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덩굴 얼음꽃임소혁
10여 년 전, 어느 해 졸업식 날이었다. 한 어머니가 꽃다발을 들고 내 자리로 찾아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2학년 때 선생님 담임 반이었던 김현실 엄마예요.”
“아, 네. 따님 졸업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으로 걔가 고등학교를 잘 마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따님이 아주 성실했습니다.”
어머니는 굳이 꽃다발을 내게 안겼다.
“졸업식이 끝났기에 말씀드립니다만 걔가 2학년 때 선생님의 칭찬 말씀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진작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 전하려다가 오늘에야 전합니다.”
“네?”
“왜 2학년 때 깨진 유리창의 창틀을 메운 아이가 …….”
“아! 네, 바로 현실이었군요. 저는 지금까지 그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해 나는 2학년 문과반 담임을 했다. 학생들이 문과로 많이 몰린 탓에 학급 인원이 무려 70명이나 되었다. 워낙 많은 학생이라 교실도 비좁았고, 학생 면담을 해도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도 그해는 별로 힘들지 않게 보냈다.
우리 학급 교실은 1층 운동장 옆이었는데, 이따금 날아온 공으로 유리창이 깨지곤 했다. 그때마다 서무실에 보수 신청은 하지만 목공아저씨는 미뤄뒀다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몰아서 끼워주었다.
그해 11월 하순, 초저녁에 갑자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저녁 9시뉴스에서 ‘내일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때 문득 그날 교실 창문에 유리가 깨진 게 생각났다.
그 무렵은 조개탄으로 난방할 때라서 그때까지 교실에는 미처 난로조차 놓지 않았다. 첫 추위에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라고 했는데 내일 학생들이 등교하면 얼마나 떨까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집에서 창호지와 풀을 챙겨 가방에 넣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했다. 그런데, 교실 문을 열자 깨진 유리창틀은 이미 예쁜 종이로 말끔히 발라서 메워져 있었다. 누가 새벽같이 학교에 와서 이런 착한 일을 했을까? 교실을 둘러보니 대여섯 학생들이 자습하고 있었다.
“애들아, 누가 창문을 이렇게 예쁘게 발랐니?”
“……”
교실의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웃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조회 시간에 창문을 바른 사람을 물어도 손을 드는 학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