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절대 담배는 입에 대지 마라!

못난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2.12.31 18:04수정 2002.12.3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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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비는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일찍이 네 할아버지의 귀한 가르침을 소홀히 들었다. 듣기 싫은 잔소리로 여긴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저 세상에 계신 네 할아버지께 한 평생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사는 소이도 거기 있다. 생시에 너희 할아버지는 학문을 익힌 바는 없으나,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길이 무언지 자식에게 가르치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가장 강조하신 말씀이 근면이었고, 그 다음이 잡기(雜技)로 허송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농사를 천직으로 사신 분이니, 자식에게도 근면을 강조한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잡기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씀도 이 아비가 살아오면서 화투 같은 오락을 애당초 배우지 않았으니, 크게 어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제 몸을 잘 돌 보라"는 말씀은 지극히 소홀히 하였다. 그 말씀은 자기 관리를 부단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 관리라는 점을 자식에게 간절히 바라고 강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너희 할아버지 말씀을 <늘 입에 달고 사시는 잔소리>쯤으로 여기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해롭다는 담배도 배웠고 술도 두려움이 없이 마셨다. 나이 30대 후반에 이르러 크게 후회하고 담배는 힘들게 끊었으나 술은 아직도 조금씩 입에 대고 있는 형편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대학생인 네 형이 나이 스무 살이 되어 담배를 배울 때 이 아비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 아버지의 웃옷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던 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네 형이 아버지의 옷을 입고 외출하였다가 깜빡 잊고 거기에 담배를 넣어 둔 것이었다. 이 아비가 그것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 아비의 충격은 컸지만, 그 충격이 결국 네 형의 담배를 적극적으로 끊게 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으니, 다행이 아니냐? 너도 곁에서 지켜보았으니 잘 알 것이다.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를 이 아비가 간곡한 마음으로 글로 써서 호소하였다. 자식이 머지 않아 후회하게 될 일을 아비가 뻔히 알면서 이를 말리지 못하면 아비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지난 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발표한 <한 가장의 올해 10대 뉴스>중 첫 번째로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가 담긴 글로 네 형이 담배를 확실히 끊은 뉴스'를 올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잖니? 심성 여리고 착한 네 형이 이 아비의 말을 절실히 받아들인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너도 기억하지? 그 글의 제목이 <고맙다 아들아! 담배를 끊는다니…> 였다는 거.

사랑하는 아들아!

네 형이 아버지의 간곡한 호소로 담배를 끊는 과정을 고등학생인 너는 곁에서 똑똑히 보았어. 그런데 말이다. 이 아비는 네 형이 그렇게 힘들게 담배를 끊는 모습을 네가 보았으므로 너만큼은 굳게 믿었어. 그래서 아예 네게는 굳이 담배를 피우지 마라고 잔소리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네게 어떤 배신감마저 느껴! 크게 실망한다. 지금까지 네가 이 아비에게 보여준 착하고 성실한 모습이 조금은 위선이 아니었나 싶고, 자식에 대한 신뢰감에도 금이 가는 것을 느껴!

미술 학원에서 대입 막바지 실습을 하고 매일같이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하는 네가 곤히 자는 줄 알고 문을 열어 보았어. 그런데 너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창문을 열어 놓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 깊은 시간에 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창문을 열어 놓고 밖을 바라보았니? 날씨는 얼마나 추웠니? 틀림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거야. 이 아비가 너무 예민한 걸까? 니코틴 냄새에 지나치게 민감한 걸까? 너는 담배를 피운 게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이 아비의 코를 속일 순 없었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훌륭한 미술가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이 아빠는 대견하게 여기고 있단다. 미술 대학에 가기 위해 요즘은 거의 새벽 두 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들어 오는 네가 이 아비는 안쓰러워 잠을 못이룬다. 얼마 전에는 밤늦게 저녁밥을 먹으면서 팔과 가슴이 결리다고 하는 너의 말을 듣고 이 아비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팠어.

석고상 소묘 한 장 그리기 위해 너의 연필심이, 너의 손놀림이 켄트지 위에 수 만 번 되풀이된다는 것을 이 아빠는 잘 알아. 그런 피나는 노력 없이는 예술이란 분야는 발을 들여놓기 어렵다는 것, 너는 체험을 통해 아빠에게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어.

고달픈 대학 입시을 목전에 두고 네가 담배를 입에 댄 것을 이 아버지는 충분히 이해해. 남달리 의지력이 강한 너도 그림이 잘 안될 때, 그 참을 수 없을 만큼 담배의 유혹을 느낀다는 것을 이 아빠는 잘 알아. 네가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주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을 보면 그 의지력이,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마저도 한갓 부질없는 잔소리쯤으로 여겨질 거라는 것도 이 아빈 이해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요즘은 아버지가 네게 휴대폰<문자 메시지>를 거의 매일같이 보낸다. 똑같은 문장을 <저장하기>에 넣고 발송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어하는 너를 생각하고 매일 밤 <새 문장>을 써 보낸다.

<저녁밥은 따뜻하게 먹었는지 모르겠구나. 힘들지만 담배는 참아라!>라든지, <고생한다. 네가 노력한 만큼 성과는 나타나리라고 이 아빠는 굳게 믿는다. 담배는 참으면 약이고, 못 참으면 독이 된다.>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 산소호흡기 의존하여 가쁜 숨 몰아 쉬는 거 봤지? 그 분이 "담배 그거 독약입니다" 하는 광고 봤지?>

이렇게 <담배> 字를 넣어 보내는 이 아버지의 문자 메시지가 <금연 홍보 메시지>로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거기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빠의 간절한 마음도 담겨 있다는 것을 네가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구나. 이 아비는 이 세상 기호품 중에서 <담배를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너는 잘 알잖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유로운 자리가 없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했잖니?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아라. 네 그림이 평가해 주시는 선생님들로부터 연속으로 'a+1'을 맞는다는 것은 너의 천부적인 재능도 있지만, 너의 강한 인내력의 결과라고 이 아빠는 굳게 믿는다. 모쪼록 노력한 만큼 큰 꿈 이루고, 몸 건강하기를 이 아빠는 간절히 기원한다.

새해에는 꼭 <아버지 걱정마세요. 저 담배는 절대 입에 대지 않아요!>라는 <문자 메시지> 한 통 받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2002년 12월 31일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추신: 아버지 휴대폰 언제라도 열려 있다. 019-422-78**

덧붙이는 글 | 이 편지는 아들의 e-메일에도 동시에 넣었습니다. 요즘 매일같이 휴일도 없이 심야에 귀가하는 아들이 이 편지를 언제 읽어 보게 될 지 모르겠군요.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아비의 이런 편지를 읽고 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편지는 아들의 e-메일에도 동시에 넣었습니다. 요즘 매일같이 휴일도 없이 심야에 귀가하는 아들이 이 편지를 언제 읽어 보게 될 지 모르겠군요.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아비의 이런 편지를 읽고 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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