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에서 느끼는 것

등록 2002.12.11 21:44수정 2002.1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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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1년 지난 여름 아침에 회룡역

2001년 지난 여름 아침에 회룡역 ⓒ 김선경

아침 9시 04분 회룡역, 플랫폼에 사람들이 발을 들여 놓는다. 지하철이 오는 시간마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무의식 속에서 존재 해버린 습관과도 같은 것이 되었나 보다. 곧이어 휑한 바람 소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든다.


오늘따라 지하철 마찰음이 나의 고막을 갉아 먹는 것 같다. 사람들의 죽쳐져 있는 어깨들만큼이나 한숨의 깊이는 점점 더해져 갔다. 지하철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더운 입김이 나의 볼에 전해졌다. 여기가 바로 지하철 1호선이다. 사람들의 입김 또한 다른 지하철과 다르다. 풋풋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사람들의 냄새, 아니 향기, 지하철 1호선은 다른 지하철과 다른 묘한 향이 있다. 출근시간이 얼추 지난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아직 공간공간을 향유하고 있다. 나의 공간 문 앞 기둥,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봉산과 수락산의 전경에 흠뻑 취해 버린다.

“덜컹덜컹 끽~~~”
“다음 내리실 역은 창동, 창동역 입니다.” 친숙해져버린 그녀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4호선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힘찬 건지 아니면 무엇에 쫓기는지 제 각기 최대한의 속력으로 1호선을 탈출하려 한다. 무언가 아는 사람들은 스텝을 굉장히 빨리 한다. 자신의 가지고 있는 힘껏 자신의 비상루트를 이용해 4호선으로 단 번에 질주해 승차까지 멋지게 골인한다. 뒤늦게 지하철을 탑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쾌재의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는 사람들. 단순한 승리이상의 값진 교훈을 느낀다. ‘앞서가는 것만이 세상을 바꾼다.’

a 2001년 여름 용산역 퇴근길

2001년 여름 용산역 퇴근길 ⓒ 김선경

난 4호선을 타지 않았다. 아주머니들 못지않게 자리 하나를 꿰찼다. 잠자기에는 매우 불편한 자세, 그러나 사람들의 짙게 배인 삶의 향기는 자못 나를 꿈의 나라로 인도했다. 잠시 앞뒤로 강하게 해드뱅잉 치고 좌우로 오뚝이 인사를 한다. 문득 정신이 들면 어느덧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몫에 받는다. 극도의 불안감……. 땀은 조금씩 나의 등가에 맴돌다 머리 속을 소용돌이치다 이내 이마 앞에서 강하게 다이빙을 한다. 나의 앞에는 이상하게도 꼬마 아이, 할머니가 모인다. 왜 그럴까? 내가 그렇게도 만만한가? 쭈뼛쭈뼛 앉아있다 이내 멋있게 자리를 양보한다.

“할머니, 저기 자리에 앉으세요, 저 이번에 내려요.”
어디 CF라도 한번 나옴직한 멘트를 날렸을 때 할머니의 당찬 한마디.
“내두, 여기서 내리는디?”

할 말이 없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품속으로 나를 파묻는다. 사람들은 이내 나에게 삶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크게 숨을 한 번 내쉬는 동안 사람들은 바삐 종종 걸음을 하며 계단을 오른다. 이내 문은 닫히고 지하철은 어둠 속으로 붉은 마그마를 머금고 다시 화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둠의 공간 속으로 사람들의 향기를 내뿜으며 지하철 1호선은 그렇게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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