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붙은 역사에 한줌 따뜻한 바람을 느끼다

15일 새벽 일기장에서…

등록 2002.12.16 13:27수정 2002.12.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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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광화문에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너무 가슴 벅차고 흥분이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일을 해야 하기에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2시간 남짓 잠을 청하고 일어났습니다. 왠지 세상이 변해있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가운데가 뜨거워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오토바이를 몰고 추위도 잊은 체 신문 보급소로 향했습니다. 신문 보급소 앞에 쌓아 놓은 신문 더미를 집에 드는 순간… 가슴 떨려오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신문 1면에는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성조기를 찢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잠시 저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반미시위 관한 기사를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당당히 1면을 장식한 것을 보고 가슴 떨려옴을 느꼈습니다.

전단지를 신문에 밀어 넣으며 눈 한켠에는 뜨거운 무엇인가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려 왔습니다. 오늘처럼 신문 한 부, 한 부가 소중하게 느껴 진적은 없었습니다. 신문을 실고 새벽 거리로 나섰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에 별들이 반짝입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피어 있던 10만개의 촛불별에 비하면 초라할 따름입니다. 검은 빈 공간에 저만에 초를 켜보았습니다.

하늘을 가득 메울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온통 뒤덮습니다. 이곳에서 9개월 간 신문을 돌리며 오늘처럼 이렇게 정성스럽게 신문을 배달한 적은 없었습니다. 10만개의 반딧불, 그리고 미선, 효순이를 알린다고 생각하니 쉽게 신문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포스트 깊숙하게 집어넣을 때마다 손끝에서 뿌듯함이 전해져 옵니다.


제가 신문을 돌리는 구역 안에 한국 분이 2가구 살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제가 돌리는 신문을 구독하지는 않지만 오늘만큼은 그 분들 포스트에도 신문을 밀어 넣었습니다.

새벽을 달리며 오늘 하루동안 반딧불의 전령이 된 듯한 생각에 힘이 솟아났습니다.


광화문.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그 아쉬움에 새벽을 오토바이로 달리며 아리랑과 아침이슬, 님의 행진곡을 흥얼거려 봅니다. 어느덧 얼굴에는 눈물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너무도 벅찬 마음에 고국 하늘을 향해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지만 여러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새벽이 올때까지....
새벽이 올때까지....안창규
그 촛불하나 하나에 마음,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리라 믿습니다.

오늘 저문 해는 다시 뜨지 않지만 오늘에 빛났던 햇빛은 오늘 하루 저에게 따뜻함을 주었습니다. 내일 떠오르는 햇빛도 따뜻함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겨준 체 말입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추운 역사의 들판에서 어제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추운 들판에서 한줌 따뜻한 바람이고 싶습니다. 오늘 일본에서도 집회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어제의 그 따뜻함을 일본에서도 이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윤동주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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