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사람들

파리에서 런던까지 (4)

등록 2003.01.03 21:25수정 2003.01.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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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를 안내한 이탈리아 길잡이 ⓒ 박도

이탈리아인들에게 길을 물으면 10분은 족히 설명해 준다고 할 만큼 그들은 상냥한 민족성을 지녔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산다.

그들은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나름대로 살면서, 맛있는 요리를 즐기고 즐겁게 노래하면서 낙천적으로 산다. 짧은 여행기간 중 많지 않은 이탈리아인을 대했건만 한결같이 친절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폼페이 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한 레스토랑에 들렀을 때였다. 눈매가 서글서글한 30대의 발렌티노라는 웨이터는 연신 싱글벙글 접시를 날랐다. 그는 30명 남짓한 손님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때로는 ‘산타루치아’를 흥얼거리면서 잔걸음으로 음식을 날랐다.

그의 행동은 마치 코미디언처럼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손님들의 자질구레한 주문에도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들어주었다.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그는 환호를 하면서 응해 주었다.

로마를 떠나기 전날 밤, 온종일 빡빡한 여정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그네의 고독일까? 센티멘털리즘일까? 호텔 방 커튼을 열어제치자 달빛이 좋았다. 로마의 달밤이다. 서울의 달빛과 거지반 다름이 없었다. 한 잔의 술이 생각나서 로비에 있는 바(Bar)로 내려갔다.

밤이 꽤 늦은 시간인데도 바에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다. 세계 각국의 젊은 남녀들이 국경을 초월, 한데 어울려 칸초네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중국인, 일본인, 아랍인, 유럽인, 미국인……. 젊은 남녀들이 피부색에 구애됨이 없이 혼연 일치가 되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바의 웨이터 녀석도 그들 분위기에 휩싸여 본업보다 놀이에 더 정신을 팔았다. 그는 나폴리 민요를 부르면서 사뿐사뿐 춤을 추며 술잔을 날랐고, 계산을 치르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웨이터 녀석은 내게로 다가와 뭐라고 제비처럼 잔뜩 조잘거렸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내 손을 끌어 춤의 광장으로 이끌었다.

나는 굳이 사양하고는 브랜디를 청해 마시면서 젊음의 물결을 음미했다. 늙은 악사는 신바람이 나서 피아노 건반을 꽝꽝 두들기며 어깨춤을 추면서 열창했다. 자정이 되어 그들 무리가 뿔뿔이 흩어지자 나만 혼자 남았다.

늙은 악사는 텅 빈 무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멋에 취해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며 혼자서 열창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분위기를 혼자 즐기기가 너무 아까워 객실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동석했다. 나는 웨이터 편에 위스키 한 잔을 악사에게 보낸 후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곡을 들려 드릴까요?”
“오 솔레미오”

늙은 악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스스로 도취된 채 열창했다. 그는 땀에 흠뻑 젖었다. 그는 계속 내가 청한 ‘문 라이트’ ‘물망초’를 연주했다.

악사의 이름은 이그나지오(Ignazio), 올해 예순 다섯이라는데, 그는 늦은 밤 단 한 쌍의 손님을 위해 즐겁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감동해서 지폐 한 장을 피아노 위에 슬그머니 놓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민족,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도 양편 기사는 씩 웃고는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는 국민성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내일 아침 끼니가 없어도 오늘 축구장에 입장한다고 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이탈리아 대표 팀이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브라질에 3 : 2로 패하자 온 나라가 고요한 침묵에 싸이고 눈이 붓도록 밤새 울었다는 축구라면 열광적인 나라다. 지난해 월드컵에서는 우리나라에 지고는 추태를 보였지만…….

1970년대에는 재정 적자, 대외 채무로 허덕이던 나라가 1980년대에 들어서자 이탈리아 경제의 르네상스를 이뤄 이제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제 5위의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의 그 원동력이 밝고 쾌활한 그들 국민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밝고 친절한 국민들의 장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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