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과 그 것을 가로막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현명하게 행동했다. 핏발선 구호들보다는 평화행진 보장과 소파협정의 개선을 촉구하는 구호에 가장 많은 힘이 실렸다. 전경들과의 몸싸움이 과격해질 조짐이 보이면 서로 서로 자제를 호소했다. 우려했던 불상사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월드컵 당시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던 높은 시민의식은 이날도 다름없었다. 다만 그 시민들이 지금 무엇에 분노하여 모여있는지 애써 외면하는 언론들의 모습만 변해있었을 뿐.
저녁 먹지 않고 모인 것을 핑계로 여덟시 반쯤 집회에 참석했던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빠져 나왔다. 광화문을 경계로 종로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인도는 젊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고 생기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시내는 항상 그랬다.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 술집에 들어갔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술집 안에 있었다. 동호회 사람들 역시 시위에 대해 간단한 소감을 피력하고 이내 일상의 우리들 이야기로 돌아갔다.
우리는 분노했었고 슬퍼했지만 또한 기뻤고 즐거웠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했다.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아우를 수 있기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가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위해 술잔을 부딪쳤다. 술맛이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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