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맥잇기, '북춤명인전'

한민족의 얼과 전통을 잇는 북춤꾼들의 향연

등록 2002.12.31 04:22수정 2003.01.1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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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신명꾼들이 한국 전통의 북춤을 자유자재롭게 펼쳤다. 인간문화재, 북춤의 전수자들이 한곳에 모여 고수들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속에 북춤의 산 증인들이 우리 민족의 멋과 정서가 듬뿍 담긴 우리 가락을 신명나게 펼쳐 보였다.

지난 30일 대백예술극장(11F)에서는 팔공문화원의 전통 맥잇기의 세 번째 무대인 '북춤명인전'이 펼쳐졌다. 공연장에는 북춤의 명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객석에는 우리 가락을 이어가는 문하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한전기 원장(팔공문화원)은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전통문화가 거의 1세기만에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고 토로하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전통북춤의 장을 마련한 것은 잊혀져가는 전통북춤의 명인을 한 자리에 모셔 우리 민족, 지방 특유의 멋과 신명을 서로 체감하고자 합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서양 문화에 익숙해진 현대 생활 속에 우리의 문화를 쉽게 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 가락과 문화를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서양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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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춤 양태옥 선생과 유명숙 원장 ⓒ 김용한

한바탕 북춤이 벌어진 무대에서는 진도북춤(전라남도지정 제18호)의 기능보유자 양태옥(85세/ 譜名 容承) 선생이 제일 먼저 첫 무대를 열어갔다. 80세를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그의 재바른 몸동작과 신명난 무대를 지켜보면서 우리 가락의 멋과 맛이 한껏 우러난 무대를 엿볼 수 있었다.

양 선생은 "기력이 되살아난 것 같이 즐거웠다"는 말로써 노장의 건재함을 자신의 문하생과 일반인들에게 몸소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진도북춤을 선보인 문하생 유명숙(신라국악예술학원장)씨는 자신의 스승에 대해 "양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거동도 불편하고, 귀도 어두워서 요즘에는 집에서 쉬고 계신다"고 언급을 하면서 "오늘 선생님께서 북춤을 추시는 것을 보니 기력이 되살아나고, 더 젊어지신 기분을 느낀다. 한 25년만 더 사셔서 100세를 채우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스승과 한 무대에 서서 공연한 것에 감회의 기쁨을 전하기도 했다.

유 원장은 "진도북춤은 쌍채북을 들고서 추는 춤으로 날뫼, 밀양북춤처럼 가락이 얼른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서 좀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은 있고, 가락이 어려운 점이 있으나 우리 가락이라는 점에서 신명날 것이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또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한국 음악, 전통음악을 좀더 알고 난 뒤에 외국음악, 서양음악을 즐겼으면 한다"고 전하면서 "비록 우리 음악이 구슬프고, 춤마저도 애련함을 느낄 수 있지만 외국 문화처럼 몸을 많이 움직이고 현란한 서양음악에 비해 웅장함과 고요함의 멋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진도북춤(놀이)은 풍물춤처럼 즉흥성과 신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인데, 집단놀이에서 개인놀이로 전환할 때 북춤은 예능화되고 그 멋은 더욱 고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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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북춤의 권명화 선생 ⓒ 김용한

두 번째 무대로 소고춤을 보여준 무형문화재 9호 권명화 선생도 70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선 그의 몸놀림은 젊은 사람 못지 않은 힘과 세련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농악에 편성되어 소고잡이들이 추는 춤으로 농사행위, 수렵행위 등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권 선생은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분장한 모습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수제자들과 일반인들 앞에 선다는 자체에 감격을 느끼고 있는 듯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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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뫼북춤의 김수배 선생과 문하생 ⓒ 김용한

날뫼북춤의 기능보유자 김수배(77세) 선생도 청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비산동에 살면서 16세때부터 날뫼북춤을 배워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2호이기도 하다. 무대에 선 김수배 선생은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휘에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그는 "나이가 많다보니 직접 공연을 한다는 것이 힘이 많이 들어졌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문하생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북춤을 추면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날 김수배 선생은 자신의 문하생들과 함께 신명난 북춤판을 벌이면서 어느새 자신이 가르쳐온 제자들이 자신처럼 훌륭한 무대공연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한껏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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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오북춤의 하용부 예능보유자 ⓒ 김용한

마지막 무대에는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였던 하보경옹(1997. 12. 작고)의 밀양오북춤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 눈길을 끌었다. 밀양오북춤은 다섯 명의 북잽이들이 나와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기를 빌며 오체가 성하고 오곡이 잘 되어 오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춤의 내용으로 이어져 있다. 이날 공연에는 하보경옹의 손자인 하용부 예능보유자(밀양백중놀이)가 양반춤, 범부춤, 북춤의 섬세한 몸놀림과 엇박자 춤을 정중동에 맞춰 멋들어지게 선보인 무대였다.

하용부 예능보유자는 "우리 북춤도 그저 국가행사에만 형식적으로 들러리만 서다보니 우리들만의 즐거움, 흥겨움의 자리가 되지 못했다"고 토로하면서 "모처럼 우리 전통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뻤고,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서 더욱 신명났다"고 말했다.

그는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우리 문화를 전수해주지 못했던 잘못도 컸던 만큼 좀더 열정과 장인 정신을 갖고 매진해갈 필요가 있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이날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얼쑤", "얼씨구"를 연발하면서 우리 가락의 멋과 맛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인상이 깊었다. 또한, 북춤의 진미와 명인들의 신명난 무대공연과 우리 가락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에 공연에 참가했던 출연자와 관객들은 동일한 교감을 얻은 듯했다.

하루아침에 우리 것을 되살리고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것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신명을 바쳐서 살아가는 명인들의 모습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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