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마'를 위한 변명

이 아름다운 반딧불들을 꺼트려서는 안된다!

등록 2003.01.10 08:33수정 2003.01.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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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12월 14일 광화문 4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시위 인파

지난해 12월 14일 광화문 4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시위 인파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에 '앙마'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젊은 네티즌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들이 벌어지고 있다. 광화문과 대한민국 전역, 그리고 해외에서까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손에 손 촛불을 들게 하였던, 순수하게만 보였던 그 청년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사실은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론 단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얼굴을 마주해본 적도 없는 그 젊은이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논란의 근거들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그 때 그가 올렸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그간의 과정을 간략히 회고해 보도록 하자.

"세계에 우리의 의지를 다시 보여줍시다.
우린 광화문을 걸을 자격이 있는 대한민국의 주인들입니다.
피디수첩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강경하게 싸운 그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
토요일. 일요일 6시. 우리 편안한 휴식을 반납합시다.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요.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주십시요.
누가 묻거든, 억울하게 죽은 우리 누이를 위로하러간다고 말씀해 주십시요.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읍시다.
6월의 그 기쁨 속에서 잊혀졌던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합시다.
경찰이 막을까요? 그래도 걷겠습니다. 차라리 맞겠습니다.

우리는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갚는 저급한 미국인들이 아닙니다.

한분만 나오셔도 좋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미선이, 효순이가 편안하게 쉴수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주, 다음주, 그다음주.
광화문을 우리의 촛불로 가득채웁시다.

평화로 미국의 폭력을 꺼버립시다.




여리게만 보이는 외모를 지닌 그 청년은, 어느날 갑자기 혼자라도 시작하겠다며 손에 손 촛불을 들자며 호소했던 이 글과 함께 '앙마'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그의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월드컵과 선거와 자질구레한 일상사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잊고 있었던 어떤 것들이 각자의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는 그 어떤 불순물도 없는 순도 높은 자극과 반응의 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의 절절한 호소에 대하여 우리는 주권의식과 정의감, 그리고 미선이 효순이에 대한 가슴아픔 등의 복잡한 감정으로 공명(共鳴)하였고, 마침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추운 겨울날씨를 이겨내며 거리로 거리로 나서서 그 호소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엔, 추모의 뜻과 SOFA개정에 대한 주장이 '앙마'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주장이자 호소가 되었던 것이다.

언론에서는 거대한 물결을 이룬 촛불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던 '앙마'는 실명과 더불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칭찬과 격려가 쇄도했고,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주장은 '범대위'라는 여중생추모시위를 이끌었던 조직의 주장과도 비슷한(?) 무게로 다루어질 만큼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혹자는 '소영웅주의'에 네티즌들의 대표를 자처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라 비난하고, 혹자는 자신의 글을 자기 스스로 기사화하여 <오마이뉴스>를 곤경에 처하게 한 비열한 인간이라 하고, 급기야는 거대정당인 한나라당의 대변인과 거대언론매체인 <동아일보>까지 나서서 한 개인에 불과한 그의 순수성을 헐뜯으며 촛불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자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에, 소위 '친미주의자', 혹은 심지어 '숭미주의자'를 자처하는 일부의 썩어빠진 지식인들과 수구 보수세력들의 촛불시위에 반대되는 주장들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촛불시위 = 반미광기 = 미군철수주장 = 한반도전쟁'이라는 등식으로 정치적 논리의 덫을 쳐놓고, 촛불시위의 의미와 순수성을 깎아내리며 SOFA개정 주장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인 바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예를 들라면 들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지금 '앙마'라는 네티즌을 둘러싼 상황의 이면에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내부의 이념과 가치관에 의한 치열한 전투와, 군중심리에 의해 빚어진, 상황인식에 대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아무런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앙마'라는 한 청년이, 수천만 대한민국 네티즌들을 실제로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에 대해 가하는 과도한 비난은, 마녀사냥식으로 한 개인을 매도하는데 너무도 익숙한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또한 말하고자 한다.

DJ정부가 집권하자 보수적인 언론매체들이 취했던 행동들을 한 번 떠올려보자. 그들은 스스로 개혁하는 길을 가기보다는, 용의주도하게 기회를 엿보다 치밀하게 정권에 반격을 가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DJ정부 초기의, 이른바 '옷로비사건'이란 게 바로 그러한 사례중의 하나로써, 지금 시점에서 회고해보면 그것이 무슨 정권차원의 비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증폭시켜서 DJ정권의 개혁노선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촛불시위가 그 타깃으로 설정된 느낌이 있으며, 다행히 노무현 당선자는 이를 현명하게 피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과거에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그가, '촛불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데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아직 취약한 정권기반을 고려한 신중한 행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가 자제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지속한다면, 그것은 그의 입지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과 SOFA의 평등한 개정에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의 전술에 휘말리거나,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분열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앙마'와 '범대위'에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앙마는 더 이상 촛불시위의 전면에 나서서는 안된다. 그동안의 역할로도 그대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공명심과 명예욕에 의해 그동안 촛불시위를 주장했었다는 비난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범대위'는 지금의 시위를 통해 '대중을 지도'하겠다는 착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더 이상 '선동'을 통해 좌지우지 될만큼 대중은 어리석지 않다. 87년 6월 항쟁 때에, '청와대 진격투쟁'을 주장하여 한 순간에 대열을 흩어지게 만들었던 정치적 맹동주의(혹은 모험주의)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여서 축제처럼 함께 하는 시위의 끝을, 굳이 미 대사관 포위나 경찰병력과의 충돌로 마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분히 확산되어 있는 '반미감정'을 억지로 '반미주의'로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재고해야 한다. 주한미군철수 주장도 마찬가지로, 만약 그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려면 국익의 차원에서 현실성 있는 대안(천문학적인 방위비 증가와 외국자본들의 이탈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대응논리 및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대한 정치적 고찰 등)과 설득력 있는 논리의 제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결론을 말하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피워올린 이 아름다운 촛불의 물결을 꺼트려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그것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이 나라의 주권과, 우리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열망, 이런 것들이 바로 그 촛불들을 피워 올린 심지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염원해서 만들어낸 국민통합의 시대적 가치와 요구를 짊어진 노무현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도, 돈도 조직도 없던 그에게 우리가 든든한 '빽'으로서 스스로 보여주며 암호처럼 지지를 보내는, 상징적인 '양심의 물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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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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