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의 대설, 제설 현장을 찾아

"노가대 중에 상 노가대 아니요" 대설주의보에 24시간 비상근무

등록 2003.01.06 12:53수정 2003.01.0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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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에 대설경보가 발효된 4일 저녁 7시. 광주시 남구청 건설과 소속 근로자 대기실은 여기저기 어수선한 분위기다.

"동림동에서 여기까지 2시간이나 걸렸네. 눈 좀 붙일까 했더니 애들은 벌써 전화왔는가 들랑달랑하지 자 봐야 불안하기만 하고."
이석현(동림동)씨는 오후 5시에 전화를 받았다.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한 길이었다.

"염화칼슘이 녹았다가 얼어버리면 그것이 더 문제란 말이시."
이웅(43·동림동)씨는 연신 퍼붓는 눈발이 마냥 걱정스런 표정이다. 벌써 눈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a 빙판길 제설작업에 필수적인 염화칼슘은 독성이 강해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빙판길 제설작업에 필수적인 염화칼슘은 독성이 강해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이국언

제설작업에 나가자면 옷부터 단단히 챙겨야 한다. 면 장갑에 고무장갑을 한 겹 더 끼고 작업복 청바지에 다시 비옷을 껴입는다. 염화칼슘(CaCl²) 때문이다. 장화를 신고 귀밑까지 둘러싸는 모자를 눌러 썼다.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소."
김인중(57·월산동)씨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에 이마까지 넓어 나이보다 더 돼 보이기까지 한다. 모래작업장에서는 벌써 몇 번째 전화가 빗발친다.

남구청 제설작업 구간은 주요 간선도로와 이면도로를 합쳐 26개 노선 16.5㎞ 왕복 33㎞이다. 제설작업에 동원되는 장비는 덤프차 8t 1대와 4.5t 2대. 8t차에는 염화칼슘 200포대에 모래 7t 정도, 4.5t에는 모래 4t에 염화칼슘 80포대를 싣는다.

작업은 차에 맞춰 20여명이 3개조로 나뉜다. 오늘같이 온종일 눈이 퍼붓기 시작하면 도로계뿐만 아니라 인근 하수계 직원들까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어제 저녁 8시에 한 차례 다녀오고 새벽 5시에 또 한 차례 다녀온 뒤다.
"예전에는 나가기도 전에 염화칼슘 싣다가 지쳐부요."
김씨는 "1포에 25㎏인 염화칼슘을 몇 백개씩 싣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콘베이어 벨트라서 훨씬 나아졌다는 것.

동절기에 취약한 지점은 정해져 있다. △국도 1호선 대촌고가∼나주 남평경계 △송암고가∼풍암지구 △광주대∼노대∼칠구터널 △백운고가∼원광대한방변원 △수박등∼MBC∼백운동 서광여중 △주월동 광복천 △기독교병원 인근 이면도로 △라인 효친아파트∼재석초교 등이다.


거리엔 퇴근길을 서두르느라 곳곳에서 정체를 빚고 있고 거리는 사람 발길조차 뜸하다. 택시 승강장엔 줄지어선 승객들만 보일 뿐 빈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집 짜장면 배달도 멈춰선 폭설.

4.5t 트럭 적재함에선 삽 놀림이 빨라진다. 달리는 차에 맞춰 모래를 살포하는 작업이라 옆을 돌아볼 새도 없다. 균형을 잡아보지만 차는 계속 방향을 틀어가며 속도를 붙이고 있다. 속도감만큼이나 뺨을 때리는 바람이 매섭다.

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유턴'한 제설차가 백운동 까치고개로 접어들자 서광여중 오르막길 한가운데 택시 한 대가 멈춰서 있다. 택시는 매연을 뿜어대며 안간힘을 쓰지만 방향을 못잡은 채 오히려 뒤로 밀리고 있다. 쌓인 눈으로 차선은 이미 온데간데 없다.

a 달리는 차 위에서 난간도 없이 일하는 모습이 위태 위태 하다.

달리는 차 위에서 난간도 없이 일하는 모습이 위태 위태 하다. ⓒ 이국언

한 사람이 염화칼슘 포대를 터 주면 나머지 두 사람은 모래를 섞어 부지런히 롤러에 밀어 넣고 있다. 계속 바닥을 보고 하는 일이라 숨이 가쁘고 땀이 베이기 시작한다.

기독교병원을 거쳐 중앙로 서현교회에서 방향을 돌린 트럭은 마지막 MBC 고개를 향하고 있다. 술집들도 오늘은 일찍 문을 닫았다. 무심히 주인만 창 밖을 넘겨다보고 있다. 제 속도를 못내고 있는 차들이 제설차에 이끌리듯 따라붙고 있다. 눈은 더 거세져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고 어깨에도 모자에도 수북히 눈이 쌓였다. 어느새 그 많던 모래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저녁 10시를 향하고 있는 시각. 돌아오는 길에는 저마다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땀도 땀이지만 숨이 차서 죽겠다. 막말로 노가대 중에 상 노가대 아니요."
이웅(43·동림동)씨는 "공업용 염화칼슘이 옷도 뚫어버리고 아스팔트도 녹이는 것"이라며 환경오염을 설명한다.
"이 일로 딸 둘 가르치고 마지막 아들만 남았그만."

"고생 좀 하제. 서울에서는 자는 것도 돈, 입는 것도 돈, 먹는 것도 돈, 다 돈 아니요."
나이만큼이나 모자에 함빡 눈을 인 이석현(57·동림동)씨는 막내아들 얘기를 꺼내 놓았다.

소한을 하루 앞둔 광주에는 5일 20.8㎝의 폭설이 내렸다. 1996년 12월 1일(적설 23.3㎝) 이후 6년만에 가장 많은 적설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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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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