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출국심사대로 들어가는 김남희씨.오마이뉴스 이종호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나는 어쩔 줄 모른 채 서 있었고, 그런 나를 밀치고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절벽을 쉽게도 건너가고 있었다. 망설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나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고, 힘겹게 첫 발을 디딘 나는 절벽을 건너기 시작했다.
가파른 절벽에서 마지막 한 발을 남겨놓고 뒤돌아보니, 내가 건너온 길은 절벽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평지보다 아주 조금 높은 상자 위에서 한 발을 못 떼고 허우적거리고 서 있었던 거였다. 그곳은 커다란 방이었다. 어이없어 하는 나를 바라보며 한 노인이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도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웃고 있었다.
"별 거 아니지? 그렇게 일단 시작하면 되는 거야. 자, 이제 이곳으로 가면 모든 일이 잘 될 걸세."
노인이 건네주는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받아들고 나는 잠에서 깼다. 꿈치고는 참 묘한 꿈이었다. 회사를 사직하고, 마침내 오래 준비해온 여행의 시작을 열흘 남짓 남겨놓았던 그때.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인사를 하기 위해 친구와 선배들을 만나고, 마지막 준비를 하는 동안에 나는 갑자기 막막하고 외로워져서 한밤중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여행이었기에, 마냥 설레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은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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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꿈은 꿈으로만 남겨두어야 옳았던 걸까? 무얼 보겠다고, 무얼 얻겠다고, 이 길을 가는 걸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이제 집도 없고, 돌아갈 직장도 없고, 돈도 한 푼 없이, 나이만 들어있을 텐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