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도 명절 귀향전쟁

인니의 명절맞이 대이동

등록 2002.12.05 05:11수정 2002.12.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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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풍경 (사진협조 인니 일간지 Kompas-Yuniadhi Agung 사진기자)
귀향풍경 (사진협조 인니 일간지 Kompas-Yuniadhi Agung 사진기자)Kompas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만 되면 고향과 혈육을 찾아 전쟁과 같은 먼 길을 마다 않고 꾸역꾸역 길을 떠나는 민족은 세상에 한국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런 한국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말한다. "우물 안 개구리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고.

지금 인도네시아는 귀향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바야흐로 1년의 단 한번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곧 금식월이 끝나고 맞게 되는 '르바란' 또는 '이둘 피트리'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들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슬람력 9월이라는 금식월(라마단)은 실제로 무슬림에게는 한 해를 정리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마치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사하여 받듯, 이들은 금식월 동안의 금욕과 금기 및 '따라웨'라는 금식월 특별 종교집회 및 다양한 종교 심화 활동을 통해 자신들을 정화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날, 이둘 피트리를 맞이하는 것이다.(인니에서는 보통 이둘 피트리란 단어보다는 르바란 이란 단어를 통해 이둘 피트리 명절 기간을 표현하는 게 보편적이다.)

이 이둘 피트리는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서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특별한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한국의 귀향전쟁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인도네시아의 귀향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명절에도 각 역, 터미널, 톨게이트들이 북새통이다. 물론 인니에서도 이런 장소들의 북새통은 기본이다. 이둘 피트리 일주일 전부터 각 언론들은 귀향 동향을 전하면서, 조언을 덧붙이기도 하고 상황예측을 전했다. 이런 귀향 상황을 일주일 정도전부터 시작하는 것은 인니 땅덩이가 워낙에 크고 길기 때문이다.

인니 국내에서 시간차가 2시간 나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국토가 넓게 분포한 인니에서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그만큼 길다. 하루 고생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고향이 아닌 것이다. 자바섬 안에서만 웬만한 지역에는 하루 종일 차를 갈아타 가며 찾아가야 한다. 이것이 외곽도서가 되면 그 시일은 그만큼 길어진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하루 안에 다 가겠지만,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 배라도 타고 가면 그나마 가까운 수마트라 섬도 3일은 소요된다고 한다. 이 섬들이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더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 저쪽 파푸아뉴기니 끝에 붙어있는 파푸아에 배를 타고 가는 것은 10일 이상 걸린다고 한다.


파푸아나 동부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도 귀향길에 동참한다. 그것은 금식월 기간이 대체로 연말, 연초 주변에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최대 명절인지라 그들은 또 다른 종교적 행사를 이유로 귀향길에 나선다. 이래저래 귀향을 향한 대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지금의 귀향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나마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고, 멀리 사는 사람들은 훨씬 전에 귀향길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멀리 가야할 수록 비용도 엄청나므로 그만큼 숫자가 적으니, 그나마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지금 명절 대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금식월 시작부터 각종 운송수단 티켓이 매진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에는 표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터미널이며 도로며 차와 사람들로 들어차 정신 없는 모습이 연일 나오고 있다. 귀향객들의 안전을 위해 곳곳에 경찰 인력들이 파견되어 연일 주요 일과로 상황을 보고한다.

또 하나 진풍경은 항구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은 항구의 귀향 모습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도서국가인 인니에서는 초대형 선박들로 들어찬 항구에 사람과 차들이 가득하다. 배에 탄다는 것이 간단히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서 차를 세워두고 아예 자리도 펴고 먹고 쉬고 놀아가며 기다리는 사람들과 차들의 행렬은 또 다른 이색적 풍경이다.

어마어마한 배에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는 차량들의 모습과 드넓은 항구를 채운 사람들의 모습은 항구야말로 귀향의 주요장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귀향을 하는데 배에 차까지 실어가며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항구에서부터 장사진을 치며, 차까지 끌고 배를 타고, 그 배에서 내려 다시 그 차를 타고 구석구석의 고향으로 가는 것이 인니의 귀향 풍경이다.

가뜩이나 금식월로 각종 사회활동이 제약을 받는 가운데 자영업을 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일을 접고 먼저 고향을 내려가기도 한다. 직장에 매어있는 사람들은 휴가기간을 이용하게 되는데 인니 드넓은 국토 상황 덕분에 휴가기간도 상당히 길다.

처음에 3일로 지정되었던 공식휴가가 실제로 사람들이 복귀를 못하는 현실을 이유로 5일로 늘어났다. 하지만 각종 직장에서 잡고 있는 휴가기간은 빠른 경우가 1주일, 일반적으로 2주 정도는 기본적으로 소요된다. 이와 더불어 자카르타 증권시장은 1주일간 공식적으로 시장을 닫았다.

공무원들의 경우는 매년 원대 복귀를 제 날짜에 하지 않을 때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포성 보도가 나오지만, 실제 상황은 경고가 먹혀들지 않는다. 공식 휴가 후 원대 복귀율이 50%에서도 한참 아래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경우도 이러하니 다른 곳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최소 1주 이상은 사회 전체가 정지되고 이후에도 정상으로 돌아오는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이렇게 고향으로 향하고, 휴가기간을 정하느라 법석인데 4일 아침까지도 1-2일 후여야 하는 이둘 피트리 날짜가 공식 발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5일로 할 지, 6일로 할 지 각종 종교단체와 회합을 통해 의견 조정을 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하니 이슬람력 계산이라는 것이 정말 특이한 것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문제로도 무슬림들은 종교일을 제대로 못 지킬까봐 한 걱정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거리에 '돈 판매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귀향하는 길목들에 나와 돈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파는 돈은 '진짜 돈'으로서 주로 1000 루피아 짜리 소액권으로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에서 갓 발급된 빳빳한 새돈이다.

즉 명절에 고향에 가서 친척 아이들이나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새돈을 판매하는 것이다. 새 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수고를 더는 대신 간편하게 이 돈을 산다고 한다. 명절이 이미 가까운 관계로 이런 빳빳한 소액권들 한 묶음 2만 루피아가 2만 5천 루피아에 팔린다고 하니 꽤 짭짤한 장사가 된다.

하루 판매량이 5백만 루피아 정도에 이른다는데 장사꾼들은 은행도 문을 닫고, 명절도 가까워 더 높은 웃돈을 받고 돈을 팔 수 있다며 희망찬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우리나라 세뱃돈 주듯이 돈을 나눠주기 위해 새돈을 준비하는 것이 어찌나 비슷한 지 매우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그런 돈을 파는 장사꾼들이 그렇게 많다니 그런 현상 또한 생각지 못한 모습이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라마단이 끝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지금 각자의 고향으로 밀려 밀려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 지오리포트에도 동시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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