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꿩고기 맛 추억

어떤 여인네 몸매가 '장끼'만큼 아름다울까?

등록 2002.12.31 10:55수정 2003.01.0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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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꿩! 꿩!" 세 번 소리를 하고 "후다닥", "푸드득" 날개를 펴고 '장끼' 한 마리가 뭉퉁한 몸을 이끌고 땅을 박차 날아가는 지점을 가보면 '까투리' 무리가 있다. 여러 마리가 쭉 한 줄로 서서 줄달음 친다. 병아리 열 댓 마리도 엄마 꿩 뒤를 졸졸 따른다. 이 놈은 웬만해서는 바로 날지 않는다. 20여 미터쯤 땅을 곧바로 기어가 추진력을 얻고서야 하늘로 날아오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잡아 보려 애써 보았지만 매번 허사였다.

암컷 치고 아름다운 게 뭐가 있던가? 사자가 그렇고 닭도 그렇다. 꿩도 마찬가지다. 까투리는 암컷이다. 까투리는 갈색 바탕에 검은 점이 듬성듬성 둥그렇게 뿌려져 있다. 하지만 '장끼' 수꿩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머리 부분부터 관찰하면 길게 나온 부리에 머리는 까만 색과 비취색이 어울려 환상 그 자체다. 벼슬은 붉다. 눈은 까맣다. 형형색색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무지개 빛에 "빨 다 주 귤 노 노 연 풀 녹 초 청"으로도 형용이 힘들다. 꽁지에 이르러서는 긴 깃털이 더 빼어나 보인다. 어떤 여인네 몸매가 장끼만큼 아름다울까.


방위받던 시절 조카 '미리', '한얼'이와 함께 제각에서 살았는데 '드나드는 개가 꿩을 물어온다'는 외국 속담처럼 우리집 '누렁이'가 꿩을 잡아 뜯어먹고 있었다. "누렁아! 이리 와봐" 누렁이를 꼬드겨 식식거리며 냠냠거리던 꿩을 얼른 빼앗아 털을 마저 뜯고 장작불에 굵은 소금 뿌려서 구워 먹었다.

약간은 시큼하면서도 새 고기 맛이 났다. 두 아이는 꿩이라는 말만 알아들을 뿐 이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모르고 잘도 먹어댔다. 장끼였지만 이미 누렁이가 뜯어먹은 데다 이놈 이빨 자국 난 언저리를 조심스레 덜었으니 얼마 되지 않은 양이라 더 맛있었는지 모른다.

"삼춘 뭔 고긴데 이렇게 맛있어?"
"꿩고기다. 닭 열마리하고 안 바꾸지."
"왜?"
"꿩 대신 닭이란 말 들어봤니?"
"꿩고기가 맛있기 때문에 꿩을 못 잡으면 닭으로 대신 떡국도 끓이고 만두도 해서 만들어 먹었단다."
"그렇게 맛있으면 우리 집에서 길러 볼까요?"
"알았다. 삼촌이랑 같이 길러보자꾸나"하며 맛있게 먹었다.

시골에 살았던 내게 꿩은 아주 친근한 짐승이다. 지게지고 나무하러 가다보면 추수가 끝난 콩밭에서 쉬 만날 수 있고 산길을 걷다 푸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꿩이 있다.

고사리 꺾으러 산에 나가신 어머니는 해마다 달걀 크기 1/4 밖에 안 되는 푸르스름한 알을 담아 오셨다. 삼짓날 즈음에 알을 열댓 개 낳아서 품고 있다가 사람 인기척이 있으면 놀라 도망가는 자리에 가 기필코 알을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리신 분이다.

고사리 꺾어 장에 내다 팔아야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가정 형편이었지만 어머니께선 아이들 단백질을 보충해주실 생각으로 꿩알을 깨지지 않게 나뭇잎에 조심조심 싸서 망태 중간쯤에 자리잡게 하고 하나라도 깨질까 두려워 사뿐사뿐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 오셨다.


가끔 고사리 망태에서 칡순을 꺼내 군것질 거리를 제공하셨는데 꿩알을 주워 오신 날은 어머니 얼굴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인지 싱글벙글 하신다. 두릅을 따서 꺼내고 고비를 꺼내 따로 모으신다.

"엄마, 꿩알이네?"
"오냐, 꿩알이제. 엄마가 알 줍느라 고사리를 조금 밖에 못 꺾었단다. 그래도 좋쟈?"
"그러믄이라우. 꽁알을 주서왔응께 더 좋구말구라우. 야- 삶아 묵으먼 맛있겠다!"
"엄니가 고사리 삶고 우리 아들 꿩알 삶아 주마."


꿩알은 삶아 소금을 안 찍어 먹어도 야생이라 그런지 간간한 맛이 난다. 메추리 알 보다 네배 크고 달걀보다 네배 작다. 껍질을 벗기면 금새 푸르딩딩한 색으로 변한다. 그 틈도 주지 않고 입안으로 쏘옥 들어가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겨울 이맘때면 시골 아이들은 또 한 번 바빠진다. 초등학생, 중학생 할 것 없이 칼자루 보다 더 작은 나무를 한 뼘 길이로 잘라 못을 하나 박고는 망치로 두들겨 패서 못대가리를 날려버리고 '드라이버'를 하나 만든다. 꿩을 잡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간 동네 형들에게 500원 주고 부탁하여 사오게 하면 '싸이나'라 불렀던 시안화칼륨(KCN) 하얀 덩어리를 사왔다. 극약 덩어리이니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던 "싸이나"!

저녁을 먹고 난 아이들은 침침한 호롱불 가까이서 작업에 돌입한다. 먼저 잘 마른 콩 반되 정도 갖다 놓고 납작한 못 꽁지를 돌려 안을 파내고 거기에 싸이나 덩어리를 조금 떼어 넣는다. 촛불을 피워 뒀으니 방안은 더 환하다. 촛농을 떨어뜨려 콩 입구를 막고 식으면 살짝 눌러 단단히 고정하면 완성품이 된다. 형제가 여럿이어서 두명은 구멍 뚫고 한 명은 약 넣고 한 명은 구멍을 봉하면 반 되 분량도 빨리 끝낼 수 있다.

비나 눈이 온 다음날 아침에 인적이 뜸한 야산 밭에 가서 듬성듬성 놓아두면 사람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작업한 콩을 뿌린 날부터는 아침에 한 번 저녁 때 한 번 둘러보아야 내 차지가 된다. 그런데 이 꿩은 날짐승 중 꽤 큰 편에 속한지라 내장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제자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

약을 먹고 뱃속에서 촛농이 녹아 '싸이나'가 고루 퍼지려면 10분 이상이 소요되다보니 근처에서 배 채울 것 다 채우고 산으로 돌아갈 즈음에야 약발을 받으니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세 개, 다섯 개 씩 모아 둔 곳에 콩 알 하나라도 없어졌다면 그 덤불 속을 이 잡듯이 수사(搜査)해야 한다.

날씨가 따뜻한 겨울이면 먹을 게 많아 잘 안 잡히지만 추운 날이 지속되면 하루에 한 마리에서 어떤 날은 대여섯 마리까지 어깨에 들춰 메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놈이 농약을 먹었든, 극약을 먹었든, 사약을 먹었든 상관없이 털 뽑아 내장을 죄다 들어내 땅에 묻어 버리고 토막토막 잘라 무채를 도톰히 썰어 조선 간장 넣고 매운 고추 두어개 썰어 넣고 매콤하고 짤박하게 끓여 내면 지방 하나 없이 쫄깃한 그 맛에 정말 옆사람 누가 왔는지, 누가 나갔는지 상관없이 흠뻑 매료되고 만다.

"아! 꿩고기 먹고 싶다."

설날에는 만두 속이나 떡국엔 꿩고기를 썼다 한다. "꿩대신 닭"이라는 유래가 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니 꿩고기 한 번 먹어보는 여유를 갖고 싶다. 요리는 간단하다. 잘게 토막을 내 마늘, 생강을 빻아 넣고 참기름을 한 방울 넣어 볶아서 보관했다가 손님오면 조금 덜어 끓이면 된다.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꿩떡국! 이 맛은 따라올래야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다. 미역국도 꿩고기를 끓이면 미역 줄기가 "후루룩" 입안으로 빨려든다.

덧붙이는 글 | <까투리타령>

(후렴)
까투리 한마리 푸두둥허니 매방울이 떨렁
후여 후여 어허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을 넘어 무등산을 지나 나주 금성산을 당도허니

충청도라 계룡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충청도로 올아 속리산으로 넘어 경상도 가야산 당도허니

경상도라 문경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경상도로 올라 문경산을 넘어 청용산 봉양산 당도허니

경기도라 삼각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경기도로 올라 삼각산을 넘어 광주산성을 당도허니 

*장끼 사진 갖고 계신 분 같이 올려 주시면 제가 한 턱 내지요.
 사진이 빠지니 글이 살지가 않습니다. 퍼다가 쓸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덧붙이는 글 <까투리타령>

(후렴)
까투리 한마리 푸두둥허니 매방울이 떨렁
후여 후여 어허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을 넘어 무등산을 지나 나주 금성산을 당도허니

충청도라 계룡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충청도로 올아 속리산으로 넘어 경상도 가야산 당도허니

경상도라 문경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경상도로 올라 문경산을 넘어 청용산 봉양산 당도허니

경기도라 삼각산으로 꿩사냥을 나간다.
경기도로 올라 삼각산을 넘어 광주산성을 당도허니 

*장끼 사진 갖고 계신 분 같이 올려 주시면 제가 한 턱 내지요.
 사진이 빠지니 글이 살지가 않습니다. 퍼다가 쓸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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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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