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저항하다 공사장 직원들에 의해 공사장 안으로 내동댕이쳐진 철거민이 실신하자 직원들이 공사장 세차용 물 호스로 물세례를 퍼붓고 있다(9월27일)석희열
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되어 오갈 데가 없게 된 이곳 주민들은 또다시 평상과 돗자리,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면서 철거반의 폭력에 맞섰다. 이들은 근처 공원의 공동화장실과 수도를 사용하며, 전기가 없는 천막에서 촛불로 밤을 지새며 지금까지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이날 이후 줄곧 노숙생활을 해오고 있는 이경수씨는 "예고도 없이 집집마다 용역직원들이 15명씩 떼를 지어 몰려와 고함을 지르며 구둣발과 망치로 문을 내려치면서 들어왔다"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얼마나 놀랬는지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지금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이날의 참상을 전했다.
남편과 함께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화숙씨는 "그 동안 평상에서 생활하며 고3인 딸과 고1인 아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해 먹이고 학교에 보냈다"며 "새벽에 학교에 간다고 나간 아이가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산 속이나 어디 다른 곳에 숨어 있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을 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77세인 친정 어머니와 함께 천막에서 철거민 생활을 하고 있는 권효순씨는 "남편을 여의고도 3층 집에서 아들 딸과 함께 오손도손 잘 살아보려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방 한 칸 없는 철거민 신세가 되다 보니 형제들 보기도 민망할 정도"라며 서러워했다.
얼마 전에 해장국 가게를 얻어 동생에게 맡겨놓고 있는 권씨는 이어 "25살인 아들과 23살인 딸이 장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가게에서 커텐을 치고 함께 자고 있다"면서 "딸 아이가 마음 놓고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방 한 칸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며 울먹였다.
하왕철거민대책위원회 강경현 위원장은 "강제 철거 이후 아들은 군대에 보내고 집사람은 교회에서 생활하고 저는 철대위에서 생활하면서 집안이 완전히 이산가족이 되었다"며 "다행히 누나가 얼마간 돈을 빌려주고 은행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을 받아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20만원 하는 사글세방을 지난달에 하나 얻었다"고 고단했던 그간의 역정을 털어놓았다.
현재 하왕철대위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철거민들은 세입자가 아닌 5~10년 전에 지어진 집이나 상가를 가지고 있던 가옥주들이 대부분이다. 턱없이 낮게 책정된 보상금으로는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주기에도 모자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세입자 보다 못한 가옥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동구청의 한 관계자는 "철거민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수용과 보상은 도시재개발법 및 토지수용법에 따라 토지수용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구청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서토위)가 토지수용법과 공공용지의취득및손실보상에관한특례법 등 관계 규정에 따라 대화감정평가법인과 신한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여 평가한 결과를 토대로 작년 12월 주민들에게 제시한 보상액은 건물의 경우 평당 60~154만원, 대지의 경우 270~320만원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