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봉사가 사회복지라고요?

사회복지사들의 연대를 희망하며

등록 2003.01.02 16:03수정 2003.01.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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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봉사가 사회복지 아닌가요?

예전에 TV프로그램 중에 ‘칭찬합시다’라는 것이 있었다. 묵묵히 자기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 칭찬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사회복지 시설에 종사하는 나는 이 프로그램을 몹시도 싫어했다. 아내가 좋아해서 함께 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적도 있지만 채널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져 있을 때에는 여지없이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현장 중에 사회복지분야가 많았고 묵묵히 희생으로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희생을 강요할 때에는 감동보다는 짜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그분들만큼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있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복지의 본질을 희생과 봉사로 오도하기 때문이었다. 자선과 시혜가 복지가 아닌 만큼 희생과 봉사도 사회복지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은 언제나 이러한 복지의 본질은 외면한 채 최루성 어린 장면만을 잡아내어 강조한다.

이러한 온정프로그램은 메마른 사회의 분위기를 정화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기능만큼 심각한 역기능 역시 가지고 있으며 어쩌면 이들이 지니는 역기능은 생각보다 심각할지도 모른다.

희생과 봉사는 사회복지의 동기, 그것도 전근대적인 동기일 뿐이지 서비스의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의 질은 사회복지의 원칙과 복지대상자의 욕구충족도로 가늠하는 것이지 서비스 제공자의 동기로 가늠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과 봉사라는 동기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사회복지서비스의 원칙을 어기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클라이언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물론 방송에는 그러한 장면이 나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한 역기능이 있다. 사회복지는 자선과 시혜이며 사회복지업무는 희생과 봉사라는 일반인의 인식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종사자 50%가 이직 고려하는 직종


사회복지사의 50%가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수치다. 절반 가량이 이직을 고려하며 어쩔 수 없이 종사하는 직종이 과연 얼마나 될까.

2001년도까지 사회복지사의 자격증 교부자는 대략 5만명 정도라고 한다. 2002년도까지 약 6만명의 사회복지사가 배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니까 대략 3만명의 사회복지사가 이직을 생각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들의 이직사유를 보면 임금과 근무조건이 38%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직장의 비전부재가 2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희생과 봉사로 근무해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웬 근로조건이냐고? 바로 이러한 인식 때문에 사회복지사들은 곧바로 이직을 고려하게 된다.

근무조건개선을 위한 권리주장마저 힘든 사회와 직장의 분위기가 더욱 이직을 부추기는 것이다. 사업주와 국가를 상대로 처우개선을 요구하기조차 어려운 사회분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복지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있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성직자’이기 때문일까.

물론 사회복지사들이 이직을 고려하는 것이 근무조건때문만은 아니다. 단일요인으로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비전의 부재이고 그밖에도 비합리적인 직장관행, 비효율적인 조직구조 등도 이직요인으로 높은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부문 자체의 전근대성이 이들의 이직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야말로 우리나라 사회가 지니고 있는 복지에 대한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다. 사회복지가 자선과 시혜이므로 사회복지종사자들 자선과 시혜를 실천하는 배고픈 천사여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 아니겠는가.

누가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것인가

복지의 주체가 바로 복지의 대상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열악한 대우로 인해 사회복지사들이 바로 클라이언트화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의 복지주체이자 대상인 사람들의 희망을 일굴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복지사 스스로가 일어서지 않는다면 아무도 일으킬 수가 없다. 사회복지사의 권익옹호를 위해 첫 번째로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 대우라고 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으면서(46.5%) 사회복지사의 조직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15.6%에 불과하다는 조사자료는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직도 ‘배고픈 천사’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투쟁으로 얻어졌듯이 복지권도 가만히 있으면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진실을 말이다.

사회복지부문의 전근대성을 일소해야 하는 주체는 사회복지의 주체인 사회복지사들이다. 사회복지사들에게 열악한 대우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와 사회적 인식을 타파해야 하는 주체도 사회복지사들이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노동기본권을 앗아갈 뿐 아니라 노동의 보람까지 앗아가는 현장의 전근대성을 바꿀 수 있는 주체 역시 사회복지사들인 것이다.

OECD가입국가 중 복지예산비율이 최하위인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모른다. 열악한 복지인프라 속에서 복지재벌, 혹은 복지마피아라 불릴만한 단체가 난립하는 한편 50년대 마인드를 가진 구멍가게복지시설이 운영되는 곳이 이 나라라는 것을 방송은 보여주지 않는다. 더구나 그 양쪽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입사했던 사회복지사들이 고사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절대로 알 수 없다.

누가 이 사실을 담론의 장으로 가지고 나올 것인가. 외국이론을 보따리장사하는데 급급한 복지학과 교수들이? 복지부동을 복지의 본질로 생각하는 복지관료들이? 시청률 올리기 급급한 방송매체가? 사회복지사가 아니면 누구도 이 현실을 담론의 장으로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이직을 고려하기보다는 투쟁을 고려할 때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이 어깨에 짊어진 희망에는 복지대상자의 꿈도 함께 놓여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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