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국내 반핵 10대뉴스 (1)

등록 2002.12.31 04:50수정 2003.01.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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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일이 코앞인데 웬 뒤늦은 2002년의 10대 뉴스? 2002년이 깜빡 넘어가려는 세밑이 되어서야 기사를 쓰게 된 것은 기자가 게으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12월 막바지까지 10대 뉴스의 순위를 바꿀지도 모르는 핵발전소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북한 핵 문제는 시시각각 위태로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어수선한 세밑에 기습적으로 핵폐기장이나 핵발전소 부지를 지정고시하여 통과시키는 연례행사가 또 벌어질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어야 했다.

12월 24일 영광 6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하였다. 27일에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파행적으로 진행되던 신고리 1, 2호기의 환경영향평가 공청회가 또 시도되었다. 같은 27일, 울진 3호기가 제어봉 불량으로 원자로를 정지하였고 아직 원인규명이 되지 않았다. 29일에는 울진 4호기가 제어봉이 낙하하는 사고로 원자로 및 터빈발전기가 정지되었다. 이 사건들이 10대 뉴스감인지 판단할 시간이 빠듯했다.

1. 울진 세계 최대 핵단지화 계획 - 세계 최대의 핵위험 지대로

2002년은 세계 최대의 핵단지 계획을 저지하는 투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2001년 12월 28일부터 서울 곳곳에서 항의농성을 벌인 '울진 세계최대핵단지화 저지 상경투쟁단'은, 2002년 1월 1일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보신각에서 대형 플래카드를 올렸다.

a 2002년을 알리는 종각 타종에 맞춰 올린 대형 플래카드

2002년을 알리는 종각 타종에 맞춰 올린 대형 플래카드 ⓒ 울진상경투쟁단

울진에는 이미 4기가 가동 중이며, 2기가 건설 중으로 핵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의 자회사, 이하 한수원)과 산업자원부는 여기에 4기를 추가로 건설하여 총 10기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강행하려 한다.

7, 8, 9, 10호기는 다른 핵발전소 용량의 1.5배(140만kW)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기를 동시에 신규 건설하는 효과에 해당하며, 이 같은 대용량 원자로의 안전성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또한 이 계획으로 울진은 세계 최대 용량, 최다 기수의 핵단지가 될 전망이다.

핵발전소가 이미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라 추가 건설에 대한 저항이 약할 것임을 고려한 계획이었지만 주민들의 반대 운동은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저지투쟁위원회의 천막농성, 서명운동, 선전전, 울진군의회 및 울진군의 반대의견제출, 상경투쟁, 위원회 및 담당자 면담, 사회단체들의 의견서와 서명제출, 대안제시 등의 활발한 활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5월 4일,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울진군 북면 덕천리 일대 29만평을 울진 7, 8, 9, 10호기 핵발전소 부지로 지정고시하여 결국 세계최대핵단지화 계획에 도장을 찍었다. 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집중시키면 방사능 누출의 가능성, 열폐수(온배수; 핵발전소 안을 식히고 7도 정도 높아져서 나오는 바닷물)의 절대량, 그리고 생태계와 지역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모두 극대화된다. 이 때문에 울진 주민과 환경운동진영의 반대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 그 많은 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파단 사고

4월 5일 울진 4호기의 원자로와 직접 닿아 있는 증기발생기의 세관이 동강나면서 10분 동안 45톤의 1차 냉각수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우연히도 이 사고는 18개월마다 연료를 장전하고 정비하느라 가동을 정지한 상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원자로가 과열되어 녹아내리는 체르노빌과 같은 참사까지는 가지 않았다. 기적적인 행운이었다.

증기발생기란 핵연료의 열을 증기로 만드는 핵심 기관이며 증기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손가락 굵기의 가는 관 8200여 개가 U자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 강한 방사능을 띤 1차 냉각재(물)는 원자로를 식히고 난 뒤 고온(310℃)과 고압(150기압)을 띠게 된다. 이 가는 관(세관) 중 하나가 완전히 절단되어 냉각재가 일시에 45톤이 빠져나가는 '길로틴 파단'이 일어난 것이다. 냉각재가 유실되면 원자로가 달아올라 녹아내려서 폭발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세관파단의 원인이 인코넬 600이란 세관 재질 자체의 문제로 추측되기 때문에 비슷한 사고가 영광 3, 4, 5, 6호기, 울진 3호기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울진 4호기를 가동한지 2년 3개월, 곧 가동 후 세계 최단기간 내에 일어난 세관파단 사고이기 때문에 한국형 원자로의 근본적인 불안전성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정확한 원인 규명도 없이 한 달만에 재가동에 들어갔다.

사안의 심각성을 은폐하려는 과학기술부와 한수원의 움직임은 사후 지역주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고 직후 '세관 누설', '튜브 누설 징후' 같은 표현으로 문제의 본질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게 보도 자료를 작성했다. 또한, 이번 세관파단 사고는 1등급으로 기록되었는데, 과학기술부는 7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2/4분기 핵발전소 사고들이 모두 0등급이었다고 밝혔으며 이 사고는 통계에서도 제외했다.

9월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종걸, 김희선, 김원웅 의원은 이 사고가 축소되었으며 철저하게 재조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 O교수에게 무슨 일이? - 열폐수 문제로 '어용 교수' 딱지

a 서울대 오임상 교수에 대한 어민들의 항의 집회

서울대 오임상 교수에 대한 어민들의 항의 집회 ⓒ SNUNOW

9월 13일 서울대 정문 앞에서는 700여명의 어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대학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아닌 어민들이, 학교 바깥쪽이 아닌 학교 안쪽을 향해 앉아 시위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서울대 해양학과 오임상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영광원전 측은 영광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및 가동에 따른 광역해양 조사 용역을 한국해양연구원에 의뢰했다. 5월 말 한국해양연구원은 해수온도가 섭씨 1도 이상 상승하는 열폐수(온배수) 확산범위가 남쪽인 영광 방향으로 당초 한수원 실측치인 12km보다 훨씬 넓은 20km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지난 7월에는 한수원과 고창군 어민들의 합의 아래 군산대에 의뢰해 실시된 조사 용역 결과, 영광 핵발전소 열폐수 확산범위가 북쪽 방향으로 한수원이 당초 주장해 온 13.2km보다 약 4km 늘어난 17km임이 알려졌다. 양측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어민들에 대한 추가보상 여부 및 규모를 결정키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두 조사 결과가 발표되려 하자, 한수원은 일방적으로 용역을 중단시켰고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어민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군산대와 한국해양연구원은 한수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서울대 오임상 교수의 조사는 5월 무렵 한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주로 핵발전소가 해양 환경에 미치는 피해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수원에서는 오임상 교수의 용역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태도였고, 생존권 박탈의 위기에 처한 어민들은 직접 상경 투쟁을 시도한 것이다.

'원전 온배수 피해 4개 지역 연대'는 월성·고리·영광·핵발전소 주변 어민들이 열폐수로 인한 피해조사 및 보상을 요구하며 구성한 연대 기구로 어업권에 대한 조사와 보상을 한수원에 요구해왔다. 어민들은 오임상 교수가 "직접 원전 주변 지역에 찾아온 적이 없고 한수원 측에서 제공한 자료만을 가지고 조사한 것"이라 주장하며 조사의 객관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대 측은 이례적으로 어민 대표와 면담을 진행하고 오임상 교수를 징계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총장, 학생처장, 교무처장과 4개 지역 연대 측 대표 다섯 명이 참석한 면담에서 지역 연대 측은 오임상 교수의 해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윤리위원회를 열어 문제가 인정될 때에는 오임상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 '해양학회, 오임상 교수, 군산대 측, 지역 연대 측이 여는 4자 회담에 서울대 측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합의했다.

결국 오임상 교수의 징계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핵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한 어용 교수라는 비판이 오 교수를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광 5, 6호기는 열폐수 논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과 가동이 강행되었다.


4. 월성 2호기에서 핵발전소 외부로 중수 누출, 노동자 27명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

7월 17일, 월성 2호기 원자로 격납건물 내에서 중수 누설로 원자로가 수동 정지되었다. 이 때 핵발전소 주위로 중수(수증기 형태)가 방출, 작업자 27명이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 이 날 원자로건물 내 삼중수소 농도의 상승(4.2 → 9.2 DAC)이 확인되었고, 냉각재 정화계통 밸브에서 중수(방사능을 띠고 있는 물)의 누설이 발견되었다. 외부로 방출된 중수의 양은 54 kg-D2O였다.

이번 사고의 밀봉체(Jig) 설치 및 밀봉재(퍼머나이트) 주입 작업을 위해 원자로를 출입한 사람은 총 27명으로 집적 방사선량은 83.97mSv이며, 한 사람의 최대 방사선 피폭량은 9.91mSv이고 7.95mSv, 7.62mSv, 7.03mSv 등이 뒤를 이었다. 독일의 1년간 피폭 허용치는 0.05mSv이며 핵 관련 노동자의 허용치는 0.5mSv이다. 한국의 1년간 피폭 허용치는 1mSv이고 핵 관련 노동자의 허용치는 50mSv이다. 바로 이런 법규정를 들어 월성핵발전소에서는 피폭량이 모두 허용치 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규제치(ICRP 60)가 적용되어 올해 말부터 한국의 일반인 연간 피폭 허용치가 0.5mSv, 핵 관련 노동자의 연간 피폭 허용치가 20mSv로 기준이 강화될 예정이다. 독일인과 한국인, 일반인과 노동자들의 신체가 다르지 않지만 핵발전소의 운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핵 시설 노동자들의 피폭 허용치를 턱없이 높여 잡은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연간 허용치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10mSv에 가깝게 피폭된 것은 그 피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월성원자력본부측은 사건 발생 초기에 "노출된 방사선량은 0.1-0.2mSV 정도이며 이는 X-레이 선량 피폭치 절반 수준"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정확한 조사를 하기도 전에 문제를 축소시키기 위한 기만적인 행동이었다.

월성핵발전소는 제조국가인 캐나다에서조차 가동을 중단하고 7기를 폐쇄한 '캔두(CANDU)형' 핵발전소이다. 누설 부위인 냉각재 정화계통 배관연결부위는 2001년 3월 7일에도 16mm의 균열이 발생하여 삼중수소가 누설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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