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에 대한 유쾌한 풍자

도스토예프스키 <악어>

등록 2003.01.11 13:04수정 2003.01.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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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예쁜 아내를 둔 이반은 모처럼 맞은 휴가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할 생각 있었다. 그래서 한껏 들떠있는데, 해외여행을 앞서 동물원에 새로 들어온 악어 구경을 먼저하자고 아내가 제안한다. 예전 같으면 가당치도 않다고 했을 그가 웬일인지 흔쾌히 그러자했고 친구인 '나'까지 불러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동물원에 입장하여 유럽에서 들어온 괴물 '악어'녀석을 귀찮게 하던 이반은 순식간에 악어에게 붙들려 삼키운 바 되는 참극을 맞이하고 만다. '나'와 이반의 아내는 그가 악어에게 먹히는 비참한 광경을 그저 하릴없이 지켜 보기만 해야했다.


이반의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당장 저 악어의 배를 갈라"라고 외쳐댔지만, 악어의 주인은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한다. 악어가 얼마짜리인줄 아느냐는 거다. 오히려 내 악어가 당신 남편을 삼키고 소화를 못시켜 죽을지도 모르니 그것을 배상할 준비나 하라며 성낸다.

친구가 악어에게 먹히는데도 그 희안한 광경에 굉장한 스릴을 느끼며 웃음까지 웃는 '나', 돈에 혈안에 되어 악어 한 마리로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독일인 악어 주인과 할망...이쯤되면 이 소설이 세태를 풍자한 소설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악어에 뱃속에 들어간 이반은 기묘하게도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그를 걱정하는 친구인 '나'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는 자신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떠벌이기 시작한다.

"...통나무처럼 누워서도 인류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해 보일거야. 우리나라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대부분 기사도 통나무처럼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야....아무도 없는 외진 구석이나 악어 뱃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고 있으면 그만이야. 그렇게 하면 즉시 인류를 위한 완벽한 천년시대를 구상해 낼 수있어..."

도스토예스프키는 자신은 손하나 까딱하지도 않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고 주문하며 명령까지 하는 무리들을 이런식으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그런자들은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깔려있다. 지식인입네 하며 잘난체 하는 이들, 각종 비평과 평론에 날밤새는 줄 모르는이들, 자신의 잘남에 스스로 도취되어 자기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지껄이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을 한없이 비웃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자 앞에서도 돈을, 동물 애호가가 되어 악어를,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이반의 아내) 오히려 걱정하는 세태는 여전히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시대보다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실로 악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개탄할만한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건 위기 상황에 직면한 당사자 이반 또한 정신나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마치자신이 유명 스타가된양 허황된 이상에 들떠있으니..


헛된 물욕에 지배 당하는 모든 인간 사회를 이처럼 풍자적이면서 재미있게 그려주는 소설이 있을까?

악어 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혜경.심성보 옮김,
열린책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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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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