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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종로구에 살고 있지만 우리 집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내가 문패를 달고 산 지 30년이 넘었지만 항상 대문을 열고 살았다.
5년 전, 집수리를 할 때는 숫제 대문도 달지 않았다. 퇴근 후 집 앞에 이르러 대문이 닫혀 있으면 괜스레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우리 집 대문이 닫히는 경우는 비바람이 몹시 사납게 몰아치는 날이거나 집안 식구들이 몽땅 외출할 경우뿐이다.
앞의 경우에는 비바람에 시달린 철제 대문의 소음이 한밤중의 잠을 설치게 하기 때문이요, 뒤의 경우에는 종종 이웃집 개들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실례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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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사람이 있는 한, 밤낮으로 대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몇 해 전부터는 초인종도 귀찮아서 숫제 떼어 버렸다. 때때로 한밤 중 순찰 돌던 방범대원에게 대문 좀 닫고 자라는 주의를 여러 차례 들었지만 그래도 열고 살자 이젠 그분들이 지쳤는지 별 말이 없다. 하긴 지금은 그런 대문도 없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원래 촌놈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문을 열고 살았다. 그 무렵 시골집에는 대문은커녕 담도 없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방문이 곧 대문인 집이 수두룩했다.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대문을 열고 살았다. 시골집 담은 참 낭만적이다.
숫제 담이 없는 집, 개나리, 탱자나무, 아카시아, 향나무, 노간주나무 등으로 울을 친 담, 잡목가지로 엮어 만든 담, 돌멩이를 모아 싼 돌담, 좀 산다는 집에는 흙돌담에 기와로 지붕을 만든 담이 고작이었다.
대문이 없는 집이 태반이었고, 있다 해도 사립문, 그것도 하루 온종일 열려 있고 닫혀 있어도 밖에서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는 허술한 삽짝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허술한 담과 대문 탓인지 그때는 이웃이 있었다. 아무 때나 마음 내키면 무시로 이웃집을 드나들었다. 한밤중에도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차려 이웃 어른께 음복케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요즘처럼 전화를 미리 걸거나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 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사회였다.
이웃집에 놀러 갈 때면 대문 앞이나 방문 앞에 이르러 헛기침 소리를 내는데, 그게 요즘의 초인종이었다.
그러면 주인은 옷을 주섬주섬, 때로는 내외가 화들짝 놀라고는 바지 저고리 치마를 급하게 입으면서‘어이 들어오게’가 답이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에 살면 이웃집의 제삿날, 생일날까지 서로 알면서 지냈고, 서로 간의 쌀뒤주 사정까지 환히 꿰뚫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사이로 인정과 사랑이 넘쳤다. 그래서 ‘이웃 사촌’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웃의 불행이 곧 내 불행이요, 이웃의 경사가 곧 내 경사였다. 초상이나 환갑, 혼인잔치는 곧 동네 전체의 일로 모두 일손을 놓고 몰려와서 함께 슬퍼해 주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마을 전체가 더불어 사는 선린협동의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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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대 도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느 해 겨울 동료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들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발인제에 문상을 갔었다. 영구차가 동네를 떠나는데도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대문을 열고 나와 구경하는 사람도 없었다. 차가운 날씨 탓이었을까?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기에 평소 문을 닫고 산 그 선생님의 이웃 관계가 폐쇄적이었기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현대 도시인의 비정에 오싹해졌다.
몇 해 전, 서울 어느 집에 세 들어 살던 한 노인이 죽은 채로 보름 동안 시신이 방치되어 있다가 나중에 송장 냄새가 진동하여 발견됐다는 보도를 보고 다시 한번 오늘 우리 사회의 비정에 오싹한 일이 있었다.
오늘의 우리들은 너도나도 대문을 꽁꽁 걸고 산다. 이런 풍조가 이제는 도시뿐 아니라 시골까지도 번져 가고 있다.
그것도 못미더워서 담에는 사금파리를 뾰족뾰족 박아놓기도 하고 철조망을 쳐서 흉물을 만들기도 하고, 쇠창살을 둘러친 담, 요즘에는 전자감응장치까지 설치됐고, 밤이면 개를 풀어놓고, 좀 산다는 집에서는 수위실까지 만들어 외부와 이중 삼중, 차단하고 또 차단한다. 거기다가 보안 경비업체에 가입하여 24시간 관리하고 있다.
휴대 전화가 널리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어느 일요일이었는데 입학원서의 기재 착오로 연락이 와서 갑작스레 해당 학급 담임선생님을 찾을 일이 생겼다.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주소를 들고 찾아 나섰다. 낯선 동네 골목길을 진땀을 흘리면서 간신히 찾았다.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급한 용무로 학교에서 왔습니다. ○○○선생님 댁이시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선생님댁 식구들은 방문을 죄다 잠근 채 외출했습니다.”
“어디 가셨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대문 좀 열어 주실 수 없습니까?”
“열 수 없는데요.”
“저,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외출하면서 아무도 대문을 열어주지 말랬어요.”
대답이 차갑다. 철대문을 사이에 둔 채 대화만 오갔다.
“아주 급한 용무라서 메모라도 남기려고 합니다. 댁은 누구세요?”
“어머! 이 아저씨 좀 봐. 뭘 꼬치꼬치 캐물으세요. 전 옆방에 세 들어 살아요, 메모를 남기려면 우체통에 넣고 가세요.”
나는 별 수 없이 대문을 받침 삼아 수첩을 찢어 몇 자 적어 우체통에 넣고 떠나 왔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못 미더워하는 세상. 현대인들이 대인 공포감, 불신감에 몸서리가 난다.
대체로 졸부일수록 고급 아파트촌일수록 문단속은 심하다. 이웃도 모른다. 굳이 대문이 필요 없었던 우리 사회가 그새 왜 이다지도 살벌할 만큼 사람을, 이웃을 두려워하는 도심 속의 고도와 같은 사회로 변모했을까?
나의 또 하나 습성은 뭘 잠그는 일에 익숙지 않다. 책상 서랍을 늘 채우지 않고 다니다가 보안감사 때 지적을 받고는 마지못해 채우고 다니지만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그냥 퇴근할 때가 많다.
이런 내가 한때 보직을 맡아 학교의 열쇠꾸러미를 한 줌이나 맡아 지낸 적이 있었는데, 몇 번 그걸 잠그지 않고 퇴근해서 순찰 중이던 아저씨한테 한밤중에 전화를 받은 일도 두어 번 있었다.
우리 집 가구마다 잠그는 곳은 지천으로 많지만 그걸 굳이 잠그는 일이 없으니 열쇠꾸러미가 별반 소용이 없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웬 귀하고 소중하고 비밀스런 것들이 그렇게도 많을까? 잠그고 또 잠근다. 국산 열쇠는 못미더워서 미제열쇠를 구해다가 이중삼중으로 잠근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컴퓨터 열쇠에 도난 경보 장치까지 설치하고 경비업체에 맡긴다.
그럴수록 도둑은 그런 집을 노리고 아무리 잠그더라도 그들의 기술을 당해낼 수 없다. 귀한 것, 소중한 것, 비밀스런 것들을 안 가지면 될 게 아닌가?
사람들은 그걸 가지려고 탐욕이 생기고 음해와 모략과 비리와 부정, 뇌물, 청탁, 알선, 협잡, 강도, 절도, 협박, 공갈, 폭력, 사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마다 신문의 사회면이나 TV 뉴스 시간에 비친 이 사회는 온통 도둑과 비리의 온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더욱 불신감을 부채질하고, 사람이 사람을 못 믿게 무섭게 만든다.
물질에 탐욕스런 인간들은 아귀다툼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을 소유한다. 마침내 그것을 소유한 뒤부터는 그걸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천장에다, 장롱 속에다 방구들 속에다 베갯잇 속에다…… 아무리 감쪽같이 감췄더라도 결국엔 빼앗기거나 도둑맞고 때로는 사람까지 다치면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나는 내가 태어날 때 빈손으로 이 세상에 온 것처럼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것이 인생이다.
비밀스런 것! 그것도 가지지 말자.
세상에 어느 비밀 치고 나중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비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리라. 남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잇다가 그것이 화근이 된 일화는 부지기수다.
우리 가족들은 여름방학이면 집을 통째로 비워둔 채 여행을 떠난다. 어느 친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물었다.
“그럼 집은 누가 봐 주나요?”
“집이야 집이 보지요.”
“빈집에 도둑이 들면 어쩌려고요?”
“가져갈 게 있어야 도둑이 들지요.”
“아무렴 도둑이 가져갈 게 없으려고요?”
“아, 도(盜)선생이 어떤 사람인데 산동네 꼭대기 집에 들어오겠습니까. 설사 들어온대도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와서 가져가니 사람이 놀라거나 다치지는 않을 것 아니오?”
“정말 당신 훈장 생활 30년에 귀중하고 소중한 게 없소?”
“없소. 결혼 패물 같은 건 남에게 다 줘버렸고 가구도 모두 구닥다리요.”
“한심한 친구로군.”
“그래요. 참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놈이오. 그래도 내 마음은 참 편하다오. 졸부들이 보석 자랑, 가구 자랑, 자가용 자랑, 집 자랑, 돈 자랑 할 때 나는 그런 졸부들을 한심하게 여긴 다오. 사람이 오죽 자랑할 게 없으면 그 따위 하찮은 걸 자랑하겠소. 그걸 소유하고 유지하겠다고 바동대는 그들이 참 불쌍하게만 보인 다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소. 내 이 몸뚱이마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소.”
“당신 듣자하니 좀 돈 사람 같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정신이 돈 사람이 많은 세상은 바른 정신을 가진 놈이 돈 사람이 되고,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 세상은 물질소유에 얽매어 바동대는 사람이 돈 사람으로 보일 테니…… 누가 돈 사람인지는 저 높은 곳에서 판정하실 테니 우리 어리석은 인간끼리 피차 판정은 삼갑시다.”
‘대문 좀 열고 삽시다’
“야 이 미친 놈아! 잠꼬대 그만하고 꺼져! 너 도(盜) 선생하고 짜고치는 고스톱하는 거 아녀. 지금이 요순시대인 줄 알아? 이 시대는 믿을 놈이 아무도 없는 도둑들 세상이야. 돈이라면 부모자식도 속이고, 대통령까지도 백성의 눈을 속이고 뭉칫돈을 감춰두는 한심한 도둑 천국에 누구를 믿으란 말이야.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야. 요즘은 멀건 대낮에도 사람까지 납치해 가는 세상이야. 그런데도 대문을 열어두라니! 우리 집 귀한 보석, 현찰, 달라, 예금 통장 잃어버리면 당신이 책임질 테야. 야! 헛소리 뇌까리는 저 놈, 숨 좀 죽이게 소금 좀 뿌려라. 굵은 소금으로 흠뻑 뿌려서 팍 죽여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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