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 참아야 하는 것임을

"너희가 자유를 아느냐?"

등록 2002.12.12 16:20수정 2002.12.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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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해의 제자들을 일컬어 첫배 새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제 바로 첫배 새끼 중 한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얼른 알아채지 못하고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가 9회 졸업생이라는 말에 그만 반가움과 함께 한참 오리무중이던 기억까지 되돌아왔습니다.

"9회 졸업이면 영상이 하고 같은 반이었겠구나."
"예, 맞습니다. 제 이름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럼. 기억하다 마다. 너는 너무 착실해서 이름이 얼른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이야."

제가 첫 담임을 맡은 지도 벌써 15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러니 아무리 첫배 새끼라고 해도 이름만 대면 척하고 자동적으로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오는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제자들은 십중팔구 담임의 속을 썩이지 않은 착실한 제자일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학급당 학생수가 60명에 육박하던 시절이어서 뇌리에 깊이 새겨질만한 추억이나 사건이 없고서는 한때 그리운 이름들도 흐르는 세월에 걸러지고 마는 것이지요.

9회 졸업생 중에 맨 먼저 영상이의 이름이 떠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제 속을 많이 썩인 제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는 제가 첫 담임을 맡던 그 해 부반장이었습니다. 성적은 전체 계열 석차 2위. 무엇보다도 그가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지니고 있었던 청소년기의 왕성한 활력과 쉬지 않고 모색하고 도전하는 그의 자유로운 혼에 있었습니다.

그는 온순하고 규범적일 뿐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범생이들에게 마치 "너희가 자유를 아느냐?"고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음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제 자신의 물음이기도 했기에 그를 대하는 기대와 기쁨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해 5월에 들어서면서 그 순백의 기대와 기쁨들이 조금씩 허물어져 갔습니다.

균열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무단 결석. 그것은 꼭 작은 일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가정 형편상 인문계에 가지 않고 취업을 목적으로 실업계를 선택했기에 학과성적 못지 않게 출결사항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틀 무단 결석이면 학교에서 정하는 취업서열에서도 한참을 뒤로 밀려날 뿐만 아니라, 당시 기업체들의 까다로운 조건을 감안할 때 그것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종적을 감춘 지 사흘 째 되는 날 아침,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를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입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지만 그가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어디 있었니?"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바람?"
"예. 방황 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안 합니다. 정말입니다. 열심히 공부만 할겁니다."

그는 이틀 동안의 방황을 통해서 무언가를 확실히 깨달은 사람처럼 자못 진지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점심 시간에 운동장을 다 돌거든 교무실로 오너라."
그러자 그의 대답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운동장을 돌지 않겠습니다."
"뭐? 왜?"


예기치 않았던 엉뚱한 반응에 놀란 토끼 눈이 된 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충분히 깨달았는데 꼭 기합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정한 규칙인데…"
"규칙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얼른 표정을 살펴보니 제게 반항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 뿐, 자신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참을성 있게 대화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원칙을 깨뜨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할텐데…."
"예, 저는 충분히 반성을 했습니다. 그것이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성의 내용을 들어봐도 좋을까?"
"전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결석도 생겼구요.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다냐?"
"…!?"

"네가 저지른 일로 해서 네가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지? 누나에게 전화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누나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고 그가 종적을 감춘 이틀 동안 그의 누나도 다른 것보다는 취업이 잘못될 것을 걱정하여 애를 태웠던 것입니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대화는 저의 판정승으로 끝이 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정면으로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어떻게 방황을 합니까?"

그 한 마디는 저에게 KO 펀치가 되고도 남을 만했습니다. 왜냐하면, 방황도 해볼 만한 것이라고 그를 부추긴 장본인이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승자의 아량인지 모르지만 그 말은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그후 그는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사건으로 저를 탈진시켜 갔습니다. 어느 날인가 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덜 사랑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그런 말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던 그가 세 번째 가출에서 돌아온 것은 그의 생일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리고 어떤 좌절감에 휩싸여 그의 뺨을 후려치고 맙니다.

그 다음 날, 저의 손에는 날을 꼬박 세우다 시피하고 완성한 그의 생일 축하시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사랑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말하자면
너는 나의 스승이다

귀빠지기 하루 전 날
이제는 네가 밉다고
그 잘생긴 귀뺨을
후려친 나도

한 때는
사랑은 진실로 오래 참아야 한다는
슬픈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스승이었다

그 사랑의 빚을
이제야 갚는 것이기에
나는 사랑함으로 번민하는 것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은 고통이 수반된 축복이며
사랑은 더디고, 억울하고, 질긴 숙명임을
알아 가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사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시기에

나는 지금
너를 사랑함으로 저려오는 아픔을
감사하고 기념하려는 것이다

생일을 축하한다
나의 철부지여,

그러나 언젠가는
사랑은 진정 오래 참는 것임을
깨닫게 될
미래의 어른이여!


그가 몹시 그리워 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 혼자 수업을 해야 할 때. 묻는 말에 '그냥'이라는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휩싸여 있을 때.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자유를 아느냐?"고 그의 눈빛을 흉내내어 물어보고 싶을 때. 한때 그의 자유는 방종으로 빗나가고 말았지만,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지금쯤 정말 자유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쳐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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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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