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아래 모인 시골학교 동창들

23년만에 만남,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만난 첫 송년회

등록 2003.01.01 19:52수정 2003.01.0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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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겨울 우리는 서글픈 졸업가를 부르며 헤어졌습니다. 우리 동창들은 시골학교라서 겨우 100여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어느마을 누구인지 다 기억해냅니다. 학급이라고 해야 겨우 두개의 학급이었죠. 저학년때는 남녀 혼합반이었지만 고학년때는 남여반으로 나뉘어 사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짜내도 그 시절 남녀 동창들끼리 같은 마을이 아니라면 말을 건네본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은 순수했습니다. 친구들이 누구 누구는 좋아한다고 짝짓기를 해서 소문을 내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창피해서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고 피해다니던 기억만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졸업생중에 3분2는 같은 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나머지는 다른 중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남자 동창들은 성장하면서 가끔 만나곤 했습니다. 특히 징병검사를 할때는 오랜만에 만나서 소주 한잔 나누고 헤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 동창들은 졸업후 대부분 헤어졌고 가난한 시골살림에 중학교 마저 진학하지 못한 동창들은 서울로, 부산으로 그렇게 취업전선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의 한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민주화, 산업화, 정보화로 압축되는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각자 치열하게 삶의 짐을 이겨내야 했습니다.졸업 당시 시골에서 살던 동창들은 절반 이상이 도시로 떠나야 했고 우리 부모들은 도시의 서민층으로 전락하여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헌신한 분들입니다.그 부모마저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다시 고향 언덕으로 돌아와 누워 계십니다.

23년만의 만남. 지난 12월 28일 우리들은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만났습니다. 서울은 어린 시절 우리에겐 동경의 대상이었고 성공이란 목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로 올라간 동창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직 아닙니다.그러나 많은 동창들이 서울, 또는 주변 도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들을 한자리로 모이게 해준 것은 바로 인터넷이란 고도의 문명이었습니다.모 동창회 사이트에 우리는 일찌기 동창들의 모임을 만들어 놓고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텍스트(글)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안주하기에는 지나간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동창들을 수소문하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하다가 지역별로 동창들 모임을 가져 드디어 첫 동창들의 송년회를 서울에서 갖게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자란 시골은 전라도 고흥반도의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동창들은 조상대대로 땅과 바다를 일구며 살아온 농사꾼, 어부들의 자식이었습니다.몇 명은 우리 고향이 간척지사업으로 대부분 농토로 변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벌인 새마을 사업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이주한 부모를 따라오기도 했습니다.그래도 동창이란 그 이름 하나로 반갑게 만날수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우리 세대가 이 사회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올라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너무 편하면, 아니 너무 빈부격차가 나게 되면 함께 어울리는데 괴리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때가 가장 어울리기 좋은 시간인지 모릅니다. 아직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기에 좀 더 반갑게, 편하게 만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정도 꾸리고 앞서나간 동창들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자가용도 굴리지만 아직 그것을 자랑삼아 얘기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의 오염된 때를 덜 묻혔습니다.


이번에 우리를 더 결속하게 만들고 송년회를 가질 수 있도록 공(?)을 세운 이는 안타깝게도 작년 가을 스스로 세상을 등진 동창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젊은 나이에 먼저간 동창들이 벌써 3명 정도 됩니다.고교시절 불치병으로 간 동창도 있고 몇년 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암으로 먼저 간 동창도 있습니다. 작년 가을 남편과의 불화로 스스로 목숨을 끓은 동창의 소식은 동창회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알려졌고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지역 동창회 모임에도 참석해서 밝게 웃으며 헤어졌던 동창의 소식은 그냥 가슴 아파하며 지내기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건이 우리 스스로 동창회 송년회란 모임으로 불려드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을 비롯, 전국에서 30명이 넘는 동창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릴적 너무 순수해서 말 한번 건네본 적도 없는 남녀동창들이 수두룩하고 너무 모습이 변해서 처음엔 누구인지 몰라본 동창들도 있었습니다. 시간은 우리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수했던, 꿈 많은 어린 동창들을 어느덧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유명한 탤런트는 하나도 없지만 각자 사회에서 가정에서 상처도 이겨내고 시련도 이겨내면서 떳떳한 386세대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 입니다. 초등학교 동창회 나가서 불륜으로 가정파탄이 생겼다는 뉴스는 우리 동창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아마 대부분 도시학교를 졸업한 동창들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우리 동창들은 씨족문화가 형성되어 만들어진 시골마을이라서 서로 친,인척 관계로 맺어져 있고 성장해서도 결혼과 함께 서로의 가정을 허물없이 오고가는 정도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도 아쉬움을 뒤로 한채 집에 늦지 않도록 택시를 잡아 보내주는 아직은 정말 때묻지 않은 동창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삶에 찌들어 지내기도 하고 바쁘게 살고 있지만 우리들은 1년에 한두번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지는 이때에 어린 추억을 간직한 동창들끼리 만나 생존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들의 만남은 아직 순수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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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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