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8

위기의 연속 (3)

등록 2003.01.04 11:05수정 2003.01.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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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린에게는 정확히 십팔 명의 호위가 있었다. 그들은 호천대(護天隊)라 불렸다. 장차 중원의 하늘이 될 그를 호위한다 하여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들 모두는 철기린이 친히 선발하였다. 그리고 무공 역시 직접 전수하였다.

그들은 각기 아홉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철기린을 호위하는데 늘 팔괘(八卦)의 진세를 유지한다. 따라서 두 명의 우두머리가 있는 데 하나는 무영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흔(無痕)이었다.


심복 중의 심복인 무영과 무흔은 임무를 맡을 때면 철기린의 주위에서 십 장 이내에 머물렀다.

모든 호천대원들에게는 각기 열 명 씩의 수하들이 있다. 그들은 철기린의 곁을 떠날 수 없는 호천대원들의 지시를 받아 대소사를 해결하는 임무가 있다.

"무영!"

"하명만 하시옵소서!"

"지금 즉시 사론에게 경거망동을 말도록 명을 전해라."


"존명!"

무영의 신형은 마치 안개처럼 허공 중에서 스르르 꺼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본 철기린의 입가에는 조소가 베어 있었다.


"가소로운 놈! 감히 누구 앞에서… 네놈이 유대문의 콩고물을 먹고 있다는 것을 모를 줄 알고…? 무흔!"

"존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철기린의 앞에는 무영과 비슷한 의복을 걸친 인영 하나가 부복하고 있었다.

"놈을 따라가라. 놈에게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 너는 오늘부터 놈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존명!"

무흔의 신형 역시 무영과 마찬가지로 허공 중에서 꺼졌다. 심복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무림천자성의 내부에는 뭔지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 * *

"크흐흐흑! 아버지! 백부님! 장주님!"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봉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소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겨우 십이 세 정도 된 소년의 뒤에는 온통 백색뿐인 망아지 한 마리가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장일정은 태극마술대회의 마지막에 치러질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 이회옥은 애써 감추려 하였지만 장일정은 비룡의 등에 얹혀진 안장이 다른 것에 비하여 월등히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호도 빠르지만 확실히 비룡보다 빠를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던 그는 자신의 애마인 비호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늙은 목부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흥안령산맥은 대부분이 광활한 초지로 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태극목장에서 북쪽으로 말을 타고 대략 사흘 정도 가면 사람도 파고들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계곡이 있다.

태극목장에서는 그곳을 사왕곡(蛇王谷)이라 불렀다.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독사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늙은 목부가 말하길 사왕곡의 수많은 독사들 가운데에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붉은 색 줄이 있으며, 머리에는 닭의 벼슬과 같은 것이 달려 있는 화관홍선사(花冠紅線蛇)가 있다 하였다.

이것은 물리면 삼 보를 채 걷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지독한 맹독을 지닌 독사 중의 독사라 하였다. 만일 이것을 잡아 비호에게 고아 먹이면 지금보다 월등히 빠를 것이라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장일정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왕곡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사왕곡에 당도하기는 하였으나 화관홍선사를 잡기는커녕 구경도 하기 전에 이름 모를 독사에게 물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때 그곳을 지나던 심마니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만일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한 구의 시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늙은 심마니는 혼수상태에 빠진 장일정을 해독될 때까지 보살펴 주었다. 덕분에 보름만에 쾌차할 수 있었다.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장일정은 구명지은을 베푼 심마니와 그의 손녀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한 후 태극목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태극마술대회가 끝났을 것이라 판단한 그는 비룡을 타고서 의기양양할 이회옥을 떠올리고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장일정은 자신보다 겨우 열흘 먼저 태어난 그를 형이라 부르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반드시 자신이 승리를 하여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졌으니 이제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몹시 아쉬웠던 것이다.

말고삐를 쥔 채 터덜터덜 걸어서 태극목장이 훤히 보이는 곳에 당도한 장일정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활기찬 분위기였던 목장이 쥐죽은듯한 적막 속에 잠겨 있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목장 초입에 당도한 그는 괴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장의 입구는 목장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며 하루에 한번씩은 청소를 하라고 하였기에 지겹게 빗자루 질을 하던 곳이다.

그런 그곳에 웬 뼈들이 부서진 채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정도면 말 울음소리도 들릴 법한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자 황급히 목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잠시 후 목장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봉분을 발견한 것이다.

"흐흑! 소자, 홀로 어찌 살라고…. 흐흑! 아버님! 아버님!"

장일정은 봉분에 엎드려 한없이 흐느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천애고아가 되어 버렸으니 무엇을 먼저, 어떻게 하여야 할지 막막하여 흐느낀 것이다.

한참을 흐느끼던 그는 대체 어찌된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목비의 필체는 분명 이회옥의 필체였다. 따라서 그만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제외한 목장의 모든 사람들은 죽은 듯하였다.

목장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엄청난 뼈다귀들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늑대 떼가 나타났던 모양이었다. 대흥안령산맥 어딘가에 혈랑(血狼)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다는 소리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포악하기로 이름난 혈랑 천여 마리가 나타나자 겁에 질린 말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사람들은 미처 도주하지 못하여 잡아먹힌 듯하였다. 이회옥이 봉분을 만든 것은 자신처럼 비룡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나갔다가 요행히 화를 면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흐흑! 아버님, 백부님! 이렇게 가시다니… 흐흑!"

장일정의 흐느낌은 끝이 없었다.


"얘야! 이제야 정신이 드느냐?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으으으응! 누, 누구? 아버지…? 허억! 누, 누구세요?"

오랜 혼절에서 깨어난 장일정은 낯선 노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부친의 봉분에 기대어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허허! 녀석, 몸은 좀 어떠냐?"

"할아버지! 여, 여긴…?"

"허허허! 여긴 안전하니 안심하거라. 그나저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숙부가 별세하신 모양이구나. 쯧쯧…!"

노인은 대흥안령산맥 너머로 시집간 손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태극목장을 지나던 중 우연히 봉분 사이에 혼절해 있는 장일정을 발견하였다. 세 개의 봉분 사이에 엎드린 채 혼절해 있었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 노인은 장일정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굶주릴 대로 굶주려 흉폭해진 늑대 떼의 공격에 의하여 태극목장의 모든 식솔들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대흥안령산맥 아래에서 보낸 노인은 굶주린 늑대 떼들에 의하여 여러 마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연신 혀를 찼다. 사람으로 태어나 미물의 먹이가 된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장일정을 옮겨 놓고 노인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뼈들을 한데 모아 놓고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마침 장일정이 깨어난 것이다.

"보아하니 이곳도 늑대들에게 당한 모양이구나. 이제 이곳은 안전한 곳이 못 되니 노부를 따라가지 않으련?"

"……!"

장일정은 아직도 부친과 친인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아무런 대꾸도 않고 있었다.

"쯧쯧! 불쌍한 녀석. 여긴 너 혼자 있을만한 곳이 못되니 노부를 따라오도록 해라. 쯧쯧! 자, 우선 이것을 먹어라."

노인이 건넨 것은 다 식은 연자탕이었다. 울다 지쳐 혼절하였다 함은 원기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에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것은 해롭다. 그렇기에 일부러 식혀놓은 것이었다.

연자탕을 본 장일정은 덥석 받아들고는 숨도 안 쉬고 입안으로 퍼 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듯 허기를 느끼던 차였던 것이다.

"허허! 녀석 그렇게 배가 고팠더냐? 천천히 먹거라. 그러다 체하겠다. 쯧쯧쯧! 녀석하고는… 천천히 먹으라니까."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은 노인은 등뒤에 꼽아 두었던 곰방대를 꺼내 물고는 화섭자(火攝子)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볼을 오물거리는가 싶더니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뿜어내었다.

덧붙이는 글 | [안내말씀]

앞 부분의 설정을 안 보시면 뒷 부분이 재미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앞부분을 못 보신 분은 귀찮으시겠지만 앞 부분부터 봐 주십시오.

참고로 "전사의 후예"는 당분간 매일 연재됩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제갈천 배상

덧붙이는 글 [안내말씀]

앞 부분의 설정을 안 보시면 뒷 부분이 재미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앞부분을 못 보신 분은 귀찮으시겠지만 앞 부분부터 봐 주십시오.

참고로 "전사의 후예"는 당분간 매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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