퍼했지만 또한 기뻤고 즐거웠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했다.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아우를 수 있기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가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위해 술잔을 부딪쳤다. 술맛이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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