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언론과의 갈등 고조
"다 써놓고 인수위 구색맞춰" 불만

[인수위 출범 열흘] 언론과 접촉 꺼리는 인수위원들...왜?

등록 2003.01.08 03:51수정 2003.01.08 19:56
0
원고료로 응원
a 7일 오전 열린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임채정위원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7일 오전 열린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임채정위원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8일로 출범 열흘을 맞았다. 인수위 출범 열흘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수위와 언론간의 갈등이 커졌다는 점이다.

7일 오후 임채정 인수위 위원장은 기자실에 내려와 "여러분께 반은 하소연을 하러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1월 3일부터 1월 7일 현재까지 4일간 각 신문에 19개의 인수위 관련 톱기사가 나왔다. 몇일간 각 신문마다 특종이 나오는데, 동시에 각 신문마다 낙종을 하고 있다. 톱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 기사 중에, 전부 봤더니, 인수위에서 내부 검토나 논의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여러분들이 쓰는 상황은 알겠는데, 이렇게 되면 너무 기사들이 앞서 나가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경제 관련 기사들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기사들이다. 그런 기사들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외국에서 한국 상황을 잘못 판단할 염려가 있다. 협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임 위원장은 "인수위의 책임도 있다"며 인수위의 의사결정 흐름도를 설명하면서 "적어도 위원장이 주재하는 간사회의에서 논의할 때 인수위의 의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이 설명한 인수위의 의사결정 흐름도는 분과위원회토론→간사회의→전체회의→당선자보고 등 네 단계다. 간사회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사항은 인수위 공식 논의 또는 결정 사항이 아니며 따라서 인수위가 결정하거나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ADTOP7@
위원장의 하소연…점점 언론과 접촉을 꺼리는 인수위원


임 위원장의 '하소연'은 두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위원장이 지금까지의 모든 인수위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검토한 바가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는 점과, 둘째는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인수위와 언론과의 불협화음은 인수위가 지난해 12월 30일 출범 이후부터 조금씩 누적돼 왔다. 첫 시작은 1월 2일이었다. 당일 '인수위가 대기업구조조정본부의 폐지를 유도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가자 경제2분과 간사인 김대환 교수가 기자실로 직접 내려와 "이렇게 제목을 달고 나온데 대해 당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 것은 그룹이 자율적으로 할 사항이라는 점을 핵심으로 말했는데, 마치 폐지를 유도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정말 제 의도와 상당히 다르다. 저는 학교에 있다가 온 사람이라서 기사와 관련된 프로세스(과정)를 잘 모르는데 이렇게 되면 기자와 터놓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김 교수는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본부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존폐여부는 별도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후 인수위 측은 거의 매일 언론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2일 '권력형비리조사처 신설 추진' 관련 보도, 6일 '모든 기업 상호출제 규제' 관련 보도와 '인수위에서 고위직 인사에 대한 자제 요청' 기사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급기야 6일 '인수위에서 인간복제 금지 입법 추진' 관련 보도가 나오자 오후 3시30분 정순균 대변인은 기자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수위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전부 인수위를 끌어들이는데, 참고로 아마 (현 정부의) 국무조정실 쪽에서 이것을 검토중인가 보다"라며 "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인수위가 관련할 사항이 아니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DTOP8@
출범이후 열흘 동안 언론보도에 놀란 인수위원들은 점점 입을 다물고 있다. 초기에 인수위 각 분과위원은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정해진 시간을 두고 분과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지난 3일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주재하는 일일보고회의 직후부터 인수위는 이런 개별 접촉 방식을 정례 브리핑 방식으로 바꿨다.

기자들은 계속 인수위원이나 간사 개별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접촉 자체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7일 "인수위원들이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도 거절한다,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해도 안 가겠단다"라고 말했다. 사회문화여성분과의 한 인수위원은 "일률적으로 '기자 접촉 금지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입단속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a 7일 오전 열린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제분과.외무통일분과 위원들이 노무현 당선자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7일 오전 열린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제분과.외무통일분과 위원들이 노무현 당선자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6일 첫 발간된 A4용지 네 쪽짜리 <인수위 브리핑>은 2면 '인수위 활동 확인보도 절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수위에 쏠린 높은 관심과 언론의 과열경쟁이 겹치면서 설익은 정책과제나 개인 의견을 지나치게 확대 또는 과장한 추측보도·단정보도가 이어져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인수위 브리핑>은 대선기간 민주당 선대위에서 발행된 <노무현 브리핑>과 유사한 형태로, "인수위 관련기사 중 사실과 다르거나 중요한 것이 간과되거나 때로는 악의적인 것은 없는지 스크린 해주고 이것을 인수위 브리핑 자료와 대조할 수 있게 해달라"는 노 당선자의 직접 지시에 의해 발행되는 일종의 '인수위 공식 소식지'다. 여기에 나타난 인수위의 기본 진단은 "설익은 정책과 개인 의견"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핵심적으로 "언론의 과열경쟁"이다.

실제로 7일 현재 인수위에 출입증을 신청한 기자는 총 296명.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이 매일 취재경쟁을 벌이는 대상인 인수위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분과 간사와 위원은 총 26명이며 대변인과 부대변인을 합쳐도 30명을 넘지 않는다. 인수위 기자실 좌석 숫자는 최대한 늘렸는데도 130석. 정 대변인은 농담조로 "내가 요즘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를 상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수위는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일부 언론의 경우, 특히 일부 신문은 단순 과열경쟁 차원이 아닌 '의도적인 흠집내기'라고까지 보고 있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현재 언론보도 상황에 대해 "인수위 흠집내기가 있다고 본다"며 "현재 인수위의 도덕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인데 여기에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있으면 크게 부각시키거나 다른 곳과 불필요한 싸움을 붙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위가 언론의 과열경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정위의 15개 언론사 과징금 취소 조치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이에 대해 "원칙을 저버린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서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철저한 경위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던 인수위는 이날 오후 정순균 대변인을 통해 "오후에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와서 임채정 위원장에게 경위 설명이 있었다, 내용은 여러분들에게 알릴 것이 없다, 경위 설명은 내부적으로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만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공정위에서 충분한 설명을 했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흘 뒤인 3일 정 대변인은 다시 "어제 간사단 회의에서 당선자께서 '인수위가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질책이 있었다"고만 말했다. 경위 설명의 내용은 무엇인지, 며칠사이에 기류가 뒤바뀌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인수위는 아직까지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

인수위에 대한 언론의 불협화음에 대해 인수위의 한 부대변인의 분석은 흥미롭다. 그는 '인수위 열흘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조적이 어투로 "무수한 언론보도를 남겼지"라고 말했다.

- 왜 이런가.
"우리사회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결정하거나 또는 논의만 하면 다 된다는."

- 그러면 지금까지 무수히 나왔던 인수위 관련 보도는 무엇인가.
"(언론사에서) 기획된 기사에 인수위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그는 "지금 언론사 데스크들이 다 98년 정권 교체기의 혼란한 인수위 시절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일선 기자들에게 옛날 생각을 하며 '야, 뭐해? 이렇게 써' 하면 현장에서는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약집이나 각종 부처에서 인수위에 보낸 보고서 등을 보고 '검토중이냐'고 물어보면, 위원들 대부분이 다 공약을 만들 때 참여했던 사람들이니 '검토할 예정이야'는 말만 나와도 신문 1면에 스트레이트로 '∼할 방침이다'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일간지의 한 기자는 "임채정 위원장의 '하소연'은 자칫하면 '건네주는 것만 쓰라'는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이전에 지금까지 인수위 관련 보도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

덧붙이는 글 ·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