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미선이 효순이 추모 '10만 범국민 평화대행진' 행사에서의 공연모습우리나라
30일 저녁 7시30분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에서 후원회 '우리벗' 송년의 밤 행사를 갖는 민중노래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래로는 '경의선 타고', '한결같이', '벗들이 있기에', '8월처럼 산다', '양키들은 모른다', '주한미군 철거가', '우리 하나되어', '탱크라도 구속해' 등이 있다.
특히 지난 봄과 여름에는 윤민석씨의 송앤라이프닷컴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여 인터넷을 통해 노래를 발표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래운동을 시도해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기도 했다.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시', '종이비행기',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반성문', '사랑해 오빠' 등이 이때 나온 노래들이다.
다음은 기자가 27일 오후 합정동 사무실을 방문하여 노래패 '우리나라'의 대표 강상구씨(강)와 작곡을 담당하고 있는 백자씨(백)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각자 다른 영역이나 노래패에서 활동하다 어떻게 함께 노래패를 만들게 되었나.
(강): "주로 90년대 학번들로 구성된 당시의 멤버들이 학생신분에서 사회인 신분으로 바뀌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다들 사회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노래에 대한 재능을 통해 노래운동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초기 멤버 8명이 의기투합해 99년 7월에 정식으로 창단을 하게 된 것이다."
- 노래패 이름을 '우리나라'라고 짓게 된 배경이 있다면...
(백): "우리의 노래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분단을 극복하여 하나된 그리고 통일된 조국을 향한 발걸음이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을 고민하다 '우리나라'라 짓게 됐다."
- 반미시위 등 집회현장에 가보면 '우리나라'를 늘 만날 수 있다. 집회공연을 고집하는 이유라도 특별히 있는가.
(강):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장을 벗어난 민중가요는 생명감을 가질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장 밀착된 공간이 현장이고 집회라는 공간이다.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 그 동안 수많은 공연을 해왔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강): "긴장감이 풀리지 않아 투박하였지만 그래도 첫 공연이 가장 설레는 공연이었다. 최근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10만 시민과 함께 공연할 때도 시민들의 반응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우리 문화운동에 상당한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올 6월과 10월 금강산에서 이북동포들과 함께 한 공연과 1년에 한 번(12월) 하는 정기공연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 많은 식구들(9명)이 먹고 살려면 웬만큼 벌어서는 안될 것 같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어떻게 생활하나.
(강): "말하기가 부담스럽지만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 집안의 도움을 받거나 드물게는 배우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카드빚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자본이 대중가요나 상업가요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살아남는 게 운동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집회공연 때도 최소한의 교통비라도 받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운동을 살리는 길이다."
(백): "(기자가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혜택의 1/100만 주어져도 이런 고민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자) 음악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주어졌으면 한다. 아직까지 흑자로 된 공연을 해본 적이 없다. 각종 세금혜택이 주어지는 문화인 전문 카드라도 국가에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고민하고 있나.
(강):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다. 후원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백): "출구는 80년대와 같은 대중운동의 활성화 밖에 없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이후 6·15 공동선언의 영향으로 하나로 모이려는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서로 광장으로 나와서 서로를 확인하고 부대끼려는 그런 시대가 곧 올 것으로 기대한다."
- 문화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한계상황에 부닥쳐 때로는 운동의 영역에서 일탈해 뛰쳐나가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강): "물론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걸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1년 1년 극복해나가면서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지금은 웬만큼 단련되어 있는 상태다."
(백): "우리 문화일꾼들이 문화적 재부는 만들어 내지만 물질적 재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일반 대중가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만큼 인디밴드나 우리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한국 음악산업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공연이 없는 날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나.
(백):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정해 사무실에서 직접 해먹는다."
- 마지막으로 새해소망이 있다면...
(백): "공연 횟수에 걸맞는 수입이 보장되거나 음반판매 1만장 정도라도 팔려 음악 외적인 것에 고민하지 않고 음악활동에만 몰두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돈의 노예가 아닌 사람을 위한 노래, 통일을 위한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이 하나된 조국에서 통일공연을 해보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망이고 꿈이다. 해외에 나간 친구들이 우리나라를 외국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올 한해 260여회의 공연을 통해 민중음악 노래패 중에서 부채규모가 제일 커졌을 것이라고 말하며 씁쓸해 하던 이들은 인터뷰가 끝나자 이날 저녁 7시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시위가 열릴 예정인 경기도 일산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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