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미사와 성가' 관견(管見)

문화의 수용과 그 주체적 변용을 위하여

등록 2003.01.09 11:53수정 2003.01.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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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으로 볼 때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2003년의 성탄시기가 되면 각 교회와 사회는 삶의 구원과 위안을 갈망하며 들뜨곤 한다. 하지만 그 성탄의 참 뜻을 가슴에 새기기는 쉽지가 않았다.

원형의 싸이클(archetypical cycle)에 입각하여 삶과 의식을 살핀다면, 만유의 생성과 소멸의 변전과정에서 또 하나의 생성의 시원을 상징하는 동짓날을 지나 예수는 태어났고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아로 그리고 삼위의 성자로 믿어 왔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분의 탄생을 하례하고 함께 기뻐하였다.


그분은 전지전능의 존재로 온전한 분이시며 구세주이시기에 미약한 인간들은 그 분을 흠숭하게 된다. 2002년 12월 24일 자정 무렵의 차디찬 때에 시골의 공소처럼 초라한 성당에 사랑이라 표상되는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미사에 참례하고자 신자들이 모여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심지어는 마당에 화톳불을 피워서 참례를 돕기도 하였다.

평상이면 빈자리가 군데 군데에 있어 바라보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하였는데…. 성탄은 이처럼 각인들에게 기쁘게만 여겨졌었나 보다. '알렐루야'와 '글로리아' 등의 성가가 울려퍼질 때는 실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란 하느님의 원의가 그대로 실현되는 듯 기뻤다. 그런데 성가대에 있는 자들은 미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겠지만 여타의 적지 않은 신자들은 라틴계나 영미계의 성가의 가사나 리듬에 익숙하지 않아 다소 소외되지 않았을까 우려되었다.

'사랑의 작은 공동체가 모두 예수님 탄생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 아들놈이 본당의 복사를 하면서부터 돈아(豚兒)가 사랑스러워 냉담을 끊고 또다시 신앙으로 복귀하면서 때가 닿으면 즐겨 피정(避靜)을 다녔다.

그 어느 날인가, 경북의 고령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인 '들꽃마을'을 찾아 묵상과 기도 그리고 봉사의 피정을 경험했는데, 그곳에 있는 작은 성당 앞의 자그마한 성모상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얀 석재로 조상한 그 모습은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로서의 성모님이 순돌이처럼 생긴 그의 아들 예수님을 안고 있는 소탈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이 때의 깨달음을 원효대사의 일화인 '해골바가지와 목마름의 물'에서의 깨달음에 비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오륜대의 '명상의 집'에서 열린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란 피정의 프로그램을 참가했다가 그 과정을 마치면서 작은 선물을 얻어 돌아왔다. 그것은 2호 크기 정도의 액자 이콘(icon)으로 재활용나무 빠넬 위에 한지를 붙여 수묵으로 그린 판화형의 모사본인데, 그 원작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53년경 비단에 그린 수묵채색화(64*76cm)로 화제는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면의 전체는 험한 삶의 과정을 상징하듯 까치 노을 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우편 상단에는 험한 파도에 의해 파선된 조각배를 붙들고 아우성하는 사람들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중앙 좌편에 물결에 휩쓸려 흐득이는 어떤 인물이 손을 내밀며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절대 절명의 절박함이 드러난다. 좌편의 물결 위에 원광을 띠고 우뚝 선 한 사나이가 그 인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태를 보면 상투를 하고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모습들이라,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읽을 수 있어 아마도 연대적 배경은 17-19c가 아닐까 여겨진다.


1970년대 가톨릭의 보편교회는 새로운 논의의 도전을 경험하였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학은 서구대륙에서 탄생하고 다른 지역은 그것을 수입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현실이었다. 이 때에 가난한 지역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들의 특수한 현실과 교회적 여건을 바탕으로 자생한 '예언자적 신학'이 있었으니 그것은 G.구띠에레즈 등이 정식화한 '해방의 신학'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우물에서 마신다'(G.구띠에레즈. <해방신학의 영성>에서-이성배,역. 분도출판사 1987)로 요약되는 해방신학의 영성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백성들이 인간의 존엄을 긍정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내세우려는 투쟁에서 체험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해방신학이 라틴 아메리카의 특수한 사회적 교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무엇보다도 고통 속에 신음하며 해방운동에 투신하는 외인과 그리스챤들의 행동정식에서 출발한 귀납과, 연역으로서의 복음을 판독하는 해방신학은 보편교회가 새로이 시도해 볼 신앙관이기도 하다고 여겨진다.(<신학전망> 제29호. 1975년 여름호)

흔히 문화의 흐름을 물의 흐름에 비하기도 한다. 그 메타포에 따르면 상이한 두 문화가 접촉한다면 그 흐름은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화도 그러하다. 즉 고급의 문화가 저급의 문화로 전파된다 하겠다. 그런데 각기의 문화는 반드시 그것의 생성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각기의 바탕으로서의 토양이 있기 마련이다.(필자 주: 영어로 '문화'를 'culture'라 하는데 그 어원은 '경작하다'란 뜻을 지닌 'cultivate'이므로 '토양'이란 어휘의 구사가 자연스럽다고 본다.)

문화라는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땅과 물과 태양, 또는 토질과 민족성과 전통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을 '토양'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 각처의 민족과 지역의 토양은 각기 개별성을 지니기에 각기의 문화 역시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두 문화의 전파와 수용의 양상을 살펴본다면, 마치 빛의 흐름처럼 매질의 차이로 인해 직진과 굴절 그리고 반사의 세 모습으로 요약된다.

외래의 문화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또 모방적인 성격을 보일 경우를 직진이라면, 주체의 문화와 토양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외래의 문화를 비판적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또 이를 그 토양에 조화롭게 변용하는 경우를 굴절이라 할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살펴보면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있는데, 그 머리를 영혼이나 정신이라 한다면 몸통은 육신이나 물질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한국사에서 정신 지향의 중국 문화와의 접촉으로부터 물질 중심의 서구 문화와의 접촉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아마도 17-19c일 것이다.

삶과 의식의 가치 중심이 존재의 머리에서 몸통으로 옮아가는 혁명적인 전환이라 할 터이다. 그러한 때에 우리의 민족과 역사는 그러한 변전의 시기에 대한 주체적이고도 비판적인 의식의 대응이 없이 외래를 접한 결과 오늘날과 같이 엄청난 모순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만시지감이 있긴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이 땅의 뜻있는 지성들은 이와 같은 이식과 모방의 문화란 모순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결과 적어도 이와 같은 인식과 검토의 필요성을 세인들에게 각인한 업적을 낳았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한국사의 전환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현대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제반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발전적으로 변용하는 것이다. 비록 과거에 중국의 귤이 이 땅에 오면 탱자가 되고 마는 부정적인 경험이 있긴 했지만 이제 이를 '전철부답(前轍不踏)'의 교훈 삼아.

성탄 미사의 기쁨은 아마도 부활 미사의 기쁨 못지 않다.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은 그리스도인이든 외인이든 간에 기쁨으로 다가든다. 그런데 성탄 미사에 참례한 공동체의 전체가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그 기쁨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가의 가사와 리듬이 서구의 라틴이나 영미의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삶과 의식이 배이어진 국악풍이라면 좋겠다. 하여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덧배기 춤이라도 추면서 기쁘고도 흥겹게 어깨춤이라도 추면서 그렇게 심령이 가난하고 물질이 궁핍한 우리들이 구원의 기쁨과 삶의 위안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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