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향기에 마음까지 취하고

전북 부안 내소사를 찾아

등록 2002.12.02 17:41수정 2002.12.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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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무 향이 그윽한 내소사 전나무길. 거리가 1km에 이른다.

나무 향이 그윽한 내소사 전나무길. 거리가 1km에 이른다. ⓒ 조경국

주말을 꼬박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전라남북도를 헤메고 다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변산반도였다. 삐죽이 중국 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변산반도는 서해안 고속도로 줄포 인터체인지에서 출발해 변산반도의 끝자락을 타고 도는 일주도로를 따라 부안읍으로 들어가는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도 나오고, 해넘이가 이름난 채석강도 나온다. 화창한 일요일에다 김장철이 코앞이라 도로변 곳곳의 젓갈집 마당에는 외지 차량으로 북적인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였던 윤구병 선생이 터를 일군 한울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변산공동체 학교를 찾았지만 미리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불쑥 불청객처럼 방문했던 터라 결국 실례만 끼치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a 내소사 전경. 백제 무왕34년(633년)에 지어졌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조선시대 중건된 것이다.

내소사 전경. 백제 무왕34년(633년)에 지어졌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조선시대 중건된 것이다. ⓒ 조경국

먼길 왔지만 결국 ‘헛일했구나’ 싶어 후회가 깊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마음 편하게 다시 한번 찾아오자고 툭 털어 버리고 나니 그제야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뒤 사정보지 않고 일만 생각하고 달려왔더니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기 위해 변산면에서 줄포 인터체인지 쪽으로 가다 보니 내소사 표지판이 눈에 띄어 귀가 시간 늦어지는 것도 생각지 않고 내소사 길로 들어섰다. 주차비, 국립공원 입장료, 문화재 관람료까지, 아내까지 포함해 들어가는 데만 거의 1만원 가까운 돈을 쓰고 보니 이거 또 한 번 후회할 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풀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아내는 오랜만에 남편과 먼 곳까지 길을 나선 것에 행복해 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모난 마음만 가득했던 것이다.

a 대웅보전의 꽃살문. 채색이 벗겨졌으나 오히려 단아하고 아름답다.

대웅보전의 꽃살문. 채색이 벗겨졌으나 오히려 단아하고 아름답다. ⓒ 조경국

그렇게 한적한 전나무 숲길을 들어서자 향긋한 나무냄새가 온몸을 휘감았다. 1㎞ 쯤 되는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향기에 취한 얼굴이었다. 운치(개인적으로 가장 운치있는 가람의 출입로를 꼽는다면 소낙비가 내리는 날 찾았던 선암사 숲길과 새벽 안개 낀 다솔사의 소나무 숲길이다)는 다른 곳보다 못하지만 그 향기만은 최고다.


목조건축의 정수,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두타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소소래사와 대소래사가 있었으나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가 지금의 내소사가 되었다고 한다.


내소사는 꽃살문이 아름다운 대웅보전(보물291호)과 고려동종(보물277호), 영산회괘불탱(보물1268호)이 유명하다. 조선 태종 때 이씨 성을 가진 부인이 죽은 남편 명복을 위해 글 한자 쓰고 일배(一拜)하며 정성을 다해 법화경을 완성하자 죽은 남편이 나타나 부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는 전설을 지닌 법화경절본사본(보물278호, 현재 전주박물관 소장)도 전해져 온다.

a 대웅보전 천장에 조각돼 있는 '잉어를 물고 있는 용'. 바닷가에 위치한 가람이기에 가능한 형식이리라.

대웅보전 천장에 조각돼 있는 '잉어를 물고 있는 용'. 바닷가에 위치한 가람이기에 가능한 형식이리라. ⓒ 조경국

대웅보전의 꽃살문인데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채색이 모두 벗겨졌으나 윤곽은 또렷하다. 실상사 약사전의 꽃살문 보다 형태는 화려하나 색이 없어 단정한 멋이 있다. 특히 대웅보전은 쇠못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나무로만 지어졌다고 하니 옛 장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대웅보전의 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이 잉어를 물고 있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있어 어부들이 시주를 많이 하는 절이라 용이 잉어를 물고 있는 모양으로 조각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마주 하고 있는 용은 번개와 여의주를 함께 물고 있어 풍어와 안전을 함께 기원하기 위한 상징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대웅보전 하단에 위치해 있는 봉래루나 □자 구조의 요사채인 설선당도 멋스럽다. 하지만 10여 년 전쯤에 봉래루의 높이가 원래보다 높아졌고, 설선당도 안마당에 철구조물이 들어서 본 모습이 훼손되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옛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보다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변산반도

a 내소사 사천왕상.

내소사 사천왕상. ⓒ 조경국

수도권에서 오던지 남도에서 오던지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려 변산반도는 하루 관광지로는 제격이다. 일주도로를 따라 여기저기를 구경할 수도 있고, 내소사를 보고 내변산 등산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변온천인 변산온천에 피로를 씻어 낼 수도 있고,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짭짜름한 젓갈로 입맛을 돋을 수도 있다.

조금만 여유있게 도착했더라면 이 모든 것을 찬찬히 보고 갈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기회로 내소사와 해넘이까지 구경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반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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