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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소설가협회>라는 이름의 문학단체가 있습니다. 전체 구성원이 18명밖에 되지 않는 지방의 작은 문학단체지요.
1993년에 창립해서 그해부터 <소설충청>이라는 이름의 작품집을 발간하기 시작했지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 해에 한 번씩 작품집을 발간해서 올해 제10호를 발간했습니다.
<소설충청>이 10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고, 올해 드디어 제10호를 발간하였으니, 조금은 의의도 있다 싶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기에 스스로 대견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독자 제현의 관심과 격려를 기대하며 <소설충청> 제10호 『무심사 잣나무 기침소리』의 머릿글과 '특별기획' 「법과 원칙과 법살(法殺)」의 '편집자 주'를 소개합니다.
이 책을 내며
'10호'의 분수령 위에 서서
지요하(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충남소설가협회>는 1993년 3월 천안의 '충남예총' 회의실에서 창립 모임을 가졌다. 아직 창립 10주년은 되지 않았지만, 창립한 그해에 <소설충청> 제1호 『거둘 수 없는 잔』을 발간하고 해마다 한 번씩 작품집을 발간함으로써 창립 9년째인 올해 제10호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아무래도 10이라는 숫자는 어떤 분수령적인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우리는 일찍부터 이 10이라는 숫자에 잘 부합할 수 있는 작품집의 품격을 생각했다. 질과 양을 함께 아우르는, 그리하여 우리의 문학정신과 소설미학을 높게 현시할 수 있는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연초부터 다짐과 채근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우리의 현실적 한계란 우선 문학이 겪고 있는 오늘의 전반적인 위축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충청>이 10이라는 숫자를 쌓아오긴 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적인 모습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조건이나 환경을 상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고도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10호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현실적 한계를 훌륭히 극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우리가 여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다는 것은 소설문학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의 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문학 지성의 이름으로 창출한 <충남소설가협회>, 또는 <소설충청>이라는 이름의 '생명운동체'에 대한 양식인의 도리를 도저히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고뇌와 회의와 갖가지 성찰들이 있었다. 사실은 그것들이 지난 10년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 구실을 해주었다. 정말이지 고뇌와 회의와 성찰의 별빛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소설충청>을 10호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뇌와 회의와 갖가지 성찰들은 우리의 문학에, 우리의 지성과 양식에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 그것들이야말로 문학을 구성하는 것이고, 문학 지성 그 자체가 아닐까?
고뇌와 회의와 갖가지 성찰로 말미암아 문학은 가능한 것이고, 문학은 바로 그것들을 추구하고 확인, 확대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번 10호에는 6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충남소설가협회> 18명 전체 구성원 중에서 6명은 적은 수이지만, 끈질기고 왕성한 필력은 <소설충청>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 줄 것으로 믿는다.
원로 작가 김제영 선생님의 소설은 우리의 부당하고도 혼탁한 정치 현실을 직시한다. 과감한 해학과 풍자로 오늘의 지극히 부정적인 정치와 정당 현실을 이처럼 예리하게 통박하는 소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진실과 정의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김제영 선생님의 소설 작업에서 우리는 노 작가의 당찬 기개와 건강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중편 분재 형식으로 3년간에 걸쳐 정치소설 한 편을 완성해 낸 김제영 선생님의 노고에 큰 감사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조동길 님의 소설은 색다른 형식의 작품이다. 현실과 영의 세계를 일체화시키는 수법으로 인간의 삶은 늘 영의 세계와 직·간접으로 조우하거나 영향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깨달음의 기회가 주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그 개안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인간의 속성은 작가에게 있어 큰 연민의 대상일 것이다.
심규식 님의 작품은 여전히 힘이 있다. 한국의 고(古)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속물 문화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명쾌하게 묘파한다. 심규식 님의 소설이 거두고 있는 탄탄한 구성과 반전의 묘미는 정확하고 예리한 문장과 함께 소설미학의 성취로 독자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될 것이다.
김우영 님의 소설도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 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는 같은 네덜란드인인 오늘의 축구 감독 히딩크와 조선 중기 표류 선원 하멜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가면서 독자들을 역사 성찰의 길로 안내한다.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네덜란드 표류 선원들을 적절히 이용하지 못하고 강제 억류만 함으로써 개방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봉쇄했던 그 우둔함은 우리가 오늘에도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젊은 작가 이길환은 또다시 장편소설 산고를 시작했다. 1회분 420매 속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 상황과 통일 지향 의지가 녹록치 않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축으로 주변국과의 관계, 지구 종말을 능히 예견케 하는 환경 문제와 핵무기까지 동원될 수도 있는 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 등을 풍부한 식견을 바탕으로 밀도 있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의 큰 작업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지요하는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우리 나라의 지역감정 문제를 소설 형식과 에세이 형식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심도 있게 다루어보았다.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면 지역감정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뇌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기도 할 터이다.
여섯 명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이렇게 오늘의 우리 현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소설충청>의 작가들이 오늘의 제반 문제들을 포괄하는 현실적인 삶 속에서 당대의 좌표를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터이다.
문학의 위축과 퇴조 현상 속에서 소설의 영향력이 미미해지는 때일수록 작가들은 현실을 더욱 포괄적으로 정확히 보려고 하고 발언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진실과 정의를 포괄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한 걸음씩 구현해 가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지와 결기를 문학정신으로, 소설미학에 대한 창조 정신으로 계속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소설충청>은 10호라는 분수령 위에서 결코 걸음을 멈출 수 없다. 멀고도 더 높은 새 분수령을 향해 새롭고도 힘차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새해 2003년은 우리 <충남소설가협회>의 창립 10돌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소설충청>은 11집을 발간하게 된다. 10년 세월의 징검다리인 1집부터 10집까지의 작품집들을 한데 모아 문학적 성과를 분석 조명하는 작업을 11집에서 시도해 볼 생각이다. 우리의 지난 10년 세월에 대한 가치 조명은 앞으로의 생명운동을 새롭게 견인하고 추동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창간호부터 10호까지 열심히 작품집에 참여해 주신 회원 작가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소설충청>의 발간을 도와주신 '충남문예진흥기금'의 관계자 여러분과 소수의 독지가들께도 감사 드리고, <소설충청>을 애정으로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계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 드린다.
'특별 기획'과 관련하여
<소설충청> 제10집 발간의 의의를 좀 더 크게 아로새기기 위하여 이번 호에는 과감한 기획을 선보인다. 충남소설가협회 구성원들 중에서 최고 원로 작가이신 김제영 선생님의 글 「법과 원칙과 법살(法殺)」을 지면에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 글은 평생동안 양심적 문인의 길을 걸어오신 김제영 님의 혈서와도 같은 글이다. 역사의 격동기에 야만적이고 탐욕적인 정치 권력이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거리낌없이 자행했던 세 가지 대표적인 '법살'들의 역사적 맥락과 실체와 이면들을 새롭게 짚어보는 글이기에, 그 시절을 깨어 있는 양심의 눈으로 보고 접했던 이의 아픈 회한들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문제가 인권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민주 국가에서 얼마나 중요한 명제인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거사 또는 역사 진행과 관련하여 개인 양심과 국가 양심, 그리고 사회 정의의 상관성을 이 글을 통하여 좀 더 확실하게 조명해 볼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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