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미지의 수련박도
우정의 힘은 위대하다. 한 친구를 죽음에로 이끌 수도, 죽음에서 살릴 수도 있다. 고뇌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낼 수도 있다. 여자 친구의 한 마디 격려, 남자 친구의 한 마디 조언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 장애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한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으로서 한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목발을 의지해서 다녔다.
그에게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책가방을 들어주고 불편함을 보살펴주는 남녀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 장애 학생을 대할 때마다 혹시 자신의 지체 장애를 비관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는 염려와는 달리 오히려 다른 학생 못지 않게 표정이 무척 밝았다.
어느날 특활 시간에 자기가 쓴 작품을 발표할 때 그는 ‘우정’ 이란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의 제재는 자기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보살펴 주었던 한 남자 친구 이야기였다.
그 남학생은 신부님이 되기 위해 그때 이미 우리 학교를 떠났다. 그는 시골에서 서울로 온지 얼마 안 된 경상도 사투리 투성이의 순박한 학생으로 우리 학교의 많은 여학생들을 제쳐 두고 장애 여학생의 향도등이 되고 정신적인 반려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장애 여학생이 그처럼 밝게 생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 남자 친구의 우정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들에게 사랑이란 낱말을 쓰고 싶지 않다. 사랑이란 낱말은 그들의 우정에 어쩌면 불결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은 신부님이 되고자 신부 예비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예비 신부가 남긴 훈훈한 우정은 장애 여학생의 가슴 속 깊이 고이고이 남아 있었다.
아마 장애 여학생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교 시절 교실에서 맺었던 그 우정을 보석처럼 지니면서 살아가리라.
그들이 모두 떠난지 벌써 20여년, 나는 그들의 뒷이야기를 여태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기억해도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우정화(友情畵)로 내 살아 생전에 그들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