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전설의 명반

김정미 'Now'

등록 2002.12.09 22:31수정 2002.12.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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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Now' ⓒ 배성록

수록곡
1. 햇님
2. 바람
3. 봄
4. 나도 몰래
5. 불어라 봄바람
6. 당신의 꿈
7. 아름다운 강산
8. 고독한 마음
9. 비가 오네
10. 가나다라마바사


[Now]는 [바람]과 더불어 김정미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이건 조금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람]과 [Now] 모두 10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무려 7곡(바람, 비가 오네, 아름다운 강산, 불어라 봄바람, 나도 몰래, 당신의 꿈, 고독한 마음)이 서로 겹치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버전인가 하는 기대도 하지 마시길. 7곡 모두 같은 음원이다.

‘장난하나?’고 하려거든 필자 말고 신중현 새임께 가서 따져야 한다. 물론 그 때 당시로서는 같은 내용물의 음반도 커버만 바꿔서 수없이 재탕하곤 했으니까 이 정도는 별 일도 아니겠지만.

물론 이는 [바람]이 먼저 재발매 되었기에 하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LP 수집가들에게 있어 서열상으로는 분명 [Now]가 훨씬 높으신 분 대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Now]와 [바람]은 전혀 무게가 다른 음반이다. 이는 <봄>, <햇님>과 같은 싸이키 가요의 걸작이 첫 두 트랙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70년대 금지곡 가운데 하나인 <가나다라마바>의 색다른 버전이 실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복각된 CD에서는 초기 LP와는 곡의 배치가 조금 다르다. <햇님>이 첫 트랙, <봄>은 세 번째 트랙에 실려 있다)

겹치는 곡이 많으니 만큼 딱 세 곡만 ‘장황하게’ 설명해 보자. <햇님>은 정갈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시작된다. 곧이어 김정미의 그 고혹적이면서 섹시한 음성이 등장하는데, 시종 몽롱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김정미의 보컬은 듣는 이에게는 황홀경에 가깝다. 반복되는 기타 멜로디, 서서히 얹어지는 고풍스런 오케스트레이션과 플루트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막바지에는 김정미의 허밍과 함께 여성 코러스가 가세해 선율을 더욱 여러 층위로 분화한다. 이렇게 고조된 환각이 끝까지 치달을 무렵, 곡은 잠시 뚝 끊겼다가 다시 전주를 되풀이하며 ‘수미쌍관법’으로 마무리된다. 사견이지만, 이런 곡을 만들려면 반드시 싸이키델릭한 ‘체험’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신을 차릴 때쯤에 등장하는 것은 [바람] 음반에서 들었던 것과 동일한 음원의 <바람>이다. 예의 제퍼슨 에어플레인 영향을 받은 곡으로, 앞의 고풍스런 <해님>과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헌데 이에 이어지는 <봄>이 다시 <해님>과 같은 고풍스런 싸이키 가요인 것을 봐선, 신중현은 복각 과정에서 이 곡이 <해님>과 함께 <바람>을 포위하는 모양새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다.

곡 배치의 변화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봄>은 감동적이다. 이쯤에서 재킷의 사진을 한번쯤 눈여겨 봐줘도 좋다. 신중현이 직접 찍은 이 사진은 전경 없이 파란 하늘만이 가득 펼쳐진 가운데,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풍경인데, <봄>의 느낌이 꼭 이 사진과도 같다. 우선 연주도 연주지만, <봄>과 <햇님>에서 나타나듯 단조에서 장조로 짚어 나가는 신중현의 작곡 스타일로 인해 곡 자체로서 기기묘묘하다. 또한 여기서는 현악 반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여전히 고색창연하지만 좀 더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트링은 마치 옛 스파이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분위기를 주도한다.

어찌 보면 밴드와 잘 어울리기 힘든 요소인 현악 반주가, 이 곡에서는 보컬을 중심으로 완급이 제대로 조절되고 있다. 가령 기타는 전주부의 아르페지오를 제외하고는 기타 배킹에만 골몰하고, 베이스와 드럼은 ‘반주’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이 지원 속에 김정미는 시종 ‘봄바람 난 처녀’마냥 좀 더 간드러지게, 교태부리듯 노래한다. 작곡과 연주와 보컬의 삼위일체 속에서, 봄날 들녘에 향기 흐드러지는 듯한 고양감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 들뜨게 만드는 이 음반은, [바람]의 수록곡들을 다시 한번 들려준 뒤, <가나다라마바>로 끝을 맺는다. 72년 음반에 수록되었던 곡을 다시 불렀는데, 코러스와의 콜 앤 리스폰스(Call & Response)나 내추럴한 톤의 기타음이 색다른 매력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 고음의 코러스는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김정미의 이 음반마저 재발매됨에 따라, 이전처럼 LP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다소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정미가 갖는 신비감은 여전한데, 이는 아마도 김정미가 철저히 ‘음악만으로’ 기록이 남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간간이 근황이 전해지며 죽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김추자에 반해, 김정미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금 어디 사는지 특별히 수소문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는 인물이다.

섹시한 목소리에 반해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하고 물어봐도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카더라’는 말밖에는 해줄게 없다. 그냥 이렇게, 음악의 열락을 맛보며 그 때 그 시절을 ‘나름대로 상상’하는 수밖에. 어찌 보면 그게 바로 김추자와 다른, 김정미만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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