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438호 '시사SF'는 명백한 성폭력

민족주의와 결합한 마초정신을 비탄하며

등록 2002.12.17 08:00수정 2002.12.1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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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438호 '시사SF' ⓒ 김나영

위의 만화는 한겨레21 438호에 실린 조남준씨의 '시사SF'이다.
나는 이 만화에서 강력한 마초정신과 결합한 민족주의의 위험을 확인하였으며, 이에 대한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제기가 묻혀지는 상황을 보며 다시 한번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확인한다.

'강한 남성'='강한 국가','강한 민족'

마초정신은 민족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그 이유는 첫째, 여성을 '남성이 지켜주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지켜주어야 하는 '강한 남성'은 곧 '강한 국가','강한 민족'과 연결된다. 그래서 '제 아내의 정조 하나 지켜주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은 바로 '국민을 지키지 못한 무능력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여자(의 정조)를 지키겠다'는 이 가당찮은 마초정신은 '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남성에 의한, 남성의 국가, 남성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로 인해 일제 시대 종군위안부 여성들의 아픈 역사는 '일본인들이 자국 여성들의 정조까지 빼앗아 간 역사'가 되었고, 미군에 의한 성범죄를 규탄하는 구호는 '우리 처녀 지켜내자','너희 나라 가서 강간해라'는 구호가 되었으며, 2002년 현재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꽃다운 여중생 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부끄러워 하도록 뭇 남성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것'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와 '내 여자'를 중요시하는 가부장 의식, 여기서 비롯되는 마초정신은 곧 '내 민족'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와 궁극적으로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닌다.
이것은 한 국가나 개인이 '자주성' 또는 '주체성'을 지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주적 주체'가 되는 것은 '객체로서의 주체성을 찾는 것'으로써 중요하지만, '남(또는 타국)을 이기고 내가(또는 내 민족이)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배자의 위치에 서기 위해 강해지는 것'은 그 대상을 '소유물'로만 바라보는 것이기에 또 다른 불행만을 낳을 뿐이다.

하기에 '내 여자''우리 처녀'(의 정조)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는 여성을 '주체성을 지닌 객체'가 아닌 '수동적 주체'로,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전해지는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급기야 '네 (나라) 여자나 강간해라'는 구호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조남준과 한겨레 21의 마초정신을 규탄하며

12월 14일 광화문 한복판에 선 방송차량 위에서 한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저 미국놈들은 고기만 먹다보니 인간의 살점마저 좋아한다.
특히 여자애들의 말랑말랑한 살점을 더 좋아한다."

그는 미국놈들을 비난하려 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이 발언은 도리어 미선이와 효순이를 모독하였으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성들에게 극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독감을 안겨주었다.

당신들은 지금 무엇때문에 분노하고 있는가?
'내가 지켜주어야 할 내 꽃다운 '여'학생을 지키지 못했음'에 분노하고 있는가? '내 여자를 지키는 강한 남자'와 같아야 할 대통령이 '내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고도 비겁하게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약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서 분노하고 있는가? 나는, '생명'이 정치적, 군사적 이해관계 앞에서 무시되고 있음에 분노한다.

조남준은 '시사SF' 연재를 즉각 중단하고 한겨레21 편집장과 함께 공개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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