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깃발을 내려야 합니다

더 이상 범대위는 촛불시위를 ‘반미’의 시위로 주도하지 말아야

등록 2003.01.01 03:16수정 2003.01.0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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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깃발, 깃발아래 모인 사람들. 집회 때마다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다. 언제부터 각 대학과 단체마다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오는 풍경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다만 87년 6월 항쟁 뒤부터 모든 집회마다 깃발이 휘날리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하다고 느꼈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깃발아래 서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깃발이 보이지 않으면 집회에 참여할 마음조차 내지 못했다. 그만큼 깃발은 중요했다. 깃발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던 ‘운동권 집회 문화’의 핵심 아이콘이었다.

사회에 진출한 뒤 우리는 더 이상 깃발아래 설 수 없었다. 새 깃발을 찾지 못한 우리는 점점 일상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우리세대는 광장에서 만들었던 투쟁의 기쁨은 잊고 오히려 광장 공포증에 빠져갔다.

일상의 유혹에 빠져 광장을 두려워하던 우리에게 미선이와 효순이의 한을 풀고자 시작된 ‘촛불시위’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깃발없이도 집회에 참여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주었다.

깃발과 쇠파이프와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든 우리는 세계도 놀란 새로운 광장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갔다. 깃발이 없어도, 집회를 주도하는 단체가 없어도 한국인들의 이성적인 분노와 변화의 욕구를 담은 정치적 구호를 정확히 외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 가던 광장의 정치문화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촛불이 들렸던 손에 어느 틈인가 깃발이 다시 들려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집회를 주도하던 자리엔 ‘범대위’라는 단체가 떡하니 자리 잡고 말았다. 촛불시위는 점점 시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먼 ‘운동권’만의 집회가 되어갔다.

2002년 12월 31일 종로 1가에서 열린 촛불시위는 전형적인 운동권 집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자에게 옛 향수를 느끼게 해줬지만 촛불바다로 뛰어들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대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단말마의 외침이 튀어 나왔다. “이게 아닌데”, 이 외침은 31일 촛불시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외침이기도 했다.


<오마이뉴스>에 ‘참나’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오늘 퇴근 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앰프소리에 뭔가 흥분되기도 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예상하는 운동권 집회가 연출되고 있는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고 밝히면서 “어디도 추모하러 나온 시민들은 보이지 않고 깃발아래 모인 조직원(?)들만 보였다. 모일 깃발이 없는 사람들은 주변 도로에 옹기종기 서 있거나 그냥 바라보고만 있고 아니면 돌아 나왔다”면서 “깃발없는 사람은 촛불시위도 참여하지 말라는 건가”라고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위대’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도 “여전히 깃발들은 높이 들려 있었습니다. 손에 들린 촛불하나가 더 중요하지 자기 소속을 굳이 깃발로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까?”라며 운동권 집회 문화인 깃발에 심한 반감을 보였다.


더구나 네티즌들과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지금‘반미’가 아니라 ‘반전, 평화’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대위는 이런 네티즌과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여론을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한 듯 하다. 31일 촛불시위에서 ‘범대위’는 여론과 동떨어진 ‘반미’로 일관했다. 일방적으로 외친 ‘반미’에 네티즌과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

갈현동에 사는 최윤순씨(주부,32)는 “지금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촛불시위에 나가 반전, 평화 구호를 외치면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써 전쟁에 반대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데 반전, 평화 구호는 한번도 외치지 않더군요. 집에 돌아오면서도 뿌듯한 기분보다는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혀 있는 것 같다”며 범대위의 구태의연한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소시민’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내 생각에는 순수성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평화와 인권이었으면 한다. 소파개정이나 민족자주는 반전과 평화에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근본적이고 확고한 메시지는 세계평화와 한반도 전쟁불가가 아닐까?”라며 반미보다는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일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보여준 평화의 의지는 CNN을 타고 미 전역에 방송되었다. 미국의 전쟁광들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저력에 다시 한번 당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아직까지 한국의 촛불시위를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가 아닌 단순한 ‘반미’의 메시지로 인식한다. 특히 미국이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줬다고 믿는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반미’ 메시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억장이 무너진다.

메시지는 보내는 사람의 의도가 아닌 받는 사람의 의도대로 읽힌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 촛불시위라는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도 그들이 ‘반미’의 메시지로 읽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

가뜩이나 미국인들은 우리의 촛불시위를 ‘반미’의 메시지로 읽는다. 그런데 불난데 기름 붇는 격으로 노골적인 반미구호를 외치다니, 제정신들이 아니다. 어찌 보면 ‘범대위’가 외치는 노골적인 반미 구호도 깃발과 마찬가지인 운동권 집회 문화의 상징일 수 있다.

이제는 깃발을 내려야 한다. 더불어 운동권 집회 문화의 그 모든 상징을 버려야 한다. 운동권 집회 문화의 상징들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런 구시대의 유물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반도에 감도는 전쟁의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미국 시민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미국 시민사회가 감정적으로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는 노골적인 반미 구호는 자제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인들과 미국의 시민사회를 포용하여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게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점화했던 시민들의 건강한 의식을 믿어야 한다. 87년 6월 항쟁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6월 항쟁 기간 내내 거리를 메웠던 시민들의 손에 깃발이 들려 있었던가? 없었다. 6월 항쟁의 주역들의 손에는 깃발이 없었다. 깃발을 들지 않았다는 것은 운동권만의 싸움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온 국민의 열망이 모아져 호헌철페와 직선제 쟁취를 이뤄냈다.

촛불시위가 불평등한 소파개정과 반전, 평화의 메시지가 되려면 깃발을 내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그 어떤 단체도 깃발을 서랍장 속에 보관하고 ‘촛불’만 들고 오길 바란다. 그래야만 촛불시위가 온 국민이 참여하고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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