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용인가, 반미 제압용인가

[긴급진단]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등록 2002.12.11 17:09수정 2002.12.1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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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공해상에서 나포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명시한 것으로 거듭 확인돼, 한반도의 정세가 위기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군은 지난 12월 9일 스페인 해군과의 공조를 통해 인도양을 지나던 북한 선박을 나포해 조사한 결과, 10여기에 달하는 스커드 미사일이 시멘트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전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이 나포된 것은 지난 99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핵·미사일 군비경쟁이 치열했을 때, 인도군에 의해 나포된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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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12월 12일자 초판 <한겨레그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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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여러 차례 경고해온 미국이 군사력을 통해 나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로써, 미국이 군사 행동을 포함한 본격적인 대북한 봉쇄정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특히 이번 미국의 군사 행동은 북미 관계뿐만 아니라, 남-북, 북-일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돼, 향후 한-미-일 대북 공조체계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 내에서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이 예멘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일부 관리들이 알-카에다나 이라크로 향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 미국 내의 반북감정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알-카에다는 9.11 테러의 주범으로, 이라크는 '테러와의 전쟁'의 다음 목표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북한이 이들에게 미사일 수출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될수록 북한에게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 내의 주장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도, "북한이 테러집단과 구체적인 연계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봐왔다.

@ADTOP1@
부시, 북한 미사일 수출막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을 왜 마다하나?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이 미국의 식량지원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계속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에 미사일 수출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9.11 테러 이후에도 이러한 미사일 수출을 늘려왔고,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다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이 가운데 일부를 또 수출하는 악행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것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정작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의 '위험성'만 부각해왔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을 거부해왔다. 이는 이번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 사건에서도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북한의 미사일 수출문제를 포함한 '안보 우려' 사안들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기본적으로 극심한 경제난을 완화하기 위한 '외화벌이용'으로써, 북한으로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을 파는 것이다. 이는 CIA 보고서를 비롯한 미국 정부측의 문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의 배경이다. 또한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굳이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지 않더라도 국제법적으로 북한의 '주권 사항'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자국과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경제적 손실 및 주권의 제한에 대한 당연한 보상인 것이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의 미사일협상에서 초기에는 수출포기 조건으로 '현금'을 요구했다가, 이후에는 식량 및 에너지 등 '현물' 보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러한 북한의 협상안은 '현금'이 아니라 '현물'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미국이 우려하는 미사일 확산 및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재원 확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가슴아파하는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와 같이 클린턴 행정부 때 북한과 협상한 내용을 걷어차고, 북한위협론을 부풀리면서 공격적인 대외정책과 군비증강을 합리화하는데 활용해왔다.

@ADTOP2@
부시,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 명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든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 사실을 확인하면서, 북한, 이라크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는데,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10일(미국 시간) 백악관 발표를 통해, 적국이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로 미국과 해외 주둔 미군, 동맹국을 공격할 경우에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지난 3월 미국 언론에 유출돼 논란이 벌어진 바 있는, 핵태세 검토(NPR) 보고서의 내용을 백악관이 공식 확인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의 적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거나, 조립하기전에 선제공격을 통해 파괴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다고 미국이 믿는다면, 선제공격을 통해 농축 우라늄 시설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가 11일 백악관의 1급 비밀 문서를 인용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외에도 북한,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북한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북한에 처음 적용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지난 11월 17일 성명을 통해,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발언한 것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미국이 왜 이 시점에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를 강행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무죄 평결이후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과 한국의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고, 또한 국제법적으로 나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행동을 강행한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재차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중동을 비롯한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세계 무기수출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 있었고, 이를 거부한 것은 부시 행정부라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의 나포를 통해 군사적 일방주의를 한층 강화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이러한 목적하에 나포를 강행했을 것이다. "이래도 북한이 악의 축이 아니냐"며 정치적 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이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동맹국들을 다그치는데도 활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는 변했다"며 핵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근거로도 이용될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의도성 여부를 떠나 한국의 대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는 이번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미국측 시각에 동의하면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후보를 싸잡아 비난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나무'는 보면서, 민족공동체의 생사가 걸린 2003년 전쟁위기라는 '숲'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전쟁과 평화'라는 양보할 수 없는 근본 문제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초당적인 협력과 대선 후보들의 확고한 비전을 주문한 바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접근했다가는, 이를 통해 설사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집권 초기부터 사실상의 '식물 대통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손을 맞잡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막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국민들앞에 보여주는 모습은 정작 꿈같은 얘기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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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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