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동화 '행복한 세상' 다시 보기

행복한 세상은 현실에서 동화로, 동화에서 다시 현실로!

등록 2002.12.31 19:51수정 2002.12.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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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가족과 함께 보기에 적당하다
2)감동적이다
3)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4)아이디어가 신선하다
5)선정적이지 않다
6)폭력적이지 않다
7)건전한 언어를 사용한다
8)유익한 정보가 많다
9)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10)재미있다

이러한 점들을 묶어서 이야기하자면 방송 프로그램 비평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공익성과 윤리성이다. 이러한 요소는 방송이 상업성과 선정성의 요소가 많아질수록 더욱 부각되는 점들이다.

방송프로그램은 시청률을 의식하여 제작할 때 상업성과 선정성은 증가한다. 이렇게 증가할 때 방송비평은 방송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공익성과 윤리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높게 평가한다. 이러한 공익성과 윤리성이 있는 프로그램들은 각종 매체의 좋은 글감이 된다. 또한 각종 좋은 프로그램 시상식의 수상 대상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익성과 윤리성이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은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상업성과 선정성이 판치는 방송 풍토에서 그나마 방송하는 좋은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의 본질적인 성격상 장미 속의 가시는 있게 마련이다. 좋은 프로그램일수록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비판적 제기를 억제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문제점 지적을 거두게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큰 위험성을 안게 한다. 이러한 점은 나쁜 프로그램이 지니는 문제점보다도 오히려 더 비판적인 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비평 작업이 있어야 한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1)가족과 함께 보기에 적당하다. 2)감동적이다 3)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4)아이디어가 신선하다. 5)선정적이지 않다 6)폭력적이지 않다. 7)건전한 언어를 사용한다 8)유익한 정보가 많다. 9)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10)재미있다 는 항목들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생각의 틀을 넓혀주기는 하지만 오히려 좁게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

TV동화는 채 4분이 안되는 분량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화려한 천연색인데 반하여 TV동화는 담담한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선명한 원색 속에서 중간색의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그렇고, 유화처럼 진한 농담의 영상 속에서 수채화 같은 담백함으로 채색한 것이 그렇다. 또 매끄러운 움직임 대신 둔탁한 애니메이션을 쓴 것이 약간 어색하다. 다채로운 목소리 대신 두어 명의 나레이터와 성우가 전부인 것도 수수하다. 그러나 그 감동의 물결은 깊고도 넓다.

시청률도 5%대에 불과하나 마니아 팬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프로그램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나갈 때마다 100여건의 의견이 올라온다.“너무 감동적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내용이다.

어린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프로의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우리들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세요" "다음에는 이 동화를 꼭 드라마로 만들어주세요"라는 등 어린이들의 동화추천도 이뤄진다. "이 프로가 제 마음에 따스한 불씨 하나를 지펴준 것 같아요"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따뜻한 감동 때문에 때로는 절절하게 와 닿는 감동 때문에 이 프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기다린다.

TV동화가 분명한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가족과 이웃에서 발견되는 믿음과 사랑의 깊이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순수와 작은 아름다움의 세계다. (한겨레신문, 2002년 8월 23일자 22면)

감동이 배가되는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지만 작지 않은 이야기들 가족과 이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내면에 잠재해 있는 순수의 본질을 처럼 아름답게 그려내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2001년 한국언론학회가 평가하는 PSI지수(프로그램 서비스 지수) 상반기 1위에 뽑혔고 경실련 미디어워치가 주는 ‘2001년 상반기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2001년 한국방송 봄 개편 프로그램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올해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제 29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받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학교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도덕교재로 활용하거나 아침마다 녹화 분을 보여주고 우리는 공책에 느낀 점을 쓰도록 하는 학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2001년 5월 31일자 33면)

그럼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때론 너무 형식이 단조롭다, 궁상맞다며 변화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향신문, 2002년 9월 10일자 39면) 그러나 장점의 이면에 이러한 기교적인 단점만 있을까?

우선 이 프로그램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이 전하는 풍경은 다음과 같은 맥락이다. 노인을 태우기 위해 밤길에 라이트를 켜고 기다리는 버스 기사, 붕어빵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매일 들러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중년 신사, 피치 못할 사연으로 교도소에 갇힌 아버지에게 연을 띄워 가족의 사랑을 전하는 아들, 공장일로 힘겨워하는 남편에게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라고 10년 동안 도시락 편지를 써 보내는 아내, 새벽 인력시장에 내몰린 IMF 실직자들에게 컵 라면을 돌리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고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소년,

가출한 딸을 기다리며 10년째 문을 잠그지 못하고 열어두는 어머니, 아빠 퇴근시각에 맞춰 끓인 컵라면이 식을까 봐 이불 밑에 넣어둔 소년, 10년 전 살던 셋방을 찾아가 잊었던 ‘첫마음’을 되찾는 가난한 부부, 교도소에 갇힌 아버지에게 연을 띄워 가족의 사랑을 전하는 아들, 흑인 꼬마 앞에서 풍선을 풍선답게 하는 것은 색이 아니라 그 속에 든 것이라며 (아까운)검은 풍선들을 하릴없이 날려 보내는 이상한 풍선장수, 대학생에게 꼬박 꼬박 장학금을 대주며 “인생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훈계하는 구두병원 원장, 초라한 말라깽이 처녀를 암소 아홉 마리나 주고 신부로 맞은 신랑. 만년필의 주인을 찾아주려 동분서주하다 목숨을 잃은 독일청년. 황량한 황무지에 꽃씨를 뿌리는 집배원, 힘든 생활에 지친 부부가 옛집을 찾아가 삶의 행복을 되찾는다는 이야기 등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너무나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먼저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감동이다. 등장하는 인물, 사건, 시간의 흐름, 갈등은 모두 결국에는 감동으로 맺어진다. 이러한 감동을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압축과 구성이 필요하다. 보는 사람들은 결국 이러한 압축의 감동을 얻기 위해서 시청한다. 이러한 감동을 맺어내기 위해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가난한 사람, 장애인, 결손가정이 주요 등장인물이며 그들의 행동과 말로 이루어진 사건이 주요 소재가 된다.

주인공 중에는 거지도 있고 행상 아줌마도 있다.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고 여러 형태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온다. 이러한 점들을 두고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이 동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실타래를 푼다. 그렇게 솔솔 풀려 나온 이야기가 마침내 잉크 번지듯 TV를 물들이고, 온 세상을 파랗게 물들이는 것이다.’ 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동아일보, 2001년 8월 30일자 45면 [박성희 교수의 TV읽기] KBS2 'TV동화 행복한 세상')

그러나 막상 이러한 주인공 즉, 실제 주인공들이 이 프로를 보는지는 의문이다. 즉, 결손가정, 아주 가난한 사람들, 장애우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겨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나 감동과 화해 즐거움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시청자는 눈물을 떨군다. 그리고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인이나 결손가정, 가난한사람들의 생활은 단편적인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삶의 고통은 지속적이다. 끊임없이 그들이 겪는 문제가 그들을 괴롭힌다. 감동적인 부분은 일부일 뿐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냉혹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그들의 불행을, 감동을 위한 수단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러브하우스에서 불행한 순으로 집을 고쳐주는 것과 같은 패턴이다.

TV동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이고 감동을 더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TV동화)는 사람이 풍경이 되는 그림동화다. 어떤 동화보다 더 동화적이고 사실적인 우리 삶의 거울이며 일기장이다. 현란한 색채와 빠른 움직임, 선정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방송이 시청률을 자랑하는 시대에 감성과 진한 호소력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01년 9월 24일자 26면)

이러한 점은 매우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TV가 사회의 거울이라고 볼 때는 더 이 프로그램은 거울이 되어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거울과 같이 반사만하는 것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현실을 동화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감동으로 모든 것을 귀결시켜야 하는 프로그램의 숙명인가. TV동화는 현실을 그림 동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성물이 된다. 현실을 동화로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한 편의 멋진 동화일 뿐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매체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처럼. 그들이 겪는 냉혹한 모순과 장애는 감동으로 맺어지면 끝인가. 아니, 해법은 있는 듯하다.

TV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족과 이웃, 친구간의 사람과 정이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그러한 사랑과 정을 어떻게 끈끈하게 지니고 있는 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는 제작자들이 말하고 시청자들이 말하듯이 각박한 세상, 무한 경쟁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살맛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종 ‘흉악한 범죄로 얼룩진 각박한 세상, 천박한 오락물이 판치는 텔레비전에서 TV로 동화를 쓰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박인식 PD와 이미애 작의 몽상이 현실로 변해간다 고 평가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2002년 9월 10일자 39면)

그러나 그것이 진짜 현실일지는 의문이 앞선다. 동화 일 뿐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역경과 고난에 찬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에서 감동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는 행동은 매우 개인적인 헌신과 배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위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 장애인, 그리고 결손과 불우한 환경에 있는 모순들은 개인적인 노력이나 행동으로 극복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그것만으로 근원적인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가지는 모순은 적극적인 사회적 움직임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고 그 가운데 원천적인 감동과 눈물이 존재한다. 그러한 행동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도 TV동화에는 몇몇의 인물의 행동과 사고만을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한다는 식으로 도식화 해버리고는 한다. 감동과 따뜻함은 그 도식에 따라 흐른다. 그 속에 흠뻑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몇몇 인물 중심의 감동적인 행동과 말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자체를 인물적인 감동만 있는 구성 동화 수준에 머물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TV동화가 행복한 세상을 동화처럼 그리는 것은 현실과 이렇게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할 경우 어린이들의 교육 교재로 경우 사회 모순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텔레비전 방송 구성에만 머물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사람과 그가 처한 구조를 반영해야 한다. 양자 사이의 능동적인 관계를 반영해야만 이 현실의 행복한 세상이 더 가까워진다.

각 이야기에는 모두 선한 사람만 등장한다. 도무지 현실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여겨지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다.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들이다. 오로지 착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헌신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감동의 눈물을 쏟게 한다.

그러한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선의의 행동이 악한 행동이 되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점이 간과하게 된다면 선한 사람이 왜 악하게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역동적인 구조에 언급도 없게 된다. 현실에서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간과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일시적 자기 최면이고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람들에 개인적인 실천을 하도록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구조에 대한 반영은 괘념치 않아도 된다고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지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차원의 행동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보고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고 오히려 자신을 자학하기도 한다. 개인적 행동과 사고 기반 해법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구조와 환경을 이해하기보다는 개인의 행동과 사고에 비판을 가하게 한다. 이러한 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교과교육을 하거나 가정에서 교육을 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라고 보여진다.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TV속의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현실 속의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이 뜻하려고 하는 것은 TV동화가 현실에서 사람들이 헌신과 배려 그리고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나 현실의 자지 자신은 각박하고 악한 사람으로 남고 이웃이나 가족도 그러한 수준에 머물게 인식하게 한다. 그러면서 TV속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만 계속 빠져있게 한다. 그야말로 동화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훌륭한 작품이다. 배려와 헌신 그리고 사람이 감동과 따뜻함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각박한 사회뿐만 아니라 방송문화에 큰 향기를 주고 있다. 그러나 감동을 주기 위한 동화적 구상은 자칫 현실의 모순을 흐리게 하거나 잘못된 접근법을 교육하는 매체 컨텐츠가 될 수 있다. 이는 정도에 따라 사고의 편협과 현실의 왜곡을 낳을 염려를 가지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TV안의 동화로만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도 보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하니리포터에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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