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노무현이 집권하면..."

조중동 만화(만평)으로 넘겨짚어본 그들의 속내

등록 2002.12.22 08:30수정 2002.12.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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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노무현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은 꿈이 아닌 어엿한 현실이 됐지만, 이런 사실을 차마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을 아득한 시절에 상기한 물음을 조중동에게 던졌다고 하자. 그들은 어떻게 답했을까? 흥미롭게도 지난 4~5월에 조중동은 이미 자신들의 만화(만평)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각각 내놓은 바 있다.

2002년 4월 8일자 중앙일보 만평(김상택 화백)은 "만약 노가 잡으면"이란 제목을 붙인 만화에서 이렇게 냉소했다. "만약 노무현이 집권하게 되면, C일보(조선)와 D일보(동아)는 대통령 취임식장에 접근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사주들도 강압적으로 쫒겨나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a 2002년 4월 8일자 중앙일보 만평

2002년 4월 8일자 중앙일보 만평

또한 동아일보 나대로선생(2002.4.8)은 이렇게 야유했다. "동아일보가 DJ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신문의 날에 겨우 참석했는데 만약 노무현이 집권하게 되면 아예 '폐간'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2003년 신문의 날에는 참석조차 못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겠군."(우하단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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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 동아가 이런 식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황을 살펴 보자. 지난 4월은 국민경선 와중에 이인제 의원이 터트린 '노무현 언론관련 발언'으로 몹시 소란스러웠다. 경선정국을 얼룩지게 만든 이 의원의 폭로내용은 이러했다. 노무현 후보가 작년 8월 초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언론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폐간시키겠다. 신문사주들의 퇴진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그렇잖아도 노무현을 경원하던 조중동은 이 의원의 입에서 이러한 메가톤급 폭로가 나오자마자 '얼씨구나'하고 반색하면서 그것을 고성능스피커에 담아 연일 확대 재생산하기에 바빴고 나아가 이를 빌미로 노무현을 완전 매장시키려고 했다. 언론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사실규명과 진위탐구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당시의 기록들이다.

- 동아, [사설]盧후보 언론관 무엇인가(4.5)
- 동아, [사설]'자유민주 원리' 깨자는 것인가(4.6)
- 동아, [사설]노무현 후보, 정말 왜 이러는가(4.8)
- 동아, [사설] 노무현후보 도덕성 문제있다(4.9)


"국유화든 사원지주제든 소유지분제한이든 권력의 입맛대로 언론사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발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발언 등으로 이념적 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언론관마저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동아, 4.6)

- 중앙, [사설] "집권하면 메이져 신문 국유화"(4.5)
- 중앙, [사설] 기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4.6)
- 중앙, [사설] 노무현 후보의 말바꾸기(4.8)

"이인제 후보측에서 제기한 노무현 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이 너무 충격적이다...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온 사람의 발언으로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반민주적이고 군사독재 이상의 폭력적인 언론 국유화론이다..."(중앙, 4.5)


- 조선, [사설] ‘노무현 언론발언’ 사실여부 밝혀야 (4.5)
- 조선, [사설] 盧武鉉씨의 말 말 말바꿈 (4.8)
- 조선, [사설] "「朝鮮」에는 「폐간」얘기 했을 수…"? (4.9)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 동아일보는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권하면 그 신문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에 폐간시키겠다." 이러한 발언이 만일 사실이라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다. 과거의 스탈린 시대로 되돌아 가지않는 한 입에 담기도 힘든 발언이다..."(조선, 4.5)

중앙만평과 동아의 네컷만화는 이런 상황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물론 조선만평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을 물고 늘어졌다.) 이를 통해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바라보는 조중동의 불안한 심경을 능히 넘겨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발언 등으로 이념적 의혹을 받고 있는 터에 반민주적이고 군사독재 이상의 폭력적인 언론 국유화론까지 갖고 있는 그가 집권하면 과거의 스탈린 시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들이 그토록 저지하려던 노무현이 그러나 국민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격침시키고 마침내 1위에 오르는 이변이 연출됨으로써 그때까지만 해도 비웃음 수준에 머물던 조중동의 두려움은 조금씩 현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민경선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의 인기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더블스코어로 압도하면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동아.조선의 공정보도를 촉구하고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구독부수를 50~100만부 떨어뜨려야 한다"는 문성근 씨의 덕평수련원 발언이 나온 것도 이즈음의 일이었다. 조선일보는 문씨의 발언과 미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한국 대선에서 끼어 들지 말라"는 취지의 얘기를 한 이충렬 국제담당특보의 말을 한데 묶어 즉각 반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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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만평에서 [노(무현)]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아무 것도 모르는 구멍가게 할아버지와 가판대에 놓여진 조선.동아를 험악한 표정으로 잽싸게 흘겨보며 조폭처럼 다짜고짜 "끊어!"하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배우 문성근씨(왼쪽)다. 역시 [노]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길 가는 미국인 여행객을 위.아래로 험악하게 째려보면서 다짜고짜 "손떼!"하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노무현 후보의 국제담당 특보인 이충렬씨(오른쪽)다.

조선일보가 상기한 만평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만평 한 가운데 위치한 "벌써 저렇게 측근들이 설쳐대니..."라는 멘트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만 돼도 측근들이 벌써 저렇게 설쳐대는데 나중에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겠느냐는 두려움 혹은 선동~!

그렇다. 조선만평의 행간에 묻어나는 것은 노무현의 득세를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두려움이다. 바로 이런 두려움을 보수적인 시민의 정서에 유포.감염시켜 어떻게든 노풍을 잠재우고자 하는 조선일보의 초조함이다. 조선만평이 '완장'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잠재된 무의식을 건드려 부자유.공포.억압.탄압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완장'만큼 조선일보의 두려움을 정서적으로 환기시키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조선일보가 만평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자유 없는 공포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당장 김대중 정권을 능가하는 언론탄압극이 벌어지고, 반미감정의 범람 등으로 인하여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이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자, 그렇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음험한 선동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중동이 끔찍히도 싫어하는 노무현이 마침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문시장의 7할 이상을 점유하여 대한민국의 여론을 제 멋대로 좌지우지한다는 저들의 방해와 공작을 뚫고 거둔 일대 쾌거였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여 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폐간의 두려움? 언론탄압에 맞선 비장한 저항? 아니면 또 한번의 변신과 둔갑...?

글을 맺기 전에 조중동에게 이 한 마디를 꼭 해주고 싶다. "조중동의 절망은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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