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독트린' 선포 필요하다

[주장] 한-북-미가 공존할 핵위기 대협상의 물꼬 트자

등록 2002.12.30 15:12수정 2003.01.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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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면적인 핵시설 재가동으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쁜 행동에 보상은 없다'라는 강경원칙을 견지해온 미국 공화당 정부도 이른바 '맞춤형 봉쇄정책'이라는 대북 고립정책을 발표했다. 게다가 미국 내 일부 보수강경파 논객들은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부담없이 북한을 한번 손봐주자는 논리를 목청높여 외치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남한과 미국이 아주 대응하기 어려운 취약한 타이밍을 포착하여 최후의 배팅에 나선 모습이다. 남한은 지금 격렬한 대선을 마치고 정권이양기에 들어서 있고, 미국은 1월말로 예정된 이라크 공격에 전념하고 있는 시점이다. 남한과 미국이 북한문제에 전력할 수 없는 시점을 포착하여 북한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카드를 총동원하여 전쟁이든 협상이든 선택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고 있다.

마주보며 달리는 기차게임의 형국이다. 북한으로서도 대가 없이 물러서기 쉽지 않고, 미국으로서도 그 동안의 명분을 감안할 때 쉽게 물러설 수 없게 되어 있다. 특히 9.11테러 사건 이후의 미국 분위기를 감안하면 운신의 폭이 더욱 좁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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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구랍 27일 강원도 인제 을지부대를 방문해 사병식당에서 장병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최악의 시나리오

미국정부의 정책이 북한봉쇄정책으로 굳어지고, 북한이 이에 맞서 핵무기개발을 실제로 추진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실제 소규모 군사충돌에서 더 나아가 전면전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한다면, 주요 시설에 대한 선택적 폭격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현재 미국 내 분위기를 본다면 그런 강수도 충분히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정세에서 한국의 정책은 해결방안을 결정하는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한국이 공화당정부의 봉쇄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게 되면 북한체제를 붕괴시키느냐 마느냐의 싸움으로 가게 될 것이고, 반대로 대화와 협상의 물꼬를 터서 대타협을 이룬다면 평화적 협상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만약 한나라당이 이겼다면 모든 관측통들의 예측대로 공화당-한나라당의 동맹으로 대북봉쇄정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나 한국 대선에서 대북 협상과 평화정착을 우선시하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승리하였다. 이로써 한반도의 물줄기는 큰 분수령을 넘었다. 지금은 역사상 드물게 한국의 결정에 의하여 우리 민족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이 미국, 북한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러시아를 설득해낸다면, 현재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즉 53년 한국전쟁 이후 계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주변 강대국을 설득하여 주도권을 쥐겠느냐고 회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원숙한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결정적 전기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고 신념이다.

노무현 정부의 선택

아직 정권을 인수받은 것은 아니지만, 북핵문제 해결의 키는 노무현 당선자와 그의 신정부의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

첫째, 국민적 컨센서스 형성에 나서야 한다. 지난 5년간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싸고 남한 사회 내부는 극심하게 분열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노 당선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대북정책, 통일정책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통하여 초당적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남한 사회의 절대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대북정책을 밀고나간다면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론을 집결할 과정을 조직해야 한다. 전문가의 분석, 국민적 토론회,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하여 북핵해결에 대한 합의를 모아나간다. 또 중도, 보수세력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여 그들의 신뢰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지역주의의 볼모나 국내정치적 의도로 악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 문제 당사자 사이에 솔직한 대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의사소통이 될 수 없는 서로 전혀 다른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우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중국, 러시아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나서서 북한의 솔직한 의도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도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셋째, 좀더 정교하고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은 다양한 세력, 다양한 의견이 혼재되어 있는 다원주의 사회다. 9.11 테러 이후의 미국분위기를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한반도의 특수성과 한국국민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여 미국이 보다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도록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당선자를 비롯한 고위 정책입안가들이 미국 방송, 신문에 직접 나서서 미국국민과 여론에 호소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다.

외교라인을 총동원하여 전방위 설득에 나서야 한다. 워싱턴이 한국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워싱턴은 노풍을 전혀 모른다. 워싱턴을 방문한 특사가 관리와 국회의원만 잠깐 만나고 와서는 별 소용이 없다.

'노무현 독트린' 선포 필요하다

미국의 여론을 쟁취하기 위한 전방위 노력이 필요하다. 200만 재미교포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좋고, 한국에 큰 이해관계가 걸린 대기업을 통해 로비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성하여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노무현 독트린'이 필요하다.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북한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대화와 타협을 이루어낼 것인가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책전반을 포괄하는 '노무현 독트린'을 선포해야 한다. 그것은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시작하여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노정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대타협의 핵심고리는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승자가 되는 'Three-Win 프로젝트'다. 미국에게는 대량살상무기의 포기와 한반도 안정, 북한에게는 체제보장과 경제원조, 남한에게는 평화와 한반도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부여하는, 그렇게 하여 모두가 승리하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미국을 침공하기 위해 미사일과 핵을 개발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미국정부내 일부가 갖고 있는 집요한 '북한붕괴론'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정부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존심과 체면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명분있게 북한과의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 이것이 사실 노무현 당선자가 해야 할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협상을 받아들인다면 문제의 절반은 풀린 것이다. 미국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공화당 정부가 북한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가장 큰 길목을 넘은 것이다.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신정부는 4500만 한국 국민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7천만 민족의 생존권을 담보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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