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그 '인간화'의 담론

밀레의 한국 전시회에 붙여

등록 2003.01.07 17:50수정 2003.01.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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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문화가 산책'이란 프로를 통해, 밀레 특별전을 위해 프랑스로부터 공수된 그의 작품들을 조심스레 관리하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평소 그를 비롯하여 꾸르베와 도미에 등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의 회화에 대해 커다란 감동과 애착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밀레의 원작들이 혹여 손괴가 있을까 하여 마음을 조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 사회적으로는 시민혁명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 등으로 특징 짓는 19세기 프랑스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문예사조로는 발작이나 샹플뢰리 등이 주도한 리얼리즘(realism)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의 사실적 묘사와 부정적 현실의 비판으로 기법과 정신이 요약되는 리얼리즘은 인간의 삶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려는 지향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들을 개관해 보면, 사실주의의 모토라 할 '객관성의 추구'란 의도와는 달리, 당대의 상층문화를 이루고 있는 부르주아의 삶을 비판하는 반면 춥고 배고픈 이들에 대한 휴머니즘을 그 주제로 취하는 등 상황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한국 문학의 경우 요산 김정한의 문단 복귀 이후 1970년대 치열하게 전개된 '리얼리즘의 논쟁'에서도 발견된다 하겠다.

그런데 수많은 리얼리스트들 가운데, 두 발로 땅을 딛고 머리로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중간자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밀레만큼 커다란 감동을 주는 작품은 드물지 않을까 여겨진다. 미술비평가 이일이 비평하듯, '생명의 깊이와 삶의 진지함'이 그의 화폭 배면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4일 학교 강의 없어, 집에서 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부산 데파트>에서 전시되고 있는 '밀레'를 중심으로 한 19c 프랑스 농민 화가들의 농민 화가들의 작품 특별전을 보러가다. 모두 구상화일 뿐 아니라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해하기가 쉽고 또 감명이 한결 깊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내지 충고가 되리라 생각되다. 72.10.04. 오후 樂山(요산)"

나이 쉰의 밑자리를 깔도록 리얼리즘을 공부해와서 그런지 그것에 관한 문학 작품과 비평서 등 자료들 또한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밀레 특별전'의 팜플릿인데 요산 선생께서 리얼리즘에 정진하는 필자를 위해 주신 것인데, 이에는 위의 글이 메모란에 기록되어 있어 요산 뿐 아니라 밀레 등 리얼리스트들의 요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또 하나는 밀레의 '만종(晩鐘)'을 모작하여 낙화(烙畵)한 것인데, 20여년 전 야간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수학여행으로 속리산을 찾았을 때 그 녀석들이 선생님이랍시고 사다준 것인데, 삶의 경건함으로 사무치게 한다. 이처럼 리얼리즘은 인간화(humanification)를 의식화하는 이즘(ism)임에 틀림없다.


110여 편에 달하는 밀레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이삭 줍기'가 아닐까 한다. 이 그림은 미술수업을 위해 그의 고향인 노르망디의 쉘부르를 떠나 파리에서 무명화가로 부르조아들이 즐겨 찾는 나부상들을 그리다가 '자신의 작업이 회의와 환멸이다'란 깨달음으로 바르비죵의 퐁텐블로 숲으로 낙향한 후 그린 '양치는 소녀', '만종'과 함께 그의 최고 명작의 하나다.

이들은 한결같이 19c 프랑스 농민의 삶을 제재로 취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배경으로 하고 황혼녘의 이미지를 다소 어두운 색조로 표현함으로써 노동과 삶의 경건한 묵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 중 특히 '이삭 줍기'를 감상하노라면, 저무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저녁답의 들판 가난한 여인네들이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밀레가 추구하며 화폭에 담고자 한 인간화의 주제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보아즈가 룻에게 말했다. '아가, 내 말이 들리지? 다른 사람 밭에는 이삭을 주우러 갈 것 없다. 여기서 다른 데로 가지 말고 우리 집 아낙네들과 어울려 다녀라. 추수하고 있는 밭에서 한눈 팔지 말고 이 아낙네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이삭을 주워라.' …… 이리하여 룻은 보리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즈 집안의 아낙네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구약성서. 룻기 2: )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에 맞추어 '오늘 하루도 생각과 말과 행위를 평화로 이끌어 주신' 주님께 저녁 삼종 기도를 드리는 경건한 인간화를 주제로 한 앞서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삭 줍기' 역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

생산력이 미약했던 구약시대 더욱이 정 줄 땅도 없이 방랑하며 추위와 주림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이삭들은 대충 따야 했으며 낙수 또한 남겨 두어야 했다. 그것들은 곧 가난한 이웃의 생명을 이어가는 양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풍양속은 실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흔히 글을 읽을 때 '행간(行間)을 읽어라'고 하듯, 이 밀레의 '이삭 줍기'에서 형상화된 그 배면에 담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랑의 공동체 의식이란 함축적 주제를 발견한다면 분명 지혜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본 것이라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 한숨과 눈물로 비애의 삶을 살았던 1970년대 한국적 상황에 비견되는 19c 프랑스의 경우 부정의 정신으로 무장한 리얼리스트들은 거의가 진정한 세계의 실현을 위해 부정적 현실을 화두로 삼았던 반면, 밀레는 과거의 아름다운 전통을 작품에 담아 진정한 세계의 도래를 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밀레는 19c 프랑스의 문화혁명기의 와중에 전통을 재창조한 셈이다. 즉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사랑의 정신으로 인간화를 실현하고자 한 셈이다.

근대 이후 보편적 역사관이 된 헤겔 류의 역사발전론에 입각한다면 분명 역사는 발전한 것으로 여겨지되 질량의 면에서 오히려 허무와 절망을 느끼는 자들이 증가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19c 당대 무명화가였던 밀레가 20c에 들어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화가로 사랑을 받게 됨은 이 글에서 계속 사용된 '인간화'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 좋은 담론이 되리라 본다.

아무튼 1972년 이 땅에서 처음으로 밀레의 원작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밀레를 대할 수 있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울 것만 같다. 세속적 인간화가 아니라 승화되고 고양된 인간화로 나의 머리와 가슴, 아니 나의 영혼,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편집자 주)에 담아 보고 싶다.

"유감스럽다. 더 일을 할 수가 있었을 텐데!"(1875년 밀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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