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다시 돌아보는 광화문

광화문 - 새롭게 발견한 문화적 정치화의 공간

등록 2002.12.24 13:05수정 2002.12.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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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광화문 촛불 시위에 모인 시민들
12월 14일 광화문 촛불 시위에 모인 시민들오마이뉴스 자료사진
2002년 6월, 붉은 악마들이 광화문을 뒤덮던 그때 이 현상을 87년 6월 항쟁의 연속선상에서 조망하던 일부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유희의 시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집단적으로 '유희'를 즐길 대상으로 국가대표 축구팀을 설정한 것에서 나타난 붉은 악마들과 '민주화'라는 엄숙한 정치적 구호 아래에 모였던 87년 당시의 대중을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심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국가주의의 음험한 도래'라는 관점에서 응원 열기를 분석하는 일련의 흐름도 마뜩치 않았다. 광화문에 모인 이들은 정치적인 테제를 들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적을 가진 집단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며, 월드컵을 통해 국운을 상승시켜 보자는 대통령의 말에 감화된 이들도 아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유희 추구의 욕구가 우연히 집단주의적 열기와 만난 것에서 드러난 일일 뿐이며, '정치의 시대'가 '유희의 시대'로 변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하였기에 12월의 광화문 촛불시위는 6개월 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두 중학생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해 항의하고자 모인 이들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자존심이 입은 상처를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로 환치한 이들을, 그런 상처를 입힌 거대 집단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이들을 단순히 '개인적인 유희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6월만 해도 정치냉소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있었다고는 해도 6.13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48.9%에 그쳤으며, 선거 열기를 반영하는 특정 이슈가 도출된 적도 없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자면 '국민의 정부에서 발생한 권력 차원의 거대 비리를 국민이 심판한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분석이 맞겠지만, 절반 이상의 국민이 선거를 외면한 현상은 '부패정권 심판'이라기 보다는 '정치 냉소주의의 만연'으로 이 선거를 해석하는데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런 현상만으로 '정치의 시대'의 종언을 말한 것은 성급했다고, 촛불 시위에 모인 광화문의 인파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 균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철저한 냉소로 응답했으나, 자신들의 개인적 유희와 자존심으로 환치시킬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서는 집단적 행동으로 반응할 줄 알았던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문화적 정치화'로 개념짓고자 한다. 정치 공동체, 사회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동화와 자부심은 특정 정치 체제에 대한 열망 혹은 특정 정치인 및 정치적 집단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적 토양이 제대로 일궈지지 않은 한국적 현실에서 일어났던 이전 세대의 수 차례의 '정치화' 시도는 결국 '정치 냉소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정치 보다는 사회문화적 이슈와 친숙한 새로운 세대의 집단적 열기는 '문화적 정치화'라는 수단을 정치적 목소리 표출의 통로로 삼는데 성공한 것이다.

문화적 정치화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를 움직이는 동인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유행'일 것이다. 대선 이후 많은 언론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세대', '新주류' 등으로 이들을 띄우기에 분주하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들은 대표적인 '탈정치화된' 집단으로 조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노'에 분노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했으며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이들은 동시에 '핸섬한' 정몽준에 마음 끌리기도 했으며 소위 '명품'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던, 또 '해리포터 및 반지의 제왕'이 주말 첫 주 흥행 신기록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담당한 이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유행'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유행'의 여러 하위 항목 중에서 '국가적' 유행이 불었을 때, 유행에 민감한 세대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문화적 정치화시킨 것이다.

'정치화'의 싹이 뿌려졌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을 분노하게, 혹은 환희하게 하는 집단 혹은 세력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동인이 주로 '문화적 유행'의 그늘 아래에 놓였던 것이다. 월드컵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 집단이 아닌 일반 개인의 제안 아래에서 촛불이라는 비폭력적 소재를 사용하고, 붉은 악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광화문이라는 공간, 다수 연예인의 참여 등 문화적 요소가 듬뿍 가미된 '촛불 시위'도 이 '문화적 유행'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문화적 정치화'로부터 본격적인 '정치화'의 단계로 나아갈 때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허위 의식을 심는 보수 세력들의 영향력이 급감한 이 때에, 그 동안 묻혀진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제기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광화문은 '국가적'의미에 기초한 하나의 목소리만이 표출되던 올해를 넘어서서 다양한 집단과 담론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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