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도 졌고, 민주당도 졌다

보수정당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며

등록 2002.12.20 12:19수정 2002.12.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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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미소

이회창이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결코 울 것 같지 않았던 대쪽 이회창의 눈물은 진심 어린 좌절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 눈물은 이회창 개인의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이회창이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우파, 그리고 두 번에 이은 한나라당의 집권실패가 반영하는 한국 보수 우파의 눈물이다. 이제 한국정치는 보수우파에게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다. 이회창의 은퇴만큼이나 뼈아픈 자기혁신의 숙명을 맞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선 기자회견을 했다. 미소를 지었다. 그의 대통령 선거 광고, '눈물'에서 보았던 좌절과 고통은 오늘 아름다운 미소로 바뀌었다. 역시 그 미소는 노무현 개인의 미소만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이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개혁우파, 정치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열망하는 한국 개혁 우파의 미소다. 그러나 민주당이 노무현의 미소에 공감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지난 일년간 노무현을 둘러싼 당내 분열과 갈등이 함의하는 것처럼 민주당은 자기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이제 보수정당의 양대 산맥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이 상징하는 개혁 우파들의 승리에 대해 진지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질 때다. 낡은 정치에 대한 자아비판에 의해 그들의 운명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

노무현, '낡은 정치 청산'의 승리

노무현의 레토릭, '낡은 정치 청산'이 승리했다. 개표결과를 주시해보면 이번 선거의 승패는 수도권에서 갈렸다. 수도권의 표심은 지역감정이 아니다. 그들의 성향은 시류를 가장 빨리 반영한다. 한나라당은 합리성을 추구하고 '구태'를 거부하는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앞으로 한나라당은 제일 먼저 구태와 불합리의 대명사인 '국가주의 우파'와의 명백한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아직도 박정희 추억에 의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일부의 안보주의와 권위적 정치공세를 중단하고 합리적 보수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안보주의와 네거티브(negative) 선거전략에 의존해서 대세만 굳히려고 했을 뿐이다.


반면 노무현은 어땠는가. 오히려 한나라당의 그러한 약점을 파고들고 민주당 스스로의 구태마저 부인하는 새롭고 참신한 인물이었다. 더구나 노무현은 민주당에 의해 '간택'된 인물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비주류 노무현이 국민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때부터 이미 흐름을 파악했어야 한다.

노무현은 지난 5년간의 민주당의 부패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인물이었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정당 비민주성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노무현은 이회창과는 달리 꾸준히 포지티브(positive) 선거전략을 통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선언했다. 그리고 결국 국민들은 '낡은 정치 청산'을 선택했다.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가 패배자

사실 '낡은 정치'의 주인공은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다. 노무현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민주당도 동시에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이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만 패배자가 아니다. 민주당도 노무현에게 졌다. 민주당의 노무현 낙마 공작, 민주당 주류 보수파의 기득권 유지 공작이 국민들의 심판에 의해 노무현에게 패배했다. 반면 노무현이 상징했던 새로운 정치문화는 승리했다.

따라서 앞으로 정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빠른 속도로 자기변화를 꾀해야 한다. 노무현이 지난 1년 간 국민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던 정치 양식을 양당 모두 빠른 속도로 학습해야 하겠다. 누가 빨리, 그리고 내실 있게 정당 개혁을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새로운 정치문화의 주도권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

노무현이 국민들을 감동시켰던 구호들, 다시 말해 국민경선, 자발적 후원, 젊은 정치,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대안, 지역감정과의 전면전 등을 어떻게 정당개혁의 화두로 삼고 내부혁신을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미래가 결정되리라.

정당 내부 혁신의 방향

첫째, 정당 민주화를 실시해야 한다. 두 정당은 당비를 내고 참여하는 진성당원을 확보하고 그들에 의해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상향식 공천 구조를 도입하고 내실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아울러 양당 모두 경쟁적으로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에 정당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두 번째,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군사 정권의 잔존세력을 후퇴시키고 새로운 젊은 인물들을 흡수해서 전면적인 인사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동교동으로 상징되는 주류가 이선으로 물러서야 한다. 아니 양보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개혁파가 민주당의 전면으로 부상해야 한다.

세 번째, 네거티브 정치 공방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제 추악한 '실력행사'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국회를 정당 알력 다툼으로 활용하려는 정당은 국민에게 따가운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정책 연구와 정책을 중심으로 여야의 의사소통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정당이 더 합리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타 정당에게 대화를 유도하는지가 국민들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지역감정의 벽을 거슬러 나가야 한다. 노무현이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과거 선거에서 그가 의도적으로 부산에서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노무현의 부산 낙선은 역설적으로 그의 정치적 가치를 높이는 값진 자산이 되었다. 이제 유권자들에게는 적어도 지역감정이 '사회악'이라는 양심적 잣대가 있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도 전형적인 동서갈등의 양상이 나타났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각 정당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감정에 의지했던 사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지역적 '존재 기반'이 없는 사람들을 등용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

이렇게 이회창의 눈물과 노무현의 미소는 단순히 민주당의 승리, 한나라당의 패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두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가 치열한 내부 혁신의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승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대한 안티 테제를 부르짖었으면서 왜 정권교체에 실패했는가? 그것은 노무현이 표방했던 정치문화의 '새로움'에 원인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양당 모두 패배자임을 자각하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정당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 실험웹진 http://www.dalp.wo.to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실험웹진 http://www.dalp.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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