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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이회창씨 찍었지. 니 아버지가 시켰거든. 공무원이니까 1번 찍어야 한다고. 그리고 한인옥씨도 뭐 집안이 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했지. 이번에도 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내가 알아서 찍어야겠기에 누구 말 안듣고 기호 2번 찍었다.
처음엔 1번 찍으려고 했지. 경력이 화려하더구나. 국무총리도 지냈고 많이 배운 집안이고. 그런데 내가 즐겨 듣는 기독교방송(CBS)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누가 그러더구나. 이회창씨는 자식 두 명을 다 군대에 안 보냈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냐고. 그 때 결심했다. 나는 자식들을 모두 군대에 보냈고 그 중 한 명은 죽이기까지 했는데 자식 둘 다를 빼낸 사람에게 어떻게 표를 주겠는가.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2번 찍었다."
"와, 우리 엄마 똑똑하시네. 엄마 표 점검(?)을 안 해서 불안했는데..."
솔직히 그랬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기말성적에 대해 문의를 해 올 때면 확인 이메일을 날리면서 '꼭 투표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특히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들에겐 은근히 압력을 넣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정작 어머니에게는 전화 한번 안 드리고 표를 점검하지 않았던 것이다.
투표 당일, 일찍 전화를 드리니 6시 전에 이미 투표장에 도착하여 어두컴컴한 가운데 11번째로 투표를 마치고 나오셨다고 했다. 누굴 찍었느냐고 여쭤보니 이렇게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소신 발언에 추임새를 넣으니 더욱 신이 나신다.
"전시(戰時)도 아니고 평화시(平和時)인데 왜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냐. 이회창씨는 자기 자식들뿐만 아니라 일가 친척들 자식들도 군대 안 보냈다며. 지도자가 될 사람은 그렇게 알맹이만 쏙 빼먹으려고 하면 안 되지. 안 그러냐? (옳소!) 이회창씨가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난 그 집 아들의 군대 문제가 컸다고 본다."
나의 친정 어머니, 올해 일흔 둘인 충청도 출신의 할머니이다. 지난 97년도 대선 때는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이회창씨를 찍었다고 한다. 공무원으로 사십여 년을 근무해 오신 아버지와 더불어 어머니는, 공무원 가족은 기호 1번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줄만 알고 살아오신 분이었다.
우리 집에선 수십 년 동안 <조선일보>만 보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신문이 <조선일보>인 줄만 알고 자랐다. 또한 네 귀퉁이가 딱 맞게 정리된 그 신문의 보관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자서전(제목이 뭐였더라?)을 읽으며 감동을 받기도 했다. 빨갱이(?) 김대중씨에 대한 아버지의 거부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여학생도 바로 나였다. 대학에 다니던 오빠로부터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게 친여 성향으로 수십 년을 지내온 우리 집에서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기호 1번의 선택에서 자유로워진 게 참 기뻤다. 그런 당당한 주장을 펼치는 어머니의 모습도 뿌듯했다.
계속 TV를 지켜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는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씨에게 축하를 보내며 필자의 지난 글 '사람의 아들은 죽고 신의 아들은'을 잠시 인용하려고 한다.
정치란 게 무엇인가. 소박하게 이렇게 생각한다. 바로 국민의 눈물과 한숨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국민의 마음이 춥지 않도록, 가슴이 멍들지 않도록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국민들 앞에선 큰 목소리로 '정의'와 '불편부당'을 외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남몰래 '부정'과 '불공정' '편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고.
뼈대있는 가문이라고 '가문의 영광'을 내세우며 기본적인 국민의 의무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터진 입으로 공허하게 외치는 '국민과 함께'가 아니라 그의 몸이 따르는 '국민과 함께'여야 한다. 그래야만 저들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국민의 의무를 '법'인 줄 알고 지키는 선량한 백성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오지 않게 할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걸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희망과 비전의 땅으로 나아갈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땅을 욕하며 이민을 가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할 사람이어야 한다.
속이 문드러진 백성들의 탄식이 더 이상 메아리 되어 울리지 않게 할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척박한 이곳 대한민국에, 인력(人力)만이 유일한 자원인 이 땅에 인재들이 몰려들고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자식들을 즐거움으로 낳는 어머니들이 많아지는 그런 '소망의 땅'이 되게 할 사람이어야 한다.
'아, 정말 그런 지도자가 있을까. 그런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까.'
인용 글에 나오듯이 노무현씨가 그런 희망의 지도자로 우뚝 서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면 참 좋겠다.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님을 통렬하게 깨우쳐 준 위대한 대한의 국민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아, 대한민국이여!
아, 대한국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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